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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카스트로의 야구사랑

입력 : 2008-08-29 17:51:50수정 : 2008-08-29 17:51:55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야구 사랑은 세계 국가원수급들 가운데 단연 금메달 감이다. 그런 만큼 그가 뿌리는 숱한 야구 일화도 금메달 수준이다.

카스트로는 야구 시즌이 되면 중요한 각료회의 같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장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특히 중남미 각국을 순회하며 열리는 리그전이 있는 날이면 운동장에 직접 나가 선수들과 장난을 친다든가, 혁명동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에게 공을 던지며 관중들에게 경기 전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즐겼다. 카스트로는 홈 플레이트 바로 뒤에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거나 각료들을 몽땅 데리고 나와 관중들과 함께 외야석에 자리 잡기도 했다. 전기 작가 로버트 쿼크의 증언을 들어보면 국제 경기가 열리는 경우 그는 심지어 감독을 불러다 세우고는 작전을 지시하거나 몇 회는 자신이 코치를 맡겠노라고 말하기도 했다.

카스트로에게 야구는 또 하나의 전쟁이기도 했다. 특히 미국 팀과의 경기라면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렸다. 홈플레이트 뒤편에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카스트로는 야구라는 이름의 전쟁에서 미국에 지는 것은 수치이며, 심지어 반역이라고까지 극언할 정도다. 1990년대 중후반 올란도 에르난데스, 리반 에르난데스 형제를 비롯해 쿠바 대표 출신 선수들의 미국행 망명 러시가 있었을 때에도 카스트로는 “그런 선수들이 없어도 쿠바 야구는 세계 최강”이라고 호언했다. 언젠가 그는 “우리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하면 미국야구는 쑥대밭이 된다”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야구가 인기를 누리는 나라에서 온 기자에게 그 나라의 홈런왕은 누구인지 묻기도 한다. 젊은 시절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뻔했다는 그는 야구 기록을 꼼꼼히 챙겨두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카스트로는 쿠바 야구의 정신적인 기둥이다.

그런 카스트로가 이번엔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기고한 글에서 쿠바의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보여준 한국 대표팀의 실력을 극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베이징올림픽 개막 직전 그의 막내아들이 이끄는 쿠바 대표팀의 전지훈련을 한국에서 치른 인연도 뜻 깊다. 야구를 통해 체제가 다른 한국과 쿠바 간의 우호와 협력관계가 획기적으로 넓어지면 금상에 꽃을 올려놓는 격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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