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에서

편견의 장막 걷어낸 아프리카

2010.02.19 17:40
본문

아프리카에는 흥미롭고 자기암시적인 속담이 전해온다. “사자들이 자신들을 대변해줄 역사학자를 갖기 전까지 사냥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사냥꾼을 찬양하는 일색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역사가 중심으로 쓰이고, 약하고 권력 없는 자는 언제나 역사에서 누락되거나 악역만 맡고 만다는 경구다.

그래선지 영국 역사학자 홉킨스는 이렇게 자성하는 듯했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독립의 해인 1960년 이전 식민지시대 유럽인들의 아프리카관은 자연이나 인간의 낙원으로 보는 ‘메리 아프리카’와 원시적이고 미개하다고 보는 ‘프리미티브 아프리카’의 두 극단적 신화로 채색되어 있었다. 그곳에 사는 아프리카인이 주체인 참된 의미의 역사는 쓰인 적이 없었다.”

‘아프리카는 가장 낭만적이면서도 가장 비극적인 대륙’이라고 묘사했던 미국 흑인 사회운동가 윌리엄 듀 보이스의 말도 이와 흡사하다. 듀 보이스는 <세계역사 속의 아프리카> 서문에서 “아프리카를 세계 역사에서 생략함으로써 흑인 노예를 합리화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흑인을 언급하지 않고도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여전히 아프리카를 굶주림과 질병, 내전의 땅이라는 편협한 시각으로만 재단하는 이가 대다수다. 21세기 초부터 부쩍 주목하는 ‘마지막 남은 자원 외교의 대상’이 추가됐을 정도다. 세계 열강이 다시 아프리카 대륙을 향해 잰걸음 하고 있는 것도 이로 말미암은 바다.

독일 출신인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웅진씽크빅)는 유럽인의 편견을 버리고 아프리카의 다채로운 역사를 균형잡힌 시각에서 접근한다. 가장 오랜 대륙의 생성, 최초의 인간인 ‘이브’의 탄생과 그 후손의 첫 아프리카 탈출, 부족·종족 중심의 고대 아프리카, 유럽의 침략과 아프리카의 저항,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역사를 쉽고 감명 깊게 정리했다.

지은이는 “백인들이 왔을 때 그들은 성서를 갖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졌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성서를 갖고 그들이 땅을 가졌다”는 상징적인 속담으로 비극의 역사를 풍자한다.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조차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등한 동반자로 여기지 않았다는 새로운 사실도 들려준다. “나는 너의 형제다. 그러나 너의 형”이라는 게 슈바이처가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설명할 때 자주 쓴 말이었고, ‘검둥이’라는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모든 아프리카인은 동일하다’라는 관념도 500년 동안이나 유럽에서 변하지 않았다고 떠올린다.

아프리카가 어느 지역보다 앞선 생각을 실천해 나가고 있는 대목을 애써 간과하고 있는 점도 일깨워준다. 르완다 의회의 여성의원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새 헌법이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것에 속하고 동성애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나 출신의 아마 아타 아이두 아프리카 여성작가회의 의장의 말은 아프리카에 남은 숙제를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식민 지배자와 거짓 선교사를 쫓아내는 것이 곧 자유롭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정말 힘든 교훈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아프리카의 다양성이야말로 가치있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 일이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선 겨울철은 물론 여름 올림픽이 개최된 적이 없다. 올해 사상 처음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고 때마침 무려 17개 나라가 식민지에서 해방돼 새 출발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리카를 조금이나마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진짜 고향을 너무 모른다. 모르는 정도를 넘어 곧잘 무시한다. 유전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가 아프리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인간이 여기서 처음으로 곧게 서서 걷고 달리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마저 우리는 망각하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