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餘滴)

[여적]‘침묵의 살인자’ 석면

입력 : 2009-06-12 18:06:31수정 : 2009-06-12 18:06:32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석면은 ‘기적의 물질’ ‘마술의 광물’ ‘하늘이 내린 선물’로 통했다. 열과 불에 뛰어난 내구성을 지닌 옷을 만들 수 있는 천연절연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석면이 ‘침묵의 살인자’ ‘죽음의 먼지’ ‘죽음의 섬유’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표변했다는 것을 더이상 부인할 수 없다. 석면의 위험성은 사실 오랜 옛날부터 알려져 있었다. 2000여년 전 그리스 역사학자 스트라보는 석면 일을 하는 사람들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고대 로마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도 1세기 때 석면 광산에서 노예를 사오지 말라고 권했다. 노예들이 요절했기 때문이다.

석면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다. 이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선구적인 보고서는 영국 왕립 여성검사관이 제출했다. 1898년 발간된 이 보고서는 단호한 어조로 석면 먼지가 내포한 문제를 ‘해악’이라고 묘사했다. 석면이 인체에 치명적 피해를 주는 물질로 공식화된 것은 그로부터 33년 만인 1931년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유야무야돼왔다.

석면 전문가인 네덜란드 변호사 로브 루에르는 기업들이 어떻게 석면의 위험성을 무시해왔는지 증언한다. “1929년과 1930년에 석면이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세계적 기업들은 석면-시멘트 기업연합을 구성해 결집했다. 기업들은 세계 석면 시장을 ‘작은 국가연맹’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 늘어나는 공격에 끊임없이 맞서고 있다.”

석면업계의 수십년에 걸친 조작과 은폐의 가면이 벗겨진 것은 1964년 뉴욕과학 아카데미가 주최한 ‘석면의 생물학적 영향에 관한 학술회의’였다. 마운트 시나이병원의 어빙 셀리코프 박사는 석면단열재 공장 노동자들의 폐암사망률이 일반노동자들에 비해 엄청나게 높다는 기념비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회의가 끝난 직후 업계는 ‘위험인물’ 셀리코프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위협했을 정도다.

정부가 충남 홍성·보령지역 석면 광산 인근 주민들을 정밀 조사해 석면 진폐증환자를 공식 확인하고 전 국민적 석면관리대책을 이달 말쯤 확정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석면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 세계적으로 한 해 10만명이라고 집계된 지 오래다. 그것도 단일 산업재해로는 가장 많은 숫자다.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그린댐  (0) 2009.07.03
[여적]트위터 열풍  (1) 2009.06.19
[여적]어느 외국인의 한옥 지키기  (0) 2009.06.05
[여적]상록수  (3) 2009.05.29
[여적]갑부들의 비밀회동  (2) 200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