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11-21 16:55:59ㅣ수정 : 2008-11-21 17:36:44
▲쇼크 독트린…나오미 클라인 | 살림출판사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고문기법 전수자가 된 심리학자 이웬 카메론은 기억을 지워버린 뒤 백지상태에서 인성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칠판’에서 힌트를 얻은 걸까. 카메론은 1950년대 CIA 후원으로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병원에서 심리치료 환자들에게 잔인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정신질환자의 두뇌에 충격을 가해 인성을 바꿔보는 실험을 하면서 기억상실증을 비롯한 치명적인 부작용만 낳았다. 하지만 카메론의 쇼크 요법은 역설적이게도 당대에 미국의 고문기법을 주도적으로 발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의 실험은 극약처방만이 왜곡된 사회 패턴을 치료할 수 있다고 여긴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과 흡사하다. 적어도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의 눈에는 그렇다.
시카고학파의 아버지인 프리드먼은 오직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위기가 발생하면 쇼크 요법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철저히 신봉했다.
프리드먼은 첫번째 실험실이 된 칠레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경제개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쇼크’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반복할 정도로 집요했다. 공격은 즉각 한 번에 가해야 한다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충고를 응용한 이 방법은 가장 오래 남아 있는 프리드먼의 전략적 유산이기도 하다.
시카고학파의 대표적인 실험실인 남미, 사회주의 체제를 전환한 동유럽과 러시아, 톈안먼 사태 당시의 중국,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흑인정권 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이 침공한 이라크, 지진해일이 휩쓴 스리랑카,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뉴올리언스. 하나같이 급진적이고 과격한 쇼크 요법이 동원된 대표적인 사례다. 클라인은 역작 <쇼크 독트린>에서 이를 ‘재난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그는 재난을 멋진 기회로 여기는 ‘재난자본주의 복합체’가 ‘군산복합체’보다 활동반경이 넓다고 본다. 지은이가 말하는 재난은 테러, 전쟁, 폭락장세의 금융시장, 절대 빈곤 등 인재(人災)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태풍(허리케인), 지진, 홍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도 아우른다.
그는 카메론의 쇼크 요법이 시카고학파의 논리적 바탕이 되는 고유한 시각을 제공했다고 믿는다. 카메론이 인간의 기억을 태초 상태로 되돌리려는 꿈을 가졌다면 프리드먼은 사회의 기존 패턴을 해체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카메론의 이론이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기존 체제를 모조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 전제부터 오류였듯이 재난자본주의자들도 파괴와 창조, 손상과 치료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지은이는 통타한다.
시카고학파는 자유시장의 3대 핵심인 민영화, 탈규제, 정부서비스 감축이라는 국면전환적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군사독트린 ‘충격과 공포: 단번에 기세를 장악하라’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점진적 변화에는 대응할 수 있으나 수십 가지 정책변화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무기력 상태에 빠져 맥없이 지쳐버린다. 약효가 미흡하면 더욱 강력한 충격요법이 즉각 첨가된다. 여기엔 언제나 그렇듯이 전 세계적인 ‘지적 제국주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프리드먼보다 더 프리드먼 같은 제자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유감스럽게도 최대 수혜자는 민중이 아니라 칼자루를 쥔 집권층과 다국적 기업들이다. 이라크 전쟁 통에 한몫을 챙기는 방위산업체, 지진 해일이 쓸어간 해변을 사들인 관광리조트 업체 같은 것들이다. 쇼크 요법은 실험자가 아닌 대상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고 대부분 실패작으로 끝났다. ‘러시아의 피노체트’가 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개혁 당시 ‘더 이상 실험은 그만’이라는 유명한 그래피티를 모스크바 벽에서 볼 수 있었던 게 좋은 예다. 푸틴의 등장은 쇼크요법 시대에 대한 반발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뒤 백지상태에서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모델을 창조하려 했으나 백지상태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지은이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중남미 여러 나라의 의지에서 희망을 찾는다. 쇼크 독트린의 작동 기제를 전반적으로 깊이 이해하게 되면 지역사회는 놀라지도 혼란을 겪지도 않게 된다. 오늘날 중남미국가들은 이를 알아차리고 더 이상 쇼크 독트린을 믿지 않게 됐다. 베네수엘라는 재난자본주의의 쇼크 요법 프로그램 실천자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탈퇴했고, 니카라과도 탈퇴를 고려 중이다. IMF의 전 세계 대출 포트폴리오가 810억달러에서 최근 3년 만에 118억달러로 줄어든 것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남아시아 쓰나미 충격 후 태국 현지주민들의 대응도 관광 리조트업자들에게 땅을 팔아넘긴 스리랑카 어민들과는 달랐다. 태국 주민들의 직접 재건노력은 백지상태를 끝없이 추구하는 재난자본주의 복합체의 사상과는 정반대다.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 사람들이 태국을 방문해 배워갔을 정도다.
이처럼 이 책은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가 민주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축승의 술잔을 높이 들었다는 신화적 성공담을 통쾌하게 깨뜨린다. 격변의 재난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점검하면서 세계 경제 위기의 근원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한 지은이의 슬기가 돋보인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참패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재난자본주의의 주요 피해자였던 한국 국민들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 김소희 옮김. 2만8000원
그의 실험은 극약처방만이 왜곡된 사회 패턴을 치료할 수 있다고 여긴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의 생각과 흡사하다. 적어도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의 눈에는 그렇다.
시카고학파의 아버지인 프리드먼은 오직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위기가 발생하면 쇼크 요법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철저히 신봉했다.
프리드먼은 첫번째 실험실이 된 칠레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경제개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쇼크’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반복할 정도로 집요했다. 공격은 즉각 한 번에 가해야 한다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충고를 응용한 이 방법은 가장 오래 남아 있는 프리드먼의 전략적 유산이기도 하다.
시카고학파의 대표적인 실험실인 남미, 사회주의 체제를 전환한 동유럽과 러시아, 톈안먼 사태 당시의 중국,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흑인정권 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이 침공한 이라크, 지진해일이 휩쓴 스리랑카,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뉴올리언스. 하나같이 급진적이고 과격한 쇼크 요법이 동원된 대표적인 사례다. 클라인은 역작 <쇼크 독트린>에서 이를 ‘재난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다. 그는 재난을 멋진 기회로 여기는 ‘재난자본주의 복합체’가 ‘군산복합체’보다 활동반경이 넓다고 본다. 지은이가 말하는 재난은 테러, 전쟁, 폭락장세의 금융시장, 절대 빈곤 등 인재(人災)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태풍(허리케인), 지진, 홍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도 아우른다.
그는 카메론의 쇼크 요법이 시카고학파의 논리적 바탕이 되는 고유한 시각을 제공했다고 믿는다. 카메론이 인간의 기억을 태초 상태로 되돌리려는 꿈을 가졌다면 프리드먼은 사회의 기존 패턴을 해체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카메론의 이론이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기존 체제를 모조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 전제부터 오류였듯이 재난자본주의자들도 파괴와 창조, 손상과 치료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지은이는 통타한다.
시카고학파는 자유시장의 3대 핵심인 민영화, 탈규제, 정부서비스 감축이라는 국면전환적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군사독트린 ‘충격과 공포: 단번에 기세를 장악하라’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점진적 변화에는 대응할 수 있으나 수십 가지 정책변화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무기력 상태에 빠져 맥없이 지쳐버린다. 약효가 미흡하면 더욱 강력한 충격요법이 즉각 첨가된다. 여기엔 언제나 그렇듯이 전 세계적인 ‘지적 제국주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프리드먼보다 더 프리드먼 같은 제자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유감스럽게도 최대 수혜자는 민중이 아니라 칼자루를 쥔 집권층과 다국적 기업들이다. 이라크 전쟁 통에 한몫을 챙기는 방위산업체, 지진 해일이 쓸어간 해변을 사들인 관광리조트 업체 같은 것들이다. 쇼크 요법은 실험자가 아닌 대상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고 대부분 실패작으로 끝났다. ‘러시아의 피노체트’가 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개혁 당시 ‘더 이상 실험은 그만’이라는 유명한 그래피티를 모스크바 벽에서 볼 수 있었던 게 좋은 예다. 푸틴의 등장은 쇼크요법 시대에 대한 반발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뒤 백지상태에서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모델을 창조하려 했으나 백지상태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지은이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중남미 여러 나라의 의지에서 희망을 찾는다. 쇼크 독트린의 작동 기제를 전반적으로 깊이 이해하게 되면 지역사회는 놀라지도 혼란을 겪지도 않게 된다. 오늘날 중남미국가들은 이를 알아차리고 더 이상 쇼크 독트린을 믿지 않게 됐다. 베네수엘라는 재난자본주의의 쇼크 요법 프로그램 실천자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탈퇴했고, 니카라과도 탈퇴를 고려 중이다. IMF의 전 세계 대출 포트폴리오가 810억달러에서 최근 3년 만에 118억달러로 줄어든 것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남아시아 쓰나미 충격 후 태국 현지주민들의 대응도 관광 리조트업자들에게 땅을 팔아넘긴 스리랑카 어민들과는 달랐다. 태국 주민들의 직접 재건노력은 백지상태를 끝없이 추구하는 재난자본주의 복합체의 사상과는 정반대다.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 사람들이 태국을 방문해 배워갔을 정도다.
이처럼 이 책은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가 민주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축승의 술잔을 높이 들었다는 신화적 성공담을 통쾌하게 깨뜨린다. 격변의 재난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점검하면서 세계 경제 위기의 근원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한 지은이의 슬기가 돋보인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참패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재난자본주의의 주요 피해자였던 한국 국민들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 김소희 옮김.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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