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3-06 17:51:54ㅣ수정 : 2009-03-06 17:51:57
미러링 피플-세상 모든 관계를 지배하는 뇌의 비밀
마르코 야코보니 | 갤리온
부부가 함께 오래 살수록 외모도 닮는다는 속설을 과학자들이 실증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영국의 한 연구팀은 이런 현상이 부부의 성격이 갈수록 비슷해지는 데다 두 사람의 감정 표현도 유사해지는 것과 관련성이 크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희로애락에 따라 같이 웃고 찡그리면 특정 안면근육과 주름살이 수축되거나 이완되면서 부부의 인상이 비슷해진다는 학설이다. 결혼생활의 질이 높을수록 얼굴은 더 많이 닮는다고 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엄마의 표정을 모방한다. 엄마들 역시 자기 아이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한다. 부모와 아기들이 서로 따라 하는 일은 표정 외에도 너무나 많다. 따라 하려는 충동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모방은 인간의 사회적 관습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수단이 돼왔다.
사람들은 서로 좋아할수록 더 많이 모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한 실험에서는 모방과 호감이 함께 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국 심리학자 수전 블랙모어는 인간을 모든 동물과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모방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이 같은 모방과 동조는 개인들을 ‘우리’라는 울타리로 묶어주는 접착제다.
이런 감정은 뇌의 특정부위를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게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마르코 야코보니의 견해다. 야코보니는 ‘거울 뉴런’이라는 작은 신경세포 회로에서 찾아낸 비밀을 최신작 <미러링 피플>(원제 Mirroring People: The New Science of How We Connect With Others)에서 풀어놓는다.
야코보니는 거울 뉴런을 인간이 사회적 존재가 되게 하는 필수요건으로 꼽는다. 거울 뉴런이야말로 자기와 타자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상호의존성을 가리키는 뇌세포라는 것이다. 저자는 전화로 얘기할 때 상대방이 보지 않음에도 몸짓을 하거나 심지어 맹인에게 이야기할 때조차 제스처를 취하는 경향도 거울 뉴런으로 설명한다. 다른 사람의 몸짓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까지도 말을 할 때 몸짓을 하는 것은 감정이입과 공감의 메커니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거울 뉴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야코보니는 공감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거울 뉴런이 전하는 좋은 뉴스이지만 모방 폭력 같은 수많은 부정적인 본능은 나쁜 소식으로 분류한다.
지은이는 매체 폭력이 모방 폭력을 부른다고 확신한다. 폭력적인 영화를 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영화를 본 아이들보다 사람이나 장난감에 대해 훨씬 더 공격적인 행동을 보여준 것을 비롯한 다면적인 실험결과를 예로 든다. 실험실 연구, 상관 연구, 종단 연구에서 나오는 모든 결과가 매체 폭력은 모방 폭력을 유도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우리 뇌 안의 거울 뉴런은 자연스럽게 모방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각종 중독 현상 역시 거울 뉴런의 산물이다. 흡연, 알코올, 마약 치료의 가장 큰 관건 가운데 하나가 확률 30~70%인 재발이다. 갓 담배를 끊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영향을 받지 않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 모종의 내적 모방을 촉진하는 것이 거울 뉴런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 1000명 중 한 명꼴로 걸리는 자폐증의 주요한 신경적 결함도 거울 뉴런의 기능장애다. 깨진 거울에 얼굴을 비추는 것과 흡사한 자폐증의 치료는 어떻게 깨진 거울을 고칠 것인가로 귀결된다. 여기서 모방이 등장한다. 자폐아 치료법으로 모방을 활용해 효험을 본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우리가 느끼도록 촉진하는 광고효과로도 기능한다. 특히 선거와 정치 캠페인에서 비방광고의 효능은 거울뉴런으로 인해 놀랄 만큼 탁월하다. 정치 중독자와 정치 혐오자의 뇌활동은 판이하게 나타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정치에 관한 뇌영상 실험에서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친절과 나눔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 분배를, 정치중독자들은 위계적 불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권위서열관계를 대부분 연상한다.
지은이가 거울 뉴런의 기능이나 현상의 분석과 진단에 그치지 않고, 주제의 특성상 쉽지 않은 대안까지 제시한 데서 이 책의 미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들’ 사이에 거울 뉴런이 존재하는 만큼 서로 의미를 공유하는 ‘상호주관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모방 폭력의 경우 흔히 내세우는, 상관관계가 아무리 강력해도 반드시 인과관계로 볼 수 없다는 논리를 매섭게 비판한다. 매체산업의 재정적 이해관계라는 보호막과 이기주의를 걷어내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선거의 비방광고는 정치 환멸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퇴출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유권자와 정치적 대표자들 사이에서 공감과 동일시의 메커니즘이 절실하다는 호소다.
지은이는 거울 뉴런으로부터 배울 교훈의 한 가지로 ‘엄격한 이분법을 의심하라’고 권한다. 우리 모두는 혼자가 아니라 서로 깊숙이 연결되도록 생물학적으로 배선되고 진화적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명심하라는 경구다. 야코보니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서로에게 더욱 가까워질 수 있고,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감흥이 높은 것은 물론이다. 김미선 옮김. 1만3000원
마르코 야코보니 | 갤리온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엄마의 표정을 모방한다. 엄마들 역시 자기 아이의 얼굴 표정을 따라 한다. 부모와 아기들이 서로 따라 하는 일은 표정 외에도 너무나 많다. 따라 하려는 충동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모방은 인간의 사회적 관습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수단이 돼왔다.
사람들은 서로 좋아할수록 더 많이 모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한 실험에서는 모방과 호감이 함께 가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국 심리학자 수전 블랙모어는 인간을 모든 동물과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모방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이 같은 모방과 동조는 개인들을 ‘우리’라는 울타리로 묶어주는 접착제다.
이런 감정은 뇌의 특정부위를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게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마르코 야코보니의 견해다. 야코보니는 ‘거울 뉴런’이라는 작은 신경세포 회로에서 찾아낸 비밀을 최신작 <미러링 피플>(원제 Mirroring People: The New Science of How We Connect With Others)에서 풀어놓는다.
야코보니는 거울 뉴런을 인간이 사회적 존재가 되게 하는 필수요건으로 꼽는다. 거울 뉴런이야말로 자기와 타자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상호의존성을 가리키는 뇌세포라는 것이다. 저자는 전화로 얘기할 때 상대방이 보지 않음에도 몸짓을 하거나 심지어 맹인에게 이야기할 때조차 제스처를 취하는 경향도 거울 뉴런으로 설명한다. 다른 사람의 몸짓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까지도 말을 할 때 몸짓을 하는 것은 감정이입과 공감의 메커니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거울 뉴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야코보니는 공감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거울 뉴런이 전하는 좋은 뉴스이지만 모방 폭력 같은 수많은 부정적인 본능은 나쁜 소식으로 분류한다.
각종 중독 현상 역시 거울 뉴런의 산물이다. 흡연, 알코올, 마약 치료의 가장 큰 관건 가운데 하나가 확률 30~70%인 재발이다. 갓 담배를 끊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영향을 받지 않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 모종의 내적 모방을 촉진하는 것이 거울 뉴런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 1000명 중 한 명꼴로 걸리는 자폐증의 주요한 신경적 결함도 거울 뉴런의 기능장애다. 깨진 거울에 얼굴을 비추는 것과 흡사한 자폐증의 치료는 어떻게 깨진 거울을 고칠 것인가로 귀결된다. 여기서 모방이 등장한다. 자폐아 치료법으로 모방을 활용해 효험을 본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우리가 느끼도록 촉진하는 광고효과로도 기능한다. 특히 선거와 정치 캠페인에서 비방광고의 효능은 거울뉴런으로 인해 놀랄 만큼 탁월하다. 정치 중독자와 정치 혐오자의 뇌활동은 판이하게 나타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정치에 관한 뇌영상 실험에서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친절과 나눔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 분배를, 정치중독자들은 위계적 불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권위서열관계를 대부분 연상한다.
지은이가 거울 뉴런의 기능이나 현상의 분석과 진단에 그치지 않고, 주제의 특성상 쉽지 않은 대안까지 제시한 데서 이 책의 미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들’ 사이에 거울 뉴런이 존재하는 만큼 서로 의미를 공유하는 ‘상호주관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모방 폭력의 경우 흔히 내세우는, 상관관계가 아무리 강력해도 반드시 인과관계로 볼 수 없다는 논리를 매섭게 비판한다. 매체산업의 재정적 이해관계라는 보호막과 이기주의를 걷어내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선거의 비방광고는 정치 환멸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퇴출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유권자와 정치적 대표자들 사이에서 공감과 동일시의 메커니즘이 절실하다는 호소다.
지은이는 거울 뉴런으로부터 배울 교훈의 한 가지로 ‘엄격한 이분법을 의심하라’고 권한다. 우리 모두는 혼자가 아니라 서로 깊숙이 연결되도록 생물학적으로 배선되고 진화적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명심하라는 경구다. 야코보니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서로에게 더욱 가까워질 수 있고,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감흥이 높은 것은 물론이다. 김미선 옮김.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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