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餘滴)

[여적]소방관

입력 : 2008-08-22 17:59:04수정 : 2008-08-22 17:59:20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하지. 소방관들은 어떻게 불타는 건물로 뛰어들 수 있느냐고. 모든 사람들이 도망쳐 나오는 곳으로 말이야. 잭, 자넨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면서 몸소 그 질문에 대답했어. 자네의 용기가 바로 정답이야. 오늘 우린 자네만큼 용감해질 거야. 그런 의미에서, 자넬 추모하지 않고 축하하겠네. 전 여기 모인 모두가 일어서서 축하해 주셨으면 합니다. 잭 모리슨의 삶을 말입니다.”

영화 ‘래더 49’에서 소중한 생명들을 구해내고 자신은 불길 속으로 사라져버린 소방관 잭 모리슨(호아킨 피닉스)의 영결식에서 마이크 케네디 소방서장(존 트래볼타)이 남긴 추모사다. 소방관의 사회적 책임과 희생정신을 함축한 명대사다. 불길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 잭과 그를 구하기 위해 또다른 사투를 벌이는 소방서장이 보여주는, 화염보다 뜨거운 의리와 우정은 긴 여운을 남긴다. 소방관들의 애환을 그린 또다른 영화 ‘분노의 역류’의 “네가 가면 나도 간다”는 명대사의 감명도 이에 못지않다.

미국은 소방관에 대한 사회인식부터 한국과 확연히 다르다. 미국에서 소방관이 ‘안전의 총체적인 책임자’라면 한국에서는 소방관을 그저 ‘불 끄는 사람’ 정도로 인식한다. 미국에선 어린이들이 “소방관 아저씨가 되겠다”고 노래를 할 정도다. 소방관의 직업 만족도와 행복지수도 전체 직업 가운데 2위다.

한국 소방관에 대한 예우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소방관들이 이직을 원하는 주요 이유의 하나도 바로 낮은 사회적 평가다. 부모 10명 가운데 7~8명은 자녀가 소방관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인구 수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보다 월등히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찰과 교도공무원 같은 유사직종과 달리 소방 현장 공무원은 90% 정도나 3부제 근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 참사로 숨진 3명의 소방관 영결식이 치러진 어제 밝혀진 소방관 처우는 다시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화재 1건당 받는 수당이 불과 3600원. 목숨을 걸고 화마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에 대한 예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언제까지 소방관들의 희생과 인내, 용기만 치켜세울 것인가.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라틴 아메리카 거장전  (0) 2008.09.05
[여적]카스트로의 야구사랑  (0) 2008.08.29
[여적]무너진 불패 신화  (1) 2008.08.15
[여적]이어도의 비극  (0) 2008.08.08
[여적]메갈로폴리스  (2) 2008.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