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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꾀병환자

입력 : 2008-07-04 17:38:09수정 : 2008-07-04 17:38:26

한국 최초의 희곡 작품에 꾀병환자를 등장시킨 것은 흥미롭다. 조중환의 ‘병자삼인’은 세 꾀병환자와 그 아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극(笑劇)이다. 당시 오도된 개화여성의 단면을 그리면서도 여성권리를 옹호한 이 작품은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됐다. 선구자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억지웃음을 자아내려는 유형화된 스토리와 과장된 몸짓으로 말미암아 첫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병자삼인’은 올 봄에도 ‘출세하자, 출세해’라는 제목으로 각색돼 대학로 연우무대에 올려질 정도로 연극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 첫 희곡 작품의 주인공들이 꾀병환자라는 게 공교롭지만 누구나 어린 시절 한두 번쯤 꾀병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직후 “보건(체육)시간만 되면 꾀병을 부렸다”며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미국인들 가운데 58.4%가 꾀병으로 직장을 쉰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직장인들이 신청하는 병가의 30% 정도는 실제와는 다르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다. 기업주도 상당수 근로자들이 휴가를 위한 도구로 꾀병을 이용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산업연맹이 400개 기업체 대표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 결근의 12.5%가 꾀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월요일과 금요일에 꾀병으로 병가를 내는 일이 잦았다.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도 최근 ‘꾀병족’을 일터로 불러내기 위해 의료제도 개혁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노조는 수많은 악덕기업 대표들이 실제로 아픈 근로자에게 계속 일을 시킨다고 반발한다.

한층 심각한 것은 건강보험을 비롯한 각종 보험금을 많이 타내기 위해 꾀병환자 노릇을 하는 양심불량자다. 사실 꾀병환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쯤 되자 정부가 교통사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필요 이상의 입원 치료를 받는 꾀병환자를 강제로 퇴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개정안을 올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꾀병환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많은 것도 큰일이나 이 때문에 보험이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더 큰 문제다. 선의의 각종 보험 상품들이 본의 아니게 꾀병환자를 양산한다는 분석도 있으니 이것도 호사다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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