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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도둑’ 목민관에 경종을 울릴지니

2010.03.05 17:13

닌토쿠 일왕(仁德 日王)은 일본 역사상 백성을 가장 극진히 사랑한 군주로 칭송 받는다. 왕자 시절 스승이 백제의 왕인 박사였던 그는 즉위 후 어느 날 왕궁의 전각과 언덕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다 연기가 나는 집이 별로 없다는 걸 발견했다. 백성들이 밥을 짓지 못할 만큼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직감한 그는 3년 동안 단 한 푼의 세금도 거둬들이지 않았다. 덕분에 3년 뒤에는 온 나라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궁전 살림살이는 왕궁이 낡아 여기저기서 비가 샐 정도로 어려워졌다.

즉위 7년째 처음으로 왕궁 수리에 들어가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자진 참여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공사를 끝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서(正史書)인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화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편에도 호화관청의 폐해에 관한 기록이 전해온다. 사헌부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경상우도 병사 조윤손이 성 안에 대(臺)를 쌓고 정자를 지었는데 극도로 사치스럽고 화려했다 합니다. … 전라좌도 수사 김세희는 전에 제포첨사로 있을 때, 병화(兵火)가 있은 후인데도 대청을 극히 장려하게 창건하였는데, 궁궐에 버금가게 하여 군졸을 피곤하게 하였습니다. 온성 부사 신옥형은 전에 경상좌도 수사로 있을 때 대청을 영건하되 크게 공역을 일으켜 궁궐에 견줄 만할 정도로 웅장 화려하게 하여 군졸을 피곤하게 하였으니, 이문(移文)하여 다스리게 하소서.”

그러자 중종이 전교를 내렸다. “대저 옛 관사가 혹 퇴폐했으면 수보(修補)하는 것이야 옳지만, 수개(修改)하되 웅장하고 사치스럽게 하면 그 폐해가 반드시 백성에게 미칠 것인데, 하물며 누관과 정사를 새로 창건하여 유관(游觀)의 장소를 삼음에랴. 헌부에서 추치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창비)에도 호화청사와 비리를 질타하는 대목이 숱하게 나온다. “고을의 원님이 허름한 청사를 수리할 경우에는 공무를 빙자하여 사리를 도모한다. 재화와 경비의 항목을 마음대로 설정하고 상급관청에 구걸하고 고을의 곡식창고를 농간질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들이고 아전들과 공모하여 남는 것을 가로채어 사복이나 채운다.”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주민 복지는 뒷전인 채 수천억원을 들여 호화청사를 이미 지은 성남·용인시 같은 곳이나, 지을 계획을 세워놓은 방방곡곡의 지방자치단체들에 경종이 되는 사례들이다.

<목민심서>는 무엇보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고 많다. “청렴하게 한다는 것은 수령 본연의 의무로써 온갖 선정의 원천이 되고, 모든 덕행의 근본이 된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 노릇을 제대로 한 사람은 아직 없다.” “수령이 청렴하지 못하면 백성들은 그를 도둑으로 지목한다.” “현명한 사람은 청렴이 궁극적으로 이롭다는 것을 안다” “청렴한 관리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가 지나는 곳은 산림과 천석(泉石)까지도 모두 그 맑은 빛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재물을 절약해 쓰는 데에 있고, 절용하는 근본은 검소한 데에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기초단체장 가운데 각종 비리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무려 42%에 이른다는 사실은 부정부패의 심각성을 한눈에 엿보게 한다. 충남 홍성군청 공무원 670여명 가운데 16%인 108명이 군 예산 7억여원을 빼돌리는 데 동참한 공무원들의 집단범죄는 부패의 극치를 보여줬다. 지방공무원의 부정부패와 호화청사 건축은 심지어 지방자치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을 낳을 정도다.

공직자 필독서 1위에 꼽히는 <목민심서>를 보유한 대한민국의 국가청렴도가 오랫동안 세계 40위 안팎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도 변명되지 않는다.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의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 방법의 하나로 <목민심서>를 읽었는지, 읽었다면 제대로 읽었는지, 실천 의지는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