미국의 저명한 출판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 1951년 6월2일자에 리틀 브라운 출판사 광고가 실렸다. “ ‘뉴요커’가 주목한 촉망받는 젊은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쓴 놀라운 신작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7월16일 출간됩니다. 몇 달 전부터 각종 지면에는 이 소설이 최근 몇 년간 발표된 소설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하며 독창적이라고 평가하는 글들이 실렸습니다. ‘이 달의 책’ 북클럽의 여름휴가 추천목록에도 꼽힌 바 있습니다. 가격은 3달러이고, 보스턴의 리틀 브라운 출판사에서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때 나온 초판본은 현재 25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샐린저의 대표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민음사)은 지금까지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출간될 때부터 곡절의 연속이었다.
샐린저가 10년 동안 공들인 원고를 뉴욕의 하르코트 브레이스 출판사에 건네자 1951년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거친 언사와 반항적인 내용으로 말미암아 말썽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출판사가 주저하다 급기야 원고 수정을 요구했다. 화가 난 샐린저는 원고를 빼내 보스턴의 리틀 브라운 출판사로 보내 버렸다. 출간 10년 만에 150만부나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하르코트 브레이스로서는 땅을 칠 노릇이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25만부 이상 판매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6500만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출간 직후 보수적인 사회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는 2년의 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이 책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까닭은 젊음을 분출하는 16살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모습이 같은 세대의 공감을 얻기 때문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정치적으로 우파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 젊은이들로부터 광적인 호응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이 ‘비트운동’이나 ‘성난 젊은이들’그룹, 히피문화 등의 모태가 된 작품이었지만 막상 샐린저는 이런 운동을 탐탁잖게 여겼던 것은 아이러니다. 한때 극작가를 꿈꾸고 영화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진 샐린저지만 주인공 홀든을 핑계 대며 영화화를 끝내 거부한 것 역시 뒷담화가 이어진다. 엘리아 카잔 감독이 영화화를 제의하자 샐린저는 “홀든이 싫어할까봐 두렵다”며 거부 이유를 밝힌다.
샐린저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이 작품에서 홀든은 영화와 할리우드에 대한 증오를 여러 차례 드러낸다. 하지만 그를 직·간접적인 모델로 한 영화가 수도 없이 나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다음 구절에 작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해. 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은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까마득한 절벽에 서 있지.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잘못해서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원래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잖아…. 난 온종일 그 일만 해.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나 할까….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어.”
이 책이 미국 고등학교와 도서관에서 최고의 금기도서와 최고의 권장도서가 된 것은 역설적이다. 샐린저는 당초 성인들을 위해 이 소설을 썼으나 전 세계 10대들이 홀든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열광하는 것도 패러독스다. 지금은 미국 성인들까지 도서관에서 훔치고 싶은 책 1위로 이 소설을 꼽는다. 어쩌면 작품 속의 앤톨리니 선생님이 홀든에게 건넨 글에서 그 답의 일부가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을 위해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원래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대학 동창인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스테켈의 말이다.
이제 샐린저는 육신의 옷을 벗었지만 홀든처럼 영원히 16살의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