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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반성의 힘

입력 : 2008-06-20 17:52:43수정 : 2008-06-20 18:11:47

역경에 처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환멸부터 느낀다고 심리학자들은 진단한다. 환멸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반성의 시간으로 접어든다. 환멸을 느끼는 시간과 반성의 시간은 대부분 겹쳐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반성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반성을 하더라도 논리적인 반성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용기의 힘’의 저자 찰스 스토너의 연구결과다. 스토너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경의 사이클’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목표→역경→통찰력, 노출→적응→성숙→자신감·용기의 과정이 그것이다.

반성은 조류의 알에 비유되기도 한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면 생명이 되지만 남이 깨주면 1회용 프라이 요리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성은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부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사람은 누구나 아집과 편견, 고정관념의 껍질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반성은 성공을 위한 강력한 도구이면서도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다. 반성은 최소한의 노력과 에너지로 해답과 전략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소극적인 방법이라고도 한다. 반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선입견을 벗어던지게 해 준다는 점이다. 반성은 스스로에게 부과한 한계와 사고의 맹점을 일깨워 준다. 규칙적으로 제대로 반성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더욱 심오한 지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반성은 괴로움과 번뇌를 몰아내는 한편 평화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반성의 힘’은 이처럼 위대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엊그제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 파문과 관련해 두 번째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반성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동정적인 쪽은 지켜보자는 주장인 데 반해 비판적인 쪽은 여전히 알맹이가 부족하고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고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가식적인 반성이나 진정성이 부족하면 도리어 화를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정한 반성은 성숙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안정된 정서와 강한 자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반성의 힘’은 생각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만 지나 보면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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