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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시 외우기 벌(罰)

입력 : 2008-04-04 17:50:41수정 : 2008-04-04 17:51:59

조선시대 관리들은 지각과 결근이 잦았다. 1년에 쉬는 날도 기껏해야 보름에서 20일 정도에 불과했다. 당시엔 일요일이란 개념도 없었던 데다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근태(勤怠)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성종 13년(1482) 1월4일 왕이 결근하는 관리들에 관한 대책을 신하들과 의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정과 관의 일에 지장이 많아지자 신료들과 협의한 것이다.

김승경(金升卿)이 이렇게 아뢰었다. “국법에 해가 길 때는 묘시(오전 7시쯤)에 출근해 유시(오후 7시쯤)에 퇴근하고, 해가 짧을 때에는 진시(오전 9시쯤)에 출근해 신시(오후 5시쯤)에 퇴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관리들을 조사해 보니 출근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매 10대로 다스리는 것이 지나치게 가볍기 때문입니다. 다른 법을 세우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러자 노사신(盧思愼)이 나섰다. “다른 법을 세우지 않더라도 관리들의 잘못을 적어둔 장부가 있으니 결근을 많이 하는 사람은 파직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성종은 법을 강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 무단결근 때 매 10대를 치는 벌은 명나라의 ‘대명률’에 따른 것이다. 대명률은 이유 없이 출근하지 않은 관리는 하루에 태형 10대로 벌하고, 지각한 사람과 조퇴한 관리는 태형 50대로 단죄했다. 지각과 조퇴가 결근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여겨 고치라고 지시했지만 막상 법이 바뀌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이처럼 엄한 벌칙이 있었으나 관리들의 근무 기강은 조선시대 내내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광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지각생들에게 시를 외우게 하는 벌을 주는 일이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아침부터 야단치는 일이 싫어 부드러운 방법을 쓰고 있는데 지각생이 줄어들고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다는 소식이다.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매를 맞는 것보다 시를 외우는 벌이 훨씬 교육적이어서다. 그동안 지각생에게 100~200대의 무지막지한 매를 댄 교사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거나, 학원에서 지각·결석한 수강생들에게 500~1000원씩 벌금을 받아 조촐한 파티비용으로 사용한 애교스러운 일화 같은 것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 외우기 벌’에서는 격조가 풍겨나고 운문적인 감성마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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