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09-01-02 17:41:50ㅣ수정 : 2009-01-02 17:41:52
ㆍ하지만 미국의 위기는 70년대 시작됐다
▲장기 20세기…조반니 아리기 | 그린비
미국 진앙의 전세계적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세계질서에서 미국 헤게모니의 필연적 쇠퇴를 의미하는가? 다수의 전문가들은 유보적인 입장에서 벗어나려 한다. 미국 쇠퇴론이나 몰락론은 대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금융위기와 이라크전쟁의 실패 같은 당면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더불어 세계체계론을 주도하는 조반니 아리기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미국의 세계 헤게모니 위기는 1970년대에 벌써 시작됐다고 맥을 짚는다. 한때의 우발적인 것이 아닌 구조적인 위기라는 견해다. 미국의 금융적 팽창이 이 때부터 본격화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리기는 주요 저작의 하나인 <장기 20세기>(원제 The Long Twentieth Century: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Our Times)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순환 과정의 분석을 통해 미국의 세계 헤게모니를 정밀 투시한다. ‘장기 20세기’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특수한 발전 단계를 구성하는 네 단계 가운데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세기를 일컫는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20세기의 시작과 끝을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과 1991년 소련 붕괴로 잡고, 이를 ‘단기 20세기’라고 명명했던 것과 비교된다.
아리기는 장기 20세기 자체의 심층 분석보다 중세 이탈리아의 제노바, 네덜란드, 대영제국을 거쳐 미국 헤게모니의 금융적 팽창 시기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자본주의의 미래 시나리오를 그리려 한다.
이 책의 중심 열쇳말은 ‘체계적 축적순환’이다. 체계적 축적순환이란 용어는 자본주의를 교역 세계 최상층으로 보는 아날학파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관점에서 도출한 것이다. 체계적 축적순환은 국가간 체계와 결합됨으로써 본격적으로 근대 자본주의의 역사를 만들어왔다고 지은이는 파악한다. 아리기는 브로델, 월러스틴과 학문적 노선을 같이 하면서도 적지 않은 차이점을 드러낸다. 브로델의 장기순환 추세나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의 순환개념 같은 ‘비과학적이고 자본주의에 고유한 동학이 아닌 것’으로 자본주의적 순환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아리기의 생각이다. 이 책은 3분의 2 이상을 ‘장기 20세기’ 이전의 역사적 자본주의 전개과정 논의에 할애한다. 미국 주도의 세계자본주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자본주의 시기 전체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선결조건이라는 논리에서다.
첫 번째인 제노바 축적 순환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를 자본주의 시대와 연결하는 계기가 된다. 이 시기 고도금융의 부상과 국가형성을 통해 나타나는 국가간 군사적 경합이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수립하는 기본 틀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네덜란드 축적체제에서는 본격적인 세계경제로 자리잡은 새로운 축적체제가 ‘보호비용 내부화’를 통해 세계상업의 집산지이자 대양의 패자로서 전 지구적으로 축적을 확대해 나간다. 세 번째인 영국 헤게모니 시기에는 세계의 공장으로서 전 지구적 상업적 네트워크 형성과 자유무역 제국주의라는 틀을 형성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네 번째인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는 앞선 모델의 일정한 계승인 동시에 새로운 변신과 일정 부분 지양의 형태를 띤다.
미국은 자신들의 쇠퇴하는 헤게모니를 반전시키기 위해 앞선 헤게모니 국가들보다 훨씬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체계의 구조적 위기를 감소시키기보다 도리어 심화시키게 되는 증거들이 이라크 전쟁의 실패와 미국발 금융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예상되는 향후 체계의 카오스에 대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 번째 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지만 대서양 공동지배 방식으로 진정한 세계제국이 형성되고 전 세계에서 착취한 이윤에 의존해 새롭게 지배를 전환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동아시아가 세계 시장사회의 중심지로 등장해 비교적 형평성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길이다. 세 번째 길은 헤게모니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끝없는 세계적 수준의 카오스가 지속되는 것이다.
다음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할 잠재력을 가진 지역으로 아리기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은 다른 전문가들처럼 동아시아다. 다만 현실화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남겨놓았다. 한·중·일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팽창 수행 주체들의 역량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기는 이 책의 출간 이후 일본보다 중국의 부상을 중심에 놓고 논의를 시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중국의 경제적 성장이 그 자체로 세계문화와 문명들의 상호존중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시장 사회의 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기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 체계를 거부하는 미국의 저항이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4년에 초판이 나왔던 이 책의 시간적 간격을 한국어판 서문에서 보완해설하고 있다. “미국 헤게모니는 그 최종적 위기로 판명날 수 있는 시기에 진입했다. 미국은 단연코 세계 최강국으로 남아 있지만 나머지 세계에 대한 미국의 관계는 ‘헤게모니 없는 지배’로 묘사된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지금에서야 출간된 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 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 스터디그룹들에서 학습교재로 쓰일 정도로 유명세를 내왔다.
아리기가 이사로 있는 페르낭 브로델 연구센터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으며 세계체계론 소개에 열정을 바치고 있는 전문가인 백승욱 중앙대 교수의 3년간에 걸친 세심한 번역이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는 취약점을 만회해주고 있다. 3만5000원
▲장기 20세기…조반니 아리기 | 그린비
미국 진앙의 전세계적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세계질서에서 미국 헤게모니의 필연적 쇠퇴를 의미하는가? 다수의 전문가들은 유보적인 입장에서 벗어나려 한다. 미국 쇠퇴론이나 몰락론은 대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금융위기와 이라크전쟁의 실패 같은 당면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리기는 장기 20세기 자체의 심층 분석보다 중세 이탈리아의 제노바, 네덜란드, 대영제국을 거쳐 미국 헤게모니의 금융적 팽창 시기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자본주의의 미래 시나리오를 그리려 한다.
이 책의 중심 열쇳말은 ‘체계적 축적순환’이다. 체계적 축적순환이란 용어는 자본주의를 교역 세계 최상층으로 보는 아날학파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관점에서 도출한 것이다. 체계적 축적순환은 국가간 체계와 결합됨으로써 본격적으로 근대 자본주의의 역사를 만들어왔다고 지은이는 파악한다. 아리기는 브로델, 월러스틴과 학문적 노선을 같이 하면서도 적지 않은 차이점을 드러낸다. 브로델의 장기순환 추세나 니콜라이 콘드라티에프의 순환개념 같은 ‘비과학적이고 자본주의에 고유한 동학이 아닌 것’으로 자본주의적 순환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아리기의 생각이다. 이 책은 3분의 2 이상을 ‘장기 20세기’ 이전의 역사적 자본주의 전개과정 논의에 할애한다. 미국 주도의 세계자본주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자본주의 시기 전체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선결조건이라는 논리에서다.
첫 번째인 제노바 축적 순환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를 자본주의 시대와 연결하는 계기가 된다. 이 시기 고도금융의 부상과 국가형성을 통해 나타나는 국가간 군사적 경합이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수립하는 기본 틀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네덜란드 축적체제에서는 본격적인 세계경제로 자리잡은 새로운 축적체제가 ‘보호비용 내부화’를 통해 세계상업의 집산지이자 대양의 패자로서 전 지구적으로 축적을 확대해 나간다. 세 번째인 영국 헤게모니 시기에는 세계의 공장으로서 전 지구적 상업적 네트워크 형성과 자유무역 제국주의라는 틀을 형성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네 번째인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자본주의는 앞선 모델의 일정한 계승인 동시에 새로운 변신과 일정 부분 지양의 형태를 띤다.
미국은 자신들의 쇠퇴하는 헤게모니를 반전시키기 위해 앞선 헤게모니 국가들보다 훨씬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체계의 구조적 위기를 감소시키기보다 도리어 심화시키게 되는 증거들이 이라크 전쟁의 실패와 미국발 금융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예상되는 향후 체계의 카오스에 대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 번째 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지만 대서양 공동지배 방식으로 진정한 세계제국이 형성되고 전 세계에서 착취한 이윤에 의존해 새롭게 지배를 전환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동아시아가 세계 시장사회의 중심지로 등장해 비교적 형평성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길이다. 세 번째 길은 헤게모니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끝없는 세계적 수준의 카오스가 지속되는 것이다.
다음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할 잠재력을 가진 지역으로 아리기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은 다른 전문가들처럼 동아시아다. 다만 현실화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남겨놓았다. 한·중·일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팽창 수행 주체들의 역량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기는 이 책의 출간 이후 일본보다 중국의 부상을 중심에 놓고 논의를 시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렇지만 중국의 경제적 성장이 그 자체로 세계문화와 문명들의 상호존중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시장 사회의 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기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 체계를 거부하는 미국의 저항이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4년에 초판이 나왔던 이 책의 시간적 간격을 한국어판 서문에서 보완해설하고 있다. “미국 헤게모니는 그 최종적 위기로 판명날 수 있는 시기에 진입했다. 미국은 단연코 세계 최강국으로 남아 있지만 나머지 세계에 대한 미국의 관계는 ‘헤게모니 없는 지배’로 묘사된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지금에서야 출간된 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 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 스터디그룹들에서 학습교재로 쓰일 정도로 유명세를 내왔다.
아리기가 이사로 있는 페르낭 브로델 연구센터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한 적이 있으며 세계체계론 소개에 열정을 바치고 있는 전문가인 백승욱 중앙대 교수의 3년간에 걸친 세심한 번역이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는 취약점을 만회해주고 있다.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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