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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사랑에 빠지면 네안데르탈인은 Hmmmmm 노래를 불렀다

입력 : 2008-07-25 18:00:07수정 : 2008-07-25 18:00:08

ㆍ‘Hmmmmm’ 소통으로 25만년간 살아남아 …음악과 언어는 같은 뿌리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스티븐 미슨 | 뿌리와 이파리

“음악은 천사의 말이다.”(토머스 칼라일) “음악의 언어는 무한하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장 루이 귀에 드 발자크) “음악은 또 하나의 천체이다.”(알퐁스 도데) “음악은 인류의 만국 공통어이다.”(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음악만이 세계어에서 번역할 필요가 없다. 거기서는 혼이 혼에게 호소된다.”(에리히 아우어바흐)

음악에 담긴 명언들은 한결같이 심금을 울리는 곡조만큼이나 최상의 헌사로 바쳐진다. 그래선지 음악을 흔히 ‘감정의 언어’에 비유한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핵심 수단 가운데 하나가 음악이어서다. 유학(儒學)에서도 음악의 기원을 ‘마음’이라고 한 건 그런 까닭인 듯하다.

그렇지만 막상 음악을 다룬 연구는 음악을 언어의 부산물쯤으로 여겨왔다. 영국의 중견 인지고고학자 스티븐 미슨은 음악 활동이 인류가 가진 가장 의아하고 경이로운 특성을 지녔음에도 상응하는 주목을 받지 못했음을 못내 안타까워한다.

컴퓨터 과학의 도움으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 네안데르탈인의 얼굴과 남부 프랑스에서 발견된 두개골 조각들.


미슨은 푸대접을 받아온 음악연구 풍토를 질타하듯 역작으로 응수한다.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원제 The Singing Neanderthals: The Origins of Music, Language, Mind and Body)’의 탄생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이 책은 음악과 언어의 기원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야심어린 작업이다.

지은이 미슨은 음악과 언어는 공통의 뿌리가 존재하고 공진화(共進化)해 온 역사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없다고 전제한다. 그는 매우 독창적인 용어인 ‘Hmmmmm’이라는 창문틀을 통해 음악과 언어의 진화과정을 관찰하며 캐 들어간다. ‘Hmmmmm’은 인류의 조상 가운데 한 줄기인 네안데르탈인의 의사소통 체계가 전일적(Holistic)이고, 다중적(Multi-modal)이며, 조작적(Manipulative)이고, 음악적(Musical)인 동시에 미메시스적(Mimetic)이었다는 점에 착안해 앞 글자만 따서 미슨이 만든 전문 용어다.

‘전일적’이라는 것은 메시지가 개별단위로 쪼개지지 않고 덩어리째 이해된다는 의미이며, ‘다중적’이란 말은 소리와 몸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조작적’이라는 것은 타인의 감정 상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멜로디와 리듬을 활용하기 때문에 ‘음악적’이라 명명했으며, 제스처와 소리 공감각을 이용한다고 해서 ‘미메시스적’이라는 다의적 의미를 부연했다. ‘Hmmmmm’이라는 의사소통 체계 덕분에 네안데르탈인은 빙하기 유럽의 엄혹한 환경변화 속에서도 무려 25만년 동안 살아남았다.

음악은 언어가 진화한 뒤 ‘Hmmmmm’의 잔재에서 생겨났다는 게 지은이의 지론이다. 구성적 성격과 지시의 기능을 함께 지닌 언어가 정보교환의 임무를 모두 떠맡게 되자 ‘Hmmmmm’은 언어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감정표현과 집단정체성 확립을 거의 전담하게 됐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발굴된 현생 인류의 가장 오래된 유골. 2002년 루마니아 남서부에서 발견된 이 턱뼈는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결과 3만4000~3만6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져 현생 인류가 고대 인류인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네안데르탈인은 언어가 발달하지 않아 타고난 절대음감을 계속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들의 음악능력은 호모속의 초기 종이나 현대 인류에 비해 뛰어났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추정한다. 태어나서부터 내내 언어능력이 거의 전무한 반면 음악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최근 실어증환자, 백치천재들의 사례를 들어 이를 간접 증명한다. ‘언어 없는 음악’과 대비되는 ‘음악 없는 언어’는 후천성 또는 선천성 실음악증의 실례를 통해 설명한다.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현대 인류가 음악능력이 떨어지게 된 것은 언어가 발달하면서부터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네안데르탈인에게는 ‘Hmmmmm’의 음악성을 위한 신경망이 진화한 반면 오늘날의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계통에서는 그것이 진화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확신이다.

‘Hmmmmm’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과 더불어 사라졌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둘의 재결합을 ‘노래’에서 찾는다. 노래는 ‘Hmmmmm’의 두 가지 산물인 음악과 언어를 하나의 의사소통 체계로 재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냥 결합이 아니라 두 산물이 오랫동안 따로따로 진화해 완벽하게 진화된 형태를 갖춘 이후에 일어난 재결합이다.

지은이는 고대부터 노래가 짝을 유혹하는 수단이었으며, 아기를 내려놓았을 때 아기를 안심시키고 아기의 감정 발달과 의사소통 체계 습득을 돕는 수단이었을 것으로 분석한다. 이와 함께 노래는 춤과 더불어 개인과 집단 간의 사회적 결속을 다지고 집단정체성을 만들어내는 핵심 수단으로도 쓰였다.

현대에 접어들어 음악성을 판가름하는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런 기술을 갖지 못한 사람은 음악성이 없다고 낙인찍으며, 음악 엘리트들의 필요에 맞는 것만 음악으로 여기게 되는 추세를 지은이는 서글픈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우리 모두가 의식하지 않고도 음악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세상은 훨씬 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라며 “Hmmmmm을 돌려 달라”고 외친다.

번역자가 적절히 표현했듯이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탁월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소화하고 해석해서 독창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지은이는 고고학 외에 음악학, 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 진화학, 뇌과학, 언어학, 민속음악학, 발달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최신 자료들을 구슬 꿰듯이 엮었다. 이채로운 것은 지은이가 가족들에게 타박을 받을 정도로 음치에다 박자치라는 사실이다. 김명주 옮김. 2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