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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어느 외국인의 한옥 지키기

입력 : 2009-06-05 17:45:23수정 : 2009-06-05 17:45:24

데이비드 에드워즈 SC제일은행장은 1년 반 전쯤 한국에 부임한 뒤 두 달여 만에 서울 성북동 한옥마을로 이사한 한옥 애호가다. 대부분의 한국인 행원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실정이지만 사내 블로그에는 그의 한옥 예찬까지 뜰 정도다. “아름답게 휘어진 지붕의 선과 햇살, 세심하게 장식된 창호문과 실내와 실외가 단절되어 있지 않아 자연과 맞닿은 한옥은 정말 멋진 가옥 형태다.”

서울 가회동에 사는 영국인 데이비드 킬번은 별명이 ‘한옥 지킴이’다. 한옥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건축 보배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옥은 수백 년에 걸쳐 발전해온 건축 양식으로 나무, 종이, 돌 등 자연친화적인 소재로 한국의 정신을 잘 살린 집이다. 주변 자연의 풍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한옥이다.” 그는 2006년 전통 한옥의 구조를 무시한 서울시의 북촌가꾸기사업에 반대하다 시공업자 등과 몸싸움까지 벌인 열혈 한옥 지킴이다.

40년 동안 한옥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는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론적으로도 완벽하게 무장한 한옥 전도사다. 35년째 살고 있는 서울 동소문동 일대의 한옥을 재개발 위기로부터 지켜낸 것도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엊그제 서울시를 상대로 한 재개발정비구역 지정 처분 취소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승소를 이끌어낸 것은 그의 열정 하나 덕분이다. 그가 한국에 눌러앉아 사는 것도 순전히 한옥의 매력 때문이다. 그에게 전통 한옥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자연 속에 녹아 든 전통미와 동양적 여백미를 갖춘 예술품이다. 그는 한국의 얼이나 다름없는 한옥을 마구 헐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어 ‘돈 벌었다’고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

50채 이상의 한옥 밀집지역이 98곳인 서울에서 62곳이 이미 재개발지역이어서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라고 한다. 이제 바돌로뮤의 승리가 주는 교훈은 다른 재개발 추진 현장에도 영향을 미칠 게 틀림없다. <발칙한 한국학>의 저자인 프리랜서 작가 J. 스콧 버거슨의 한마디가 많은 걸 대변해준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 가운데 하나지만 사람들은 열렬히 새 것만 숭배한다. 출고한 지 5년이 지난 차를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없고 전통 한옥에 사는 사람들도 가뭄에 콩나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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