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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흰 코끼리

입력 : 2009-05-08 18:04:39수정 : 2009-05-08 18:04:41

불교에서 흰 코끼리를 더없이 귀중한 존재로 여기는 까닭은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태몽으로 6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흰 코끼리는 어떠한 일도 시키지 않을 만큼 신성시한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흰 코끼리가 국가의 수호신으로까지 대접받는다.

흰 코끼리는 역설적이게도 ‘처치 곤란한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애물단지나 계륵 같은 존재로 변하는 경우다. 인도에는 흰 코끼리와 관련된 그럴 듯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대 인도의 국왕은 불편한 관계에 놓인 신하에게 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한다. 흰 코끼리를 하사받은 신하는 가문의 영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왕이 내린 이 신성한 존재를 평생 받들어 모시는 의무를 진다. 신하 입장에서는 국왕이 선물한 코끼리가 죽으면 왕권에 대한 도전이나 반역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코끼리가 자연사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열과 성을 다해 키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흰 코끼리를 먹여 살리는 일이다. 몸무게가 4~8t에 이르는 코끼리 한 마리를 보살피자면 허리가 휠 정도라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엄청난 대식가인 코끼리는 하루 16시간 동안 180~270㎏의 먹이를 먹어 치운다. 과일, 나무껍질, 잎사귀, 풀을 주식으로 하지만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 어지간한 재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사육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평균 수명이 70년이나 된다. 실제로 사육에 드는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흰 코끼리의 건강과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신하의 심적 고통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 선물 받은 코끼리 사육문제는 세종대왕 때도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어서 조선왕조실록에까지 기록돼 있을 정도다.

흰 코끼리는 오늘날 큰 돈을 들인 뒤 처치가 곤란한 투자의 상징이 되곤 한다. 어쩌면 개성공단이 우리에게 흰 코끼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화해와 교류의 상징물이다. 남북 어느 쪽도 버리기엔 너무나 신성하고 그동안의 물적 정신적 투자가 아깝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북한이 개성공단을 놓고 걸핏하면 남한을 위협하는 마당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보장되지 않으면 흰 코끼리 이상으로 소중한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 초심을 끝까지 잃지 않는 인내심과 솔로몬의 지혜가 이럴 때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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