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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밥상위의 毒소’ 광우병 뿐이랴

입력 : 2008-05-16 17:25:55수정 : 2008-05-16 17:26:01

▲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윌리엄 레이몽 | 랜덤하우스

사하라 사막 이남의 ‘검은 아프리카’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보다 비만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3배나 많은 나라가 적지 않다면 믿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사실이다. 잠비아에서는 네살 난 어린이의 20%가 비만이다. 아프리카도 비만이라는 질병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는 더 많다.

비만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병’이라는 말을 처음 쓴 호주 디킨대의 폴 짐멧 교수는 단순한 외관상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병으로 여겨야 한다고 재촉한다. 비만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인 전염병으로 선포하고 ‘은밀한 살인자’로 인정할 정도다. 미국에선 비만이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그 10분의 1에 불과하다. 연간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이 2만9000명인 반면 비만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은 40만명에 달한다.

프랑스 출신 프리랜서 언론인 윌리엄 레이몽은 미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디는 순간 ‘이 나라엔 왜 유난히 뚱보가 많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독소: 죽음을 부르는 만찬’(원제 Toxic)은 그렇게 탄생한, ‘질병을 키우는 모든 음식에 관한 충격 보고서’다. 레이몽은 아예 텍사스에 거주하면서 비만 문제를 추적하다 치명적인 대장균 O157:H7, 인간 광우병, 암, 심장병, 당뇨를 비롯한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식품 독소의 원인을 캐내기에 이른다.

흑사병, 스페인 독감, 에이즈에 이어 인류가 겪은 무시무시한 유행병에 비만을 추가해야할 것이라고 레이몽은 단호하게 경고한다. 그 진원지로 미국을 지목한 것이다. 미국 국민 3분의 2는 음식이 넘쳐나 걱정인데 비해 12%는 먹을 게 없어 고통을 겪는 역설의 현장을 레이몽은 선연하게 목격한다.

‘코카콜라 게이트’의 저자이기도 한 레이몽은 사람들이 먹은 음식의 양이 아니라 질 때문에 비만해진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먹는 음식에 포함된 독성물질이 비만을 일으킨다.

미국에서는 매일 20만명이 식중독에 걸린다. 대장균 O157:H7이 등장한 시기는 비만 유행병이 2단계로 접어든 시기와 맞물린다. 이 대장균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박테리아 목록에 올라 있다.

햄버거 빵 사이에 끼우는 다진 미국 쇠고기의 ‘생산이력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여러 주에서 온 소 400마리의 살코기를 다져 햄버거 하나에 들어갈 패티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대장균에 감염된 소떼를 알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 축산업자들은 대장균 O157:H7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여론을 조작하려 든다. 축산업자들은 막강한 ‘식품비방법’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식품비방법’에 걸리면 소송을 당하기 십상이다. 식품기업들은 재정이 취약한 공립학교나 대학에 기부하는 대신 학생들에게 판촉하는 수법을 가리지 않는다.

방사선을 쬐는 식품도 ‘비열처리살균’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피해 나간다. 방사선 소독식품은 독성 위험 외에 최대 80%의 영양소가 파괴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재 허가된 방사능 조사량으로는 일부 박테리아나 광우병의 원인인 프리온을 완전히 박멸할 수 없다고 한다.

미국 가축의 80~90%, 공장형 축사에서 자라는 가축들은 100% 성장 호르몬을 투여받는다. 성장 호르몬을 사용하면 엄청난 이익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망률이 가장 높은 결장암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1989년부터 성장 호르몬을 투여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한 뒤 엄청나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버티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미국에서 소비되는 쇠고기와 닭고기의 절반에서 최소한 항생제 잔류물이 두 가지 정도 검출되었다는 연구 보고서를 냈다. 사람이 식품을 통해 항생제를 흡수하면 항생제 내성이 길러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햄버거 맛을 돋워주는 지방질 샘플 12개에서는 정부에서 허가한 농약이, 100여개의 샘플에서는 인체에 유해해 사용이 금지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농업의 산업화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은 농약을 쓰지 않으면 인류가 식량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지구상의 기아가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공평한 분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론데일 연구소는 실험실이 아닌, 실제 경작하는 밭에서 22년 동안 연구를 거친 끝에 친환경농법과 농약을 사용하는 농법 사이에 수확량의 차이가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두 가지 혁명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먼저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소비자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매일 먹는 세끼 식사를 투표하듯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위험하지 않은 음식들로 밥상을 채울 만큼 구매력을 갖춘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비만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들이 대부분 공장에서 생산한 음식 밖에 사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정치인들의 각성이다. 사회를 위험한 병증에서 보호하는 것도 자신들의 책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책은 현장 취재와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형태여서 긴장감을 더해 준다. 문장의 흐름은 짧고 경쾌하다. 그의 고발은 뇌수에 화살처럼 꽂힌다. 저자가 채식주의자도 동물보호단체 회원도 아니어서 더욱 거리낌 없다. 쇠고기 파동이 아니더라도 우리 식단의 독소를 떠올리면 섬뜩해질 수밖에 없다. 이희정 옮김.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