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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내조

입력 : 2008-06-06 18:22:17수정 : 2008-06-06 18:22:22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안영은 덕망이 높고 재능이 뛰어나 재상까지 지낸 인물이다. 어느 날 안영이 마부가 끄는 마차를 타고 외출하게 됐다.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내다보다 남편이 우쭐거리며 마차를 끌고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현숙한 마부의 아내가 보기에 마부인 주제에 우쭐대는 남편이 한심했다. 그날 저녁 남편이 돌아오자 아내는 낮에 느낀 심정을 털어 놓았다. “안영은 키가 오척이 못되어도 제나라의 재상인데, 당신은 팔척장신으로 마부 노릇이나 하는 주제에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지요.” 아내의 말을 깊이 새겨들은 마부는 그 뒤부터 겸손하고 침착해졌다. 마부의 태도가 달라지자 안영이 이상해 물었다. 안영은 마부가 아내의 말을 듣고 개과천선한 것을 가상히 여겨 대부 벼슬을 천거해 줬다. 내조지현(內助之賢)에 얽힌 고사다.

내조지공(內助之功)의 일화는 삼국지에 전해진다. 조조가 위나라 무제로 등극하자 후계 문제로 한동안 고심했다. 맏아들인 조비로 할 것인가, 똑똑하고 문장이 뛰어난 조식으로 할 것인가. 결국 조비가 황태자가 된 데에는 훗날 황후가 된 곽씨의 도움이 컸다. 곽씨가 여러 방책을 썼던 것이다. 남달리 영특한 곽씨는 아버지가 “내 딸은 여자 중의 왕”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문제 조비가 견후를 폐하고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 하자 중랑인 잔잠이 상소를 올려 말렸다. “옛날 제왕이 세상을 잘 다스린 것은 재상과 같이 정사를 공식적으로 보좌한 사람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아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잔잠은 이어 곽씨를 황후로 세우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누르는 일이어서 질서를 어지럽히고 나라가 어려워지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간했으나 문제는 듣지 않았다. 황후가 된 곽씨는 명제 조예를 낳은 견후를 끝내 모함해 죽이고 말았다.

‘내조지현’과 ‘내조지공’에는 미묘한 차이가 엿보인다. 이화여대가 내조의 리더십을 발휘한 공적을 높이 사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준 것을 둘러싸고 적격성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모교 출신 대통령 부인들에게 주는 관례라지만, 내조를 상의 명분으로 삼는 게 독립적 여성상을 훼손한다는 주장이 시대를 추월해 과속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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