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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라틴 아메리카 거장전

입력 : 2008-09-05 18:00:54수정 : 2008-09-05 18:00:55

라틴 아메리카 예술사에서 아틀 박사(1875~1964)와 벽화를 빼놓고선 얘기하기 어렵다. 아틀 박사는 화가이지만 혁명가로서 열정은 더욱 뜨거웠다. 코즈모폴리턴적인 인물인 그는 때에 따라 다른 얼굴로 등장한다. 작가에다 화산학자로 이름을 드날렸고, 식도락가적인 요리사, 미술재료 발명가이기도 하다. 정치지도자로 평가받는가 하면 일간지 편집자로 일한 언론인이었으며, 쉴 줄 모르고 걷는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멕시코 민족주의 예술운동인 ‘메히카니스모’와 벽화운동의 선구자로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가 화산을 주로 그리면서 벽화운동의 이론적 틀을 세운 공적은 지대하다. 그가 그린 화산 그림에선 태곳적 자연과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속박되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의 강한 정열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헤라르도 무리요란 본명보다 아틀이라는 아스텍식 가명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 가명을 씀으로써 스페인 유산을 떨쳐버리고 선조인 멕시코 인디언들과 그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아틀은 나와틀족의 언어로 ‘물’이라는 뜻이다. 그는 밀랍·송진·기름·안료를 섞어 만든 크레용의 일종인 ‘아틀 컬러’를 발명해 드로잉과 벽화 등에 사용했다.

아틀 박사는 대영백과사전이 ‘세계의 위대한 예술가 100인’으로 뽑은 호세 클레멘트 오로스코를 비롯한 청년미술가들과 함께 멕시코 혁명이 발발한 1910년 처음으로 멕시코 미술가전을 열었다. 아틀 박사의 후광을 크게 받은 오로스코,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는 멕시코 ‘3대 벽화가’로 불린다. 혁명의 영향으로 탄생한 벽화운동은 근대미술사의 소외지역이었던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3대 벽화가’의 주요 작품을 비롯해 중남미 15개국 대표작가 80여 명의 그림을 완상할 수 있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이 덕수궁미술관에서 11월 9일까지 열리고 있다. 굴곡 많은 역사와 민중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는 그림에서는 애잔함과 저항정신이 전해지기도 한다. 근·현대 라틴 아메리카 회화를 사상 처음 대규모로 한국에 소개하는 전시회여서 미술 애호가들이 유럽이나 영미 중심에서 벗어나 심미안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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