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2-20 18:02:50ㅣ수정 : 2009-02-20 18:02:52
ㆍ“이론 여전히 효과적” 美·英 등서 불황구원자로 재규명
ㆍ경제 ‘국가개입 여부’가 아닌 ‘어떠한 개입이냐’ 문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로버트 스키델스키 | 후마니타스
‘프리드먼이 죽고 케인스가 살아났다.’ ‘케인스 60년 만에 부활하다.’ ‘케인스가 환생했다.’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케인스 경제학이 다시 햇볕을 쬐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이후 너나없이 케인스의 이름을 불러댄다. 케인스주의와 결별을 선언하고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나섰던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주류 경제지들조차 개종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라는 듯이. 2001년 9·11 테러 직후 프랑스의 르몽드지가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쓴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를 연상케 한다. 한국의 현대경제연구원도 ‘2009년 해외 10대 트렌드’라는 보고서에서 ‘케인스 경제학’을 포함시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가 친케인스주의자들로 채워진 것을 비롯해 각국 정부는 속속 케인스 카드를 뽑아들고 있다. 케인스의 모국인 영국의 앨리스테어 달링 재무장관은 “케인스의 많은 이론들이 여전히 효과적이며 그의 처방대로 2010년과 2011년 예산을 미리 끌어다가 공공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경기부양 계획을 실행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비범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처방전은 이처럼 자본주의가 병상에 드러누울 때마다 감초처럼 등장한다.
때맞춰 번역 출간된 그의 대하전기(大河傳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만년 부도옹(不倒翁) 같은 그의 사상적 배경과 삶의 궤적을 스토리텔링의 극대화로 연출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30년에 걸쳐 완성한 케인스 전기는 더없이 방대하고도 세밀하다. 모두 1645쪽에 달하는 분량이 먼저 그대로 보여준다. 원래 3부작으로 된 전기를 단행본용으로 40%가량 축약한 게 이 정도다. 꼼꼼한 자료 조사와 수많은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거쳐 집대성한 대학자의 삶이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정교하게 시야에 잡힌다.
지은이는 케인스의 주요 저작과 논문, 강연 내용, 이론의 쟁점과 역사적 함의, 시대적 배경, 이론을 둘러싼 갖가지 반응, 세계를 움직인 인물들과의 폭넓은 교유, 20세기의 역사적 사건과의 연관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천착하고 재생해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전기를 넘어 케인스 해설서로도 읽힌다.
세계 자본주의의 발흥지인 영국에서 경제학이 분과 학문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는 덕목도 지녔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등 고전학파 경제학 거장들이 모두 영국에서 산 덕분이기도 하다. 1, 2차 세계 대전과 브레턴우즈 체제의 성립 과정, 세계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는 과정 등 역사적인 순간들의 뒷담화도 자세하게 밝혀진다. 미시적으로는 공식적인 기록과 더불어 관련 인물들의 편지, 일기, 비망록 등 사적인 기록물을 통해 케인스의 내밀한 심리적 부분까지 바닥을 드러낸다.
애초 역사를 전공했던 스키델스키가 이 전기를 쓰기 위해 경제학 강의를 들어가며 매진했을 정도였다. 역사학과 경제학의 찰떡 같은 결합의 산물인 셈이다. 지은이가 경제학자라기보다는 ‘경제학적 교양을 지닌 역사가’라고 자부하는 데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저자는 케인스가 정부의 재정정책을 전지전능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느냐는 오해를 불식시켜준다. 케인스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 개입이 있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어떠한 개입이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케인스가 정부의 책무를 강조했다고 해서 정부가 전지전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많은 오해가 케인스 제자들의 과도한 신념으로 말미암은 부분이 적지 않다.
케인스에 대한 스키델스키의 궁극적인 관점은 또 하나의 영웅사관이다. 개인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고, 케인스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케인스의 성품이 고전시대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가장 닮은 것이었다고 여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기서 나타난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대량실업을 동반하는 경제 불황을 정부가 나서서 예방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1000명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이러한 사상이 케인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정부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케인스의 생각을 그런대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10만명 중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위대한 경제학자들 가운데 케인스는 생전에 ‘명사’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다.”
전기에서는 위대한 천재 경제학자의 초상만이 아니라 철학자, 정치가로서의 풍모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한 인간으로서 케인스는 미학자와 경영자의 매혹적인 조합이어서 그가 쓴 경제저술에서는 시적 자질이 번득였다고 스키델스키는 회상한다. 생전에 경제학 학위를 받은 적이 없으며 학위라고는 수학 학사가 전부인 케인스가 위대한 경제학자로 평가받는 비밀을 담아냈다.
방대한 책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첫 문장은 평생 최고 엘리트로 살았음을 상징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그 삶의 거의 대부분을 자신을 제외한 영국인들,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을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보냈다.” 영국 최고의 사립고교인 이튼스쿨과 최고의 대학인 케임브리지를 졸업했고, 최고의 부처인 재무부에 근무하며 주류 경제학계의 핵심 인물로 지냈으니 이런 얘기를 들을 만도 하다. 마지막 구절은 지은이의 속내를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다. “케인스 사상은 세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고세훈 옮김. 전 2권. 1권 3만5000원, 2권 3만원
ㆍ경제 ‘국가개입 여부’가 아닌 ‘어떠한 개입이냐’ 문제다
로버트 스키델스키 | 후마니타스
‘프리드먼이 죽고 케인스가 살아났다.’ ‘케인스 60년 만에 부활하다.’ ‘케인스가 환생했다.’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케인스 경제학이 다시 햇볕을 쬐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이후 너나없이 케인스의 이름을 불러댄다. 케인스주의와 결별을 선언하고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나섰던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주류 경제지들조차 개종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라는 듯이. 2001년 9·11 테러 직후 프랑스의 르몽드지가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쓴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를 연상케 한다. 한국의 현대경제연구원도 ‘2009년 해외 10대 트렌드’라는 보고서에서 ‘케인스 경제학’을 포함시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가 친케인스주의자들로 채워진 것을 비롯해 각국 정부는 속속 케인스 카드를 뽑아들고 있다. 케인스의 모국인 영국의 앨리스테어 달링 재무장관은 “케인스의 많은 이론들이 여전히 효과적이며 그의 처방대로 2010년과 2011년 예산을 미리 끌어다가 공공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경기부양 계획을 실행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비범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처방전은 이처럼 자본주의가 병상에 드러누울 때마다 감초처럼 등장한다.
1915년 무렵 영국 가싱턴에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왼쪽), 작가 리튼 스트레이치(오른쪽)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는 케인스(가운데).
때맞춰 번역 출간된 그의 대하전기(大河傳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만년 부도옹(不倒翁) 같은 그의 사상적 배경과 삶의 궤적을 스토리텔링의 극대화로 연출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로버트 스키델스키가 30년에 걸쳐 완성한 케인스 전기는 더없이 방대하고도 세밀하다. 모두 1645쪽에 달하는 분량이 먼저 그대로 보여준다. 원래 3부작으로 된 전기를 단행본용으로 40%가량 축약한 게 이 정도다. 꼼꼼한 자료 조사와 수많은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거쳐 집대성한 대학자의 삶이 마치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정교하게 시야에 잡힌다.
지은이는 케인스의 주요 저작과 논문, 강연 내용, 이론의 쟁점과 역사적 함의, 시대적 배경, 이론을 둘러싼 갖가지 반응, 세계를 움직인 인물들과의 폭넓은 교유, 20세기의 역사적 사건과의 연관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천착하고 재생해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전기를 넘어 케인스 해설서로도 읽힌다.
세계 자본주의의 발흥지인 영국에서 경제학이 분과 학문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는 덕목도 지녔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등 고전학파 경제학 거장들이 모두 영국에서 산 덕분이기도 하다. 1, 2차 세계 대전과 브레턴우즈 체제의 성립 과정, 세계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는 과정 등 역사적인 순간들의 뒷담화도 자세하게 밝혀진다. 미시적으로는 공식적인 기록과 더불어 관련 인물들의 편지, 일기, 비망록 등 사적인 기록물을 통해 케인스의 내밀한 심리적 부분까지 바닥을 드러낸다.
애초 역사를 전공했던 스키델스키가 이 전기를 쓰기 위해 경제학 강의를 들어가며 매진했을 정도였다. 역사학과 경제학의 찰떡 같은 결합의 산물인 셈이다. 지은이가 경제학자라기보다는 ‘경제학적 교양을 지닌 역사가’라고 자부하는 데 손색이 없어 보인다.
1945년 12월 영국으로 돌아와 상원을 향해 서둘러 가는 케인스와 부인 리디아.
케인스에 대한 스키델스키의 궁극적인 관점은 또 하나의 영웅사관이다. 개인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고, 케인스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케인스의 성품이 고전시대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가장 닮은 것이었다고 여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기서 나타난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대량실업을 동반하는 경제 불황을 정부가 나서서 예방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1000명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이러한 사상이 케인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정부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케인스의 생각을 그런대로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10만명 중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위대한 경제학자들 가운데 케인스는 생전에 ‘명사’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다.”
전기에서는 위대한 천재 경제학자의 초상만이 아니라 철학자, 정치가로서의 풍모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한 인간으로서 케인스는 미학자와 경영자의 매혹적인 조합이어서 그가 쓴 경제저술에서는 시적 자질이 번득였다고 스키델스키는 회상한다. 생전에 경제학 학위를 받은 적이 없으며 학위라고는 수학 학사가 전부인 케인스가 위대한 경제학자로 평가받는 비밀을 담아냈다.
방대한 책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첫 문장은 평생 최고 엘리트로 살았음을 상징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그 삶의 거의 대부분을 자신을 제외한 영국인들,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을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보냈다.” 영국 최고의 사립고교인 이튼스쿨과 최고의 대학인 케임브리지를 졸업했고, 최고의 부처인 재무부에 근무하며 주류 경제학계의 핵심 인물로 지냈으니 이런 얘기를 들을 만도 하다. 마지막 구절은 지은이의 속내를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다. “케인스 사상은 세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고세훈 옮김. 전 2권. 1권 3만5000원, 2권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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