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餘滴)

[여적]이어도의 비극

입력 : 2008-08-08 18:00:41수정 : 2008-08-08 18:00:44

시인 유안진에게 이상향 ‘이어도’(離於島)는 다의어(多義語)다. ‘두 눈 부릅뜬 돌하르방이/절대로 없다 해도 반드시 있는/사강의 고독과, 까뮈의 실존이, /바람의 목소리와 파도의 흰 비늘로 기다리고 있는 섬 이어도(以語島)는, /지도 없어서 없다고 할 뿐인, 그림으로써 더욱 현실적인 섬인, /그림으로써 더욱 목마른 섬인/고독한 실존으로 증명되는/고독한 언어가 귀뜸해주는/이어도(耳語島)를 찾아서 이어도(以語島)로 가자고/비린 내음 짠 바람이 머리채를 나꿔챈다.’

시인 고은에게 이어도는 제주 어부의 핏속에 사무친 섬이다. ‘아무도 이어도에 간 일이 없다/그러나 누구인가 갔다 한다/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문충성 시인에게는 이어도가 노을 길에 돛단배 한 척 타고 가고 별빛 밝혀 배 저어 가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김정환 시인에겐 이어도에서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아내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한 철딱서니 없는 유언이다.

소설가 정한숙의 이어도는 인간의 이상향이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얼마 전 타계한 이청준의 이어도는 ‘현실이라는 섬’에 갇혀 사는 우리네 삶 자체다. 이어도는 문학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드라마, 음악극, 대중가요 등 수많은 장르의 예술로 승화하고 있다. 이어도는 제주 해녀들의 노동요 ‘이어도 타령’에서 보듯 삶의 응원단이다. 모두들 이어도가 수천 년 동안 제주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음을 고증하는 상징이다. 오랫동안 ‘전설의 섬’ ‘환상의 섬’으로 존재했던 이어도는 이제 우리에게 ‘실존의 섬’ 그 이상이다. 그곳엔 한국의 정서와 애환이 꿈틀거리고,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있는 실효적 지배지다.

중국이 이번엔 이어도(중국명 쑤옌자오·蘇岩礁)를 공식 자료 인터넷 사이트에 자기네 영토라고 기술해 스멀스멀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잖아도 3년 전 외교부 대변인이 직접 나서 이어도의 한국 영유권에 딴죽을 걸고 나섰던 중국이다. 중국의 패권주의가 ‘동북공정’에서 ‘바다공정’으로까지 확장되는 징조인가. 독도, 백두산, 두만강, 이어도. 우리의 영토주권이 곳곳에서 부쩍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저기서 탐하는 자가 많으니 지켜내야 할 땅과 들여야할 공력이 늘어만 간다.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소방관  (0) 2008.08.22
[여적]무너진 불패 신화  (1) 2008.08.15
[여적]메갈로폴리스  (2) 2008.08.01
[여적]‘키파’ 쓴 오바마  (0) 2008.07.25
[여적]올림픽 요리  (2) 2008.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