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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라폰테인 효과

입력 : 2008-06-13 17:50:58수정 : 2008-06-13 17:54:05

돈 라폰테인은 할리우드에서 ‘영화 예고편의 황제’ ‘천둥 목청’ ‘신의 목소리’로 통한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할리우드에서 만드는 상당수의 영화 예고편과 광고 내레이션을 도맡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어서다. 그는 요즘도 하루 평균 10~17건의 녹음 스케줄을 거뜬히 소화해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1년이면 무려 3000여건에 이른다. 한창 때는 하루 25건도 녹음해 냈다고 한다. 단 한번의 리허설도 없이 즉석에서 10~15분이면 한 건을 뚝딱 끝내 버린다니 그럴 만도 하다. 초고속 인터넷 덕분에 자택의 개인 스튜디오를 이용해 뉴욕에서 의뢰한 일거리를 전송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그가 처음 이 길로 들어선 것은 1963년 프로덕션 벤처기업 공동대표를 맡아 카피라이팅, 연출, 녹음, 믹싱, 편집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일할 때다. ‘카사 그란데의 총잡이’라는 서부영화 예고편 카피를 쓴 뒤 약속한 녹음 성우가 나타나지 않자 이른바 ‘땜빵’으로 긴급 투입됐다. 훗날 “급한 김에 손수 녹음해서 다음날 아침 컬럼비아 영화사에 납품했더니 군말없이 통과시키는 바람에 나도 놀랐다”고 술회했다. 당시 받은 돈은 8달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편당 2000달러 정도의 고액이라야 가능하다.

그가 이처럼 장수하는 비결이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 언성을 높이는 일까지도 삼간다. 수많은 영화사들이 하고 많은 성우들을 제쳐놓고 그의 목소리를 원하자 ‘라폰테인 효과’란 용어를 낳기에 이르렀다. ‘검증되지 않은 신인에게 모험을 걸기보다 웬만하면 믿을 만한 사람을 계속 기용하는 게 낫다’는 논리의 하나다.

프로야구에서 송진우 투수 정도라면 라폰테인 효과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월드컵 예선 대회를 치르고 있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경우 해외에서 뛰고 있는 믿을 만한 고참선수들이 부진을 면치 못해 신진들이 중용될 것이라는 소식은 ‘역(逆)라폰테인 효과’라고 해야 할까. 취임 100여일 만에 대폭적인 인사 쇄신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른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도 라폰테인 효과를 떠올리게 된다. 하마평에 오르는 면면들이 하나같이 참신한 신인이 아니라 검증됐다고 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성공 여부는 두고 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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