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5-15 17:46:37수정 : 2009-05-15 17:46:38

구소련의 최고 전기 기술자였던 세미온 키를리안은 1939년 고주파 고전압의 전기를 물체에 가했을 때 이상한 흔적이 사진에 찍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를 단순한 고압방전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경우 생각이나 건강상태에 따라 다른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를 찍는 ‘키를리안 사진’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뒤 한 과학자가 키를리안에게 같은 식물의 잎 두 장을 가져와 ‘키를리안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촬영 결과 한 장은 선명하고 밝은 빛을 보이는 데 반해 다른 한 장은 군데군데 희미한 빛만 나타났다. 마치 다른 종류의 잎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잎 하나는 병에 감염된 식물에서 따온 것이었다. 흥미로운 현상은 나뭇잎을 잘라서 찍으면 잘려져 나간 부분까지 드물게나마 찍혀 나온다는 점이다. 이를 ‘유상효과’(phantom effect)라 부른다. 과학적으로는 여전히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지만 오라(aura) 신봉자들에게는 생물 에너지의 존재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기를 학문적으로 분류하자면 한없이 복잡하다. 가장 간단하게는 인체 내의 기를 원기(元氣), 정기(精氣), 진기(眞氣)로 나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받아 나오는 유한한 에너지가 원기다. 정기는 호흡을 통해 음식물이 산화되면서 나오는 에너지다. 정신 집중과 깊은 호흡을 할 때 얻어지는 에너지를 진기라고 부른다.

한 대형 방문 판매회사가 기가 들어있다는 플라스틱 카드를 5만~500만원대에 팔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전국 300여개 지점의 방문 판매사원들은 이 카드를 몸에 지니거나 집·사무실 등에 붙여놓으면 기가 생긴다며 구매 욕구를 부추긴다고 한다. 산소에 묻어놓으면 자손들이 잘된다는 풍설로도 판촉하고, 심지어 정신 장애인이 ‘기 카드’로 제정신을 회복한 사례도 있다고 선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운동선수들은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기팔찌, 기목걸이, 기반지 착용이 유행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기 상품 열풍은 홍보 효과를 기대한 한 업체가 오래전 태릉선수촌에 수천개씩 기증한 것이 믿거나 말거나 유행의 불을 더욱 강렬하게 지폈다. ‘기차다’고 해야 좋을지, ‘기가 찰’ 노릇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가 도대체 뭐기에?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상록수  (3) 2009.05.29
[여적]갑부들의 비밀회동  (2) 2009.05.22
[여적]기(氣) 카드  (0) 2009.05.15
[여적]흰 코끼리  (0) 2009.05.08
[여적]집착과 무관심  (0) 2009.04.17
[여적]패밀리즘  (2) 2009.04.10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