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6-27 17:48:28ㅣ수정 : 2008-06-27 17:48:44
ㆍ“스탈린의 北 남침지원은 중대한 오산…이로인해 유럽 역사가 바뀌었다”
▲포스트워 1945-2005…토니 주트 | 플래닛
최근 유럽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뉴스가 겹쳤다. 좋은 뉴스는 유럽 경제가 20년 만에 미국과의 격차를 최소화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냈다는 발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유럽의 만성적 저성장·고실업이 민주제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경고를 받아들여 구조개혁을 한 덕분에 되살아난 것이라고 생색을 내고 있지만 말이다. 나쁜 소식은 유럽연합(EU)의 마지막 통합 작업인 리스본 조약을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로 거부한 일이다.
통합 유럽은 이처럼 곡절을 헤쳐가며 자신들의 역사는 물론 세계사를 바꿔 나간다. ‘유럽 통합의 아버지’ 장 모네가 없었다면 전쟁 이후 유럽 이념은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했던 장-바티스트 뒤로젤의 지적처럼 고비마다 좌절을 뛰어넘는 지혜가 등장하는 게 유럽의 힘인 듯하다.
논쟁적인 저작 ‘문명의 충돌’의 지은이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갈파했듯이 하나로 통합된 유럽연합의 등장은 미국 패권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 반작용 가운데 단일 움직임으로서는 가장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다극화한 21세기를 만들어낼 중요변수임에 틀림없다.
유럽 역사의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사람인 토니 주트는 온갖 광석을 용광로에 녹여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전후 유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거대한 조감도를 탄생시켰다. 수많은 세계적 언론이 주트의 대작 ‘포스트워 1945-2005’(원제 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를 200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에 이른 것은 망원경으로 보는 거시적 통찰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듯한 미세 분석이 동시에 담긴 유럽현대사 오디세이로 평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은이는 전후 60년의 유럽 역사가 위대한 점을 ‘미국식 생활양식’에 맞서 ‘유럽식 사회모델’을 창조한 것에서 찾는다. 그는 연이은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주저앉고 말 것 같던 유럽이 특유의 사회모델로 우뚝 선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해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복지국가 모델이 거저 생겨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씩 거증해 나간다.
핍진한 전후의 일상생활 속에서 복지제도는 최소한의 정의나 공정함에 대한 보증서였다는 게 첫 번째 원인이다. 복지제도가 전시의 레지스탕스가 꿈꾸던 정신적·사회적 혁명에는 못 미치지만 전쟁 이전 시기의 절망과 냉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이었다는 데 밑줄을 먼저 긋게 한다. 서유럽의 복지국가가 정치적인 분열을 초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두 번째 이유로 꼽힌다. 복지국가의 전반적인 취지가 사회적 재분배였지만 전혀 혁명적이지 않아 사회갈등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갔지만 장기적으로는 전문직과 사무직, 상인을 비롯한 중간계급의 복지가 몰라보게 향상된 덕분이다.
유럽의 과도한 복지제도가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에 심각한 결함을 낳았다는 비판이 한국 땅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지만 저자는 이를 일축한다. 해마다 실시되는 유로바로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절대 다수의 유럽인들이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탓이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점을 든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에게 직업의 안정과 누진세, 대규모 사회적 이전지출에 대한 약속이 시민 상호간의 약속인 동시에 정부와 시민 사이의 약속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인들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고, 더 안전한 생활을 누렸으며,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았다는 통계도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전후 과거사를 5~6년이라는 이른 시일 안에 깔끔하게 정리한 것도 유럽 각국들이 개혁과 발전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지은이는 유럽적 가치 창조와 더불어 유럽의 위축과 지리적 축소, 이데올로기와 지식인의 영향력 쇠퇴도 주요한 역사적 흐름의 하나로 제시한다.
책은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전쟁의 유산과 과거 청산, 유럽 제국주의의 종말과 식민지 해방, 냉전의 도래, 유럽경제공동체의 탄생과 확대 발전, 서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불만, 소련의 동유럽 지배와 소비에트 블록의 몰락, 발칸 반도 전쟁, 최근의 난민과 불법 이민 노동자, 유럽인들의 일상적 삶에 이르기까지.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이 유럽의 새로운 변신이 가능했던 두 가지 역사적 결정으로 손꼽았던 것에 대해서도 주트는 대부분 동의한다. 미국이 유럽에 잔류하기로 한 일, 프랑스와 독일이 우선 경제적 유대부터 시작하는 통합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기로 한 결정이 그것이다.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은이의 주장이 강하게 배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최근 유럽사의 윤곽은 매우 달라 보였을 것”이라는 대목이 그중의 하나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그는 이 경우를 ‘합리적인 반사실적 가정’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남침을 지원한 스탈린의 결정이 가장 중대한 오산이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유럽의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럽 정치 질서가 ‘배제의 정치’가 아닌 ‘포함의 정치’라는 게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시사점이기도 하다.
총 1446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 책은 현대유럽사에서 미래의 선택지를 찾도록 세계인들에게 권한다. 초강대국 미국과 미래의 잠재적 초강대국 중국도 보편적으로 모방하고 싶은 유용한 모델을 갖지 못했으며, 유럽 모델이 가장 근접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행복 옮김. 전 2권. 각권 3만2000원
▲포스트워 1945-2005…토니 주트 | 플래닛
최근 유럽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뉴스가 겹쳤다. 좋은 뉴스는 유럽 경제가 20년 만에 미국과의 격차를 최소화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냈다는 발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유럽의 만성적 저성장·고실업이 민주제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경고를 받아들여 구조개혁을 한 덕분에 되살아난 것이라고 생색을 내고 있지만 말이다. 나쁜 소식은 유럽연합(EU)의 마지막 통합 작업인 리스본 조약을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로 거부한 일이다.
통합 유럽은 이처럼 곡절을 헤쳐가며 자신들의 역사는 물론 세계사를 바꿔 나간다. ‘유럽 통합의 아버지’ 장 모네가 없었다면 전쟁 이후 유럽 이념은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했던 장-바티스트 뒤로젤의 지적처럼 고비마다 좌절을 뛰어넘는 지혜가 등장하는 게 유럽의 힘인 듯하다.
논쟁적인 저작 ‘문명의 충돌’의 지은이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갈파했듯이 하나로 통합된 유럽연합의 등장은 미국 패권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 반작용 가운데 단일 움직임으로서는 가장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다극화한 21세기를 만들어낼 중요변수임에 틀림없다.
유럽 역사의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사람인 토니 주트는 온갖 광석을 용광로에 녹여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전후 유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거대한 조감도를 탄생시켰다. 수많은 세계적 언론이 주트의 대작 ‘포스트워 1945-2005’(원제 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를 200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에 이른 것은 망원경으로 보는 거시적 통찰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듯한 미세 분석이 동시에 담긴 유럽현대사 오디세이로 평가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은이는 전후 60년의 유럽 역사가 위대한 점을 ‘미국식 생활양식’에 맞서 ‘유럽식 사회모델’을 창조한 것에서 찾는다. 그는 연이은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주저앉고 말 것 같던 유럽이 특유의 사회모델로 우뚝 선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해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복지국가 모델이 거저 생겨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씩 거증해 나간다.
핍진한 전후의 일상생활 속에서 복지제도는 최소한의 정의나 공정함에 대한 보증서였다는 게 첫 번째 원인이다. 복지제도가 전시의 레지스탕스가 꿈꾸던 정신적·사회적 혁명에는 못 미치지만 전쟁 이전 시기의 절망과 냉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걸음이었다는 데 밑줄을 먼저 긋게 한다. 서유럽의 복지국가가 정치적인 분열을 초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두 번째 이유로 꼽힌다. 복지국가의 전반적인 취지가 사회적 재분배였지만 전혀 혁명적이지 않아 사회갈등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장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갔지만 장기적으로는 전문직과 사무직, 상인을 비롯한 중간계급의 복지가 몰라보게 향상된 덕분이다.
유럽의 과도한 복지제도가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에 심각한 결함을 낳았다는 비판이 한국 땅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지만 저자는 이를 일축한다. 해마다 실시되는 유로바로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절대 다수의 유럽인들이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탓이라는 인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점을 든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에게 직업의 안정과 누진세, 대규모 사회적 이전지출에 대한 약속이 시민 상호간의 약속인 동시에 정부와 시민 사이의 약속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인들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고, 더 안전한 생활을 누렸으며,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았다는 통계도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전후 과거사를 5~6년이라는 이른 시일 안에 깔끔하게 정리한 것도 유럽 각국들이 개혁과 발전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지은이는 유럽적 가치 창조와 더불어 유럽의 위축과 지리적 축소, 이데올로기와 지식인의 영향력 쇠퇴도 주요한 역사적 흐름의 하나로 제시한다.
책은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전쟁의 유산과 과거 청산, 유럽 제국주의의 종말과 식민지 해방, 냉전의 도래, 유럽경제공동체의 탄생과 확대 발전, 서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불만, 소련의 동유럽 지배와 소비에트 블록의 몰락, 발칸 반도 전쟁, 최근의 난민과 불법 이민 노동자, 유럽인들의 일상적 삶에 이르기까지.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이 유럽의 새로운 변신이 가능했던 두 가지 역사적 결정으로 손꼽았던 것에 대해서도 주트는 대부분 동의한다. 미국이 유럽에 잔류하기로 한 일, 프랑스와 독일이 우선 경제적 유대부터 시작하는 통합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기로 한 결정이 그것이다.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은이의 주장이 강하게 배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최근 유럽사의 윤곽은 매우 달라 보였을 것”이라는 대목이 그중의 하나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그는 이 경우를 ‘합리적인 반사실적 가정’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남침을 지원한 스탈린의 결정이 가장 중대한 오산이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유럽의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럽 정치 질서가 ‘배제의 정치’가 아닌 ‘포함의 정치’라는 게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시사점이기도 하다.
총 1446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 책은 현대유럽사에서 미래의 선택지를 찾도록 세계인들에게 권한다. 초강대국 미국과 미래의 잠재적 초강대국 중국도 보편적으로 모방하고 싶은 유용한 모델을 갖지 못했으며, 유럽 모델이 가장 근접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행복 옮김. 전 2권. 각권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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