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1-16 17:36:17수정 : 2009-01-16 17:36:19

▲청부과학…데이비드 마이클스 | 이마고

“지난 20년간 소송과 정치, 여론에서의 전략은 영리하게 구상되고 실행됐으나 그것이 승리의 수단은 아니었다. 건강을 해친다는 비난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의심을 만들어내는 것, 대중에게 담배를 피우도록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흡연권을 옹호하는 것, 건강 위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객관적 과학연구를 독려하는 것에 기초한 지연전술이 핵심이었다.”

1972년 미국 담배연구소 직원이 동료에게 쓴 이 편지는 흡연 폐해론 방어에는 정책이 아닌 과학이 지름길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 물증의 하나다. 어느 중역이 흡족해 하면서 남겼다는 메모는 훨씬 적나라하다. “의심은 우리의 제품이다. 일반 대중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사실의 실체’에 도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의구심의 조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논쟁거리를 만들어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거대 담배회사들이 수십년에 걸쳐 후원한 연구가 조작되고 제조업자에게 유리한 데이터만을 선별해 내놓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름하여 ‘펀딩효과’다. 연구후원자들이 원하는 결과와 과학자들의 보고서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리키는 이 말은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들에게조차 예외가 아닐 정도다. 1980년대 간접흡연이 문제를 일으키자 담배업계는 낯 뜨거운 ‘건전과학’ 운동을 벌인다. 자본과 과학의 뒷거래인 ‘청부과학’이다.

쓰레기 과학이 건전과학의 탈을 썼으니 양두구육 격이다. ‘제품방어 산업’이라고 불리는 청부과학은 결국 간접적인 청부살인과 다를 바 없다.

선두주자인 담배 업계를 보고 배운 것은 한두 종의 기업만이 아니었다. 석면, 납, 크롬, 수은, 디아세틸, 방향족 아민 화학염료, 벤젠, 플라스틱 화합물, 베릴륨, 염소 화합물, 농약과 각종 살충제, 의약품 제조기업에 이르기까지 온갖 유해물질 배출산업의 집대성이다.

클린턴 정부에서 에너지부 차관보로 일한 적이 있는 조지워싱턴대 환경·산업보건학 교수 데이비드 마이클스의 <청부과학>(원제 Doubt Is Their Product)은 자본·기업과 결탁한 과학이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어떻게 파괴하고 위협하는지에 대한 고발장이다. 치명적인 위험상품의 과학적 은폐·왜곡 수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위험성에 물타기하는 교묘한 데이터 조작방법 등을 읽다보면 분노가 치미는 걸 참아내야 한다.

중대한 건강 위험을 기업들이 수년간 자기들만 알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문건들, 불확실성을 제조하기 위한 업계 캠페인을 입증하는 서류들, 발표되지 않은 채 기업후원자들에 의해 감춰진 중요 과학연구들도 까발려진다. 부도덕 업자들은 때로는 가장 영리한 정책이라는 ‘전략적 무지’로 대응한다.

미국의 거대 석면 제조사들이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지급한 막대한 보상금 때문에 파산하기 수십년 전에 이미 석면의 위험성을 밝힌 역학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공분을 금치 못한다. 대중들은 ‘죽음의 팝콘’을 알고 있을까. 김이 나는 팝콘 봉투를 열면서 맡는 향료 연기가 기관지와 폐의 적이라는 사실을. 팝콘에서 나오는 디아세틸이라는 물질로 인한 피해 연구 결과가 오래 전에 나왔으나 미국 산업안전보건부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폭로한다. 모든 게 미국 얘기지만 한국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금방 다가온다.

지은이는 공중보건을 수호할 책임을 진 사람들이 과학의 절대적 확실성을 추구하는 것은 무익하고 역효과만 낳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확실성을 기다리다 보면 영원히 기다리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연구에 참여한 모든 후원자의 완전한 정보공개와 최종 심판자로서의 법원의 기능을 강화할 것 등 12가지 제안도 내놓았다. 이홍상 옮김. 1만9000원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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