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08-13 21:07:11수정 : 2010-08-13 23:53:33



ㆍ식민사관 의한 편견 없애고 파랑의 격동기 국권 지키려 부국강병 등 개혁상 재조명


▲고종 44년의 비원…장영숙 | 너머북스

2010년은 유난히도 기억하고 되새김질해야 할 한국 근현대사 속 사건들의 마디가 지어지는 해이다. 그 절정은 8월이다. 한·일 강제병합조약이 체결된 것이 100년 전 8월22이었고,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이 65년 전 8월15일이었다. 자연히 읽을거리가 풍성하게 쏟아진다. 지난 100년, 한반도와 일본, 동아시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읽는 것은 결코 철 지난 레코드판을 듣는 것과 같을 수 없다. 강제 지배에 관한 일본 총리의 담화에 담긴 메시지가 한국과 일본에서 논란거리가 되듯 역사는 단순한 과거에 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의 고종처럼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도 흔치 않다. 그것도 ‘망국의 군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다수다. 그에겐 엄한 아버지 대원군과 명민한 아내 명성황후 사이에서 ‘우유부단했던 군주’라는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래서 무능하고 실패한 황제로 낙인이 찍힌 상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식민사학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최근의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단한 개명군주라는 재평가를 받기도 한다.

양 극단을 오가는 시선을 뛰어넘어 한 젊은 사학자가 다면평가에 의한 ‘고종 다시보기’를 신선하게 시도하고 있다. 장영숙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이 바로 그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고종의 정치사상과 정치개혁론 연구>를 쓴 데다 후속 저작을 대부분 고종시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신진전문가다.

그는 우선 고종이 꽉 막히거나 갈대처럼 흔들린 군주가 아니라 유연한 대외인식 속에서 대부분이 오랑캐라며 멀리하던 서양과 일본을 동시에 품으려 했던 왕으로 매긴다. 이와 함께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꾼 군주는 아니었지만 통치규범과 윤리는 유교의 정신적 가치에 의존하면서 서양문명과의 절충을 꾀해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추구한 ‘과도기적 개혁군주’로 평가한다. 고종에 대한 시각이 다층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이 같은 이중적 모습을 든다.

지은이는 고종을 왕후와 처족 민씨들의 꼭두각시로 여기는 관점에도 반기를 든다. 여흥 민씨 일가가 왕후를 매개로 삼아 왕권 위에서 세도로 군림한 게 아니라 처족을 활용하기 위한 고종의 정치적 고단수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한다.

고종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영조와 숙종에 이어 세번째로 장기간 왕의 자리에 있었던 군주이다. 1863년 철종의 뒤를 이어 제26대 국왕으로 즉위한 후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강제 양위됐으니 재위기간만 44년이다. 그는 통치 규범과 윤리는 유교의 정신적 가치에 의존하면서 서양문명과의 절충을 꾀해 나간 과도기적 군주였다.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층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왼쪽 사진은 대한제국 시기 정장을 한 고종황제의 모습, 오른쪽은 고종과 동고동락했으나 45세의 나이로 비명횡사한 명성황후를 위한 장례식 모습. | 너머북스 제공


저자는 여러 사람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고종이 조용한 성격과 침착하고 신사적인 태도를 지닌 인물이라고 규정한다. 매사에 신중한 편이어서 결정을 서둘러 내리지도 않았을뿐더러 자신의 생각을 쉽게 노출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의견을 앞서 피력하기보다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고 귀담아 듣는 타입이었다. 이런 개성이 태평성대에는 안성맞춤이지만 명쾌한 판단력과 결단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격동기에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분석하고 있다.

그가 후반기에 추진한 ‘광무개혁’도 정치체제 면에서 서양의 입헌군주제만 수용하지 않았을 뿐, 각종 사회·경제적 제도의 변화를 추동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고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개화자강정책 가운데 하나는 강성한 군대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부국강병책인 셈이다.

고종은 선왕들 가운데 정조를 이상적인 롤 모델로 여기고 이를 따르려 애썼던 인물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정조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백성을 위한 개혁정치에 앞장섰던 다산 정약용도 흠모했을 정도다. 다산의 <여유당집>을 읽으면서 자신에게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걸 한스러워했다고 한다.

저자가 고종에게 칼을 들이댈 때는 매섭다. 을사늑약이 끝내 강제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선 무기력한 대신들을 개탄했지만 책임을 전가하는 자세였다고 비판한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주한영국공사와 미국공사가 일본에 축전을 보내는 실정이었음에도 고종은 이러한 세계의 질서와 흐름을 까마득하게 놓치고 있었다고 꼬집는다. 결국 고종이 개명적인 요소를 지녔음에도 보수성과 진보성, 전통유지와 개혁추구, 폐쇄성과 개방성 등을 불균형적으로 구현함으로써 과도기의 혼란한 군주로 남게 됐다고 본다. 지은이는 고종을 단순히 ‘망국의 군주’로서만이 아니라 개혁을 위해 애쓴 과정과 동기를 조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종평전에 가까우면서 흥미로운 인물 평가와 일화들도 적잖게 담아내 한국근대사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새로운 고종시대사’로도 손색이 없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지금도 여전히 열강에 둘러싸여 지혜로운 선택이 절실한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새겨야 할 교훈이 많다. 1만8000원


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10-07-30 18:01:28수정 : 2010-07-30 23:27:37


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10-07-16 17:16:29수정 : 2010-07-16 17:16:30
 
불편해도 괜찮아…김두식 | 창비

첩보 액션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은 사랑이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김태희에게 기습키스를 감행한다. 그러자 김태희는 따귀를 갈겨버린다. 하지만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한술 더 뜬다. 희주라는 철없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따귀를 능청스레 때린다. 시청자들이 들고 일어났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날엔 뺨을 때리는 게 주로 남자였지만 요즘은 정반대가 더 많다. 어떤 이들은 드라마 작가가 대부분 여성이어서 그럴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드라마 속의 연인들이 사랑과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따귀를 많이 때리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거라고 개탄한다. 행여 작가들이 ‘여자가 따귀를 때리는 장면도 함께 집어넣었으니 남녀평등문제는 해결됐어’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드러낸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기회를 준다면, 먼저 최근 10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따귀 때리는 장면만 모두 모아서 보여준 뒤 그 문제점을 지적해보고 싶습니다. 따귀소리만으로 가득 찬 화면을 10분쯤 보고나면 방송국 사람들도 마음을 고쳐먹게 되겠지요.”

베를린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에게 감독상, 문소리에게 신인배우상을 안긴 <오아시스>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꼬집는 사회성 짙은 영화로 호평 받았다. 그렇지만 지은이는 거장이 만든 탁월한 영화에서 ‘옥에 티’를 잡아낸다. 기술적인 티가 아니라 관점과 철학의 문제다. 강간 미수를 통해 처음 맺어진 종두(설경구)와 공주(문소리)의 관계가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 시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비판이 그 첫 번째다. 사회의 편견 때문에 두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시각 자체야말로 편견이라는 것이다. ‘옥에 티’는 실수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 익숙하게 젖어온 일상의 관성이다.

1980년대에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폐광 결정에 맞서 장기 파업을 벌이는 탄광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 가난한 광부의 아들인 11살 소년이 세계적인 발레리노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역경을 딛고 성공을 이룩하는 상투적인 도식을 따르고 있지만 광부들의 단결과 분열, 공권력의 집요하고도 무자비한 노조 탄압을 다룬 정치영화이기도 하다. 일러스트레이션 | 정원교

장애인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시혜가 아닌 인권’이라는 점을 근육디스트로피 장애인 에번 켐프의 목소리로 대변해 준다. 근육디스트로피 환자들을 위한 ‘텔레톤’으로 무려 10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모금한 것은 누가 봐도 좋은 일이다. ‘텔레톤’이란 텔레비전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텔레비전을 통한 장시간 모금방송을 뜻한다. 이를테면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그램이다. 이에 관해 켐프는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냄으로써 편견을 확산시켰다고 주장한다.

‘영화광’으로 알려진 저자는 이렇듯 인권문제를 80여편의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고리로 삼아 감흥 깊게 풀어나간다. 노동자, 병역거부, 검열, 집단학살 등 국가·정치권력, 자본에 의한 탄압 같은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인종차별 등 개인의 인권문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저자는 인권을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 한마디로 요약한다. 그러면서 일상에서의 ‘인권 감수성’ 기르기를 강조한다.

한국영화 <로드 무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동성애 작품을 예로 들며 이성애자들이 느낀 불편함에 관해서도 생각의 문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존재함을 최소한 이해해야 한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명언이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 할 권리를 위해 나는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권익처럼 양쪽 이야기를 듣고 헷갈리는 상황에서는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란 원칙을 적용할 것을 권면한다. 형사소송법에서 자주 논의되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변용한 표현이다. 영국의 대처 총리 당시 탄광노동자 파업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외박> 등이 소재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와 병영문화 개선문제는 <방문자> <반두비> <용서받지 못한 자> 같은 영화로 접근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장교와 사병이 친구처럼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면서도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장점을 배우라고 권하는 부분이다.

하퍼 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앵무새 죽이기>는 흑인인권보호의 전기를 마련한 명작의 하나다. 핵심 주제인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는 인권 이해의 중요 명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흑인은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맹점이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불쌍한 흑인을 돕는 의로운 백인 변호사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인종차별의 위험수위에 놓여있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역설하는 것도 바로 ‘역지사지’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보듯 저자는 자녀와 청소년들의 인권문제에서 ‘학생도 어른과 똑같은 인간이다’라는 사실부터 인정한 뒤 전체 그림을 새롭게 그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여기에 동원된 것이 다소 속된 표현이지만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만큼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겠거니 하고 여유롭게 이해하라고 당부한다.

영화 검열을 결사반대하는 저자는 책에서 ‘막말 대사’ 인용도 불사할 정도로 거침없다. 그런 만큼 엄숙한 주제에도 흥미롭게 읽힌다. 1만3800원


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10-06-18 17:35:40수정 : 2010-06-18 17:35:47

올해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기념비적 사건이 겹치는 해인 만큼 책동네의 눈길도 자연스레 그곳을 향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기억하고 성찰해야할 만한 중대사건이어서 한해 내내 화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재조명한 역작, 월드컵 축구를 떠올리며 스포츠 민족주의와 일제 식민지 근대를 재발견할 수 있는 수작, 소외됐던 6·25 전쟁미망인 문제를 제기한 노작을 묶어 보았다. 세 책의 저자가 모두 성균관대 교수인 것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다.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서중석 | 돌베개

우리나라 현대 100년사에서 가장 부정적인 역할을 한, 암적인 내부 세력은 무엇이었을까. 거침없이 북한 김일성 집단을 꼽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군부독재 세력을 드는 사람도 있을 게다.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통일·민주세력을 탄압한 이승만 정권을 거론하는 사람도 없지 않으리라.

한국 근현대사 권위자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단연 친일파를 지목한다. 그 가운데서도 경찰과 일제 말기의 친일파는 우리 현대사에서 씻어내기 어려운 해독을 끼친 암적인 존재라고 여긴다. 동족을 짓밟으며 일제에 보여줬던 충성심과 탁월한 생존 능력을 바탕으로 미군정에서부터 유신체제에 이르기까지 권력실세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친일파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적이었음은 물론 반공의 외피를 쓰면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는 사고를 지닌 독버섯 같은 존재였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돌베개)에서 끈질긴 친일파 세력의 폐해와 친일잔재 청산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역설한다. 그는 이 책에서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 했는가’를 일관되게 물으며 역사의 구비구비마다 일제와 친일세력이 거는 딴죽에 몸서리친다.

지은이는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지배자의 국가관과 민중이 갖고 싶어 했던 나라는 확연히 달랐다고 전제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 이후 민주화운동이 추구하는 바가 같았다고 본다.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것은 이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였고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책의 범위는 일제의 지배정책과 독립운동가들의 새나라 구상, 해방 직후 여운형의 국가 건설방향, 남북 주요세력의 국가 건설방안, 이승만의 단정 운동과 반공국가·여순사건, 4월 혁명 이후 새나라 건설방향, 부마항쟁과 박정희 유신국가의 말로, 과거사 청산과 새로운 출발문제 등을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현대사가 어두운 과거만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덧붙인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자랑스러운 역사가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이승만 건국’을 찬양하며,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제정해 기념하고, 건국공로자를 서훈하자는 움직임에 경악한다. 이는 친일파의 위력을 실감케 해주는 일이라고 개탄한다.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역사관이 완전히 뒤집힌 해괴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올해 일제 식민주의, 그 가운데서도 해독이 가장 큰, 반공주의와 결합된 군국주의 파시즘이나 한국형 파시즘을 인적·물적으로 규명하고 청산하는 뜻 깊은 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1만8000원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

천정환 | 푸른역사

1936년 8월10일 새벽 신문 호외를 본 시인 심훈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신문 뒷장에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란 즉흥시를 단박에 써 내렸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남승룡이 3위를 했다는 소식에 마음을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장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마이크를 쥐어잡고 전 세계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 부를 테냐??”

심훈의 시는 모든 조선인의 감격과 흥분을 집약한 것이었다. 하지만 손기정은 우승하자마자 전남 나주의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 한글로 단 석자만 적었다. “슬푸다!!?” 식민지 조국의 한을 단 한마디로 축약한 것이다.

이렇듯 일제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들은 스포츠를 통해서도 ‘민족’으로 거듭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의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푸른역사)는 스포츠 민족주의를 통해 본 식민지 근대의 초상을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그러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그려간다.〈근대의 책 읽기>로 주목받은 바 있는 지은이의 또 다른 ‘식민지 시대 읽기’인 셈이다. 저자는 스포츠를 근대성의 한 표현 양식으로 본다.

지은이는 식민지 시대 조선의 두 신드롬에 각별한 눈길을 준다. 손기정의 마라톤 금메달 획득과 일장기 말소사건 이후 이어지는 엄청난 파장, 1926년 순종황제 서거에 이은 6·10 만세사건이 그것이다.

윤치호, 여운형, 한용운, 이광수, 이상, 김교신, 함석헌 등 전혀 다른 생을 살고 다른 사상을 지녔던 동시대 주인공들이 놀랍게도 의견 일치를 본 사건이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이라고 한다.

민족주의 색채가 가장 분명했던 박은식·신채호 등 대한매일신보 논객들조차 운동회를 크게 보도해 문약성(文弱性)의 폐해를 치유하고 상무(尙武) 정신을 고취하려 했음을 눈여겨봤다.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들은 신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인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을 주입받으며 살아야 했다. 차별 뒤에는 사회진화론에 뿌리를 둔 비이성적인 멸시가 있었다.

한국의 스포츠 민족주의는 1890년대부터 주조되고 1920년대에 온전히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스포츠 민족주의는 손기정으로 대표되는 일제 시대나 한국 스포츠 발전에 누구 못지않게 애정을 갖고 있었던 박정희·전두환의 군사정권 시절과는 내용이 다르다고 판단한다. 스포츠의 존재환경과 민족주의 구성요소가 변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기사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바탕 삼아 내러티브 기사(이야기체) 형태로 구성해 전혀 딱딱하지 않게 읽힌다.

5년 전 출간된 <끝나지 않는 신드롬>을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내용을 고치고 추가한 개정판이다. 1만6000원


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10-06-04 17:47:33수정 : 2010-06-05 01:11:15

ㆍ김홍도 ‘카메라 옵스쿠라’와 달리 실제 경치에 ‘선경’ 의미 부여 과장
ㆍ조선후기 지도의 회화풍에 큰 영향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이태호 | 생각의나무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성긴 숲 사이로 둥근 달이 소슬하게 떠 있다. 그 옆으로 개울물이 졸졸거리며 외려 적막감을 더해준다. 달밤이 주는 정취를 독특하게 담아낸 단원 김홍도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는 시리도록 은은하다.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겸재 정선의 금강산 비경 ‘금강전도’(金剛全圖)와 비 온 뒤의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역시 ‘진경산수화’의 진면목을 뽐낸다.

이렇듯 진경산수화는 성리학의 굴레와 중국풍의 관념 산수에서 벗어나 우리 땅의 현실미를 추구해 한국회화사의 꽃으로 불린다.

미술사가인 이태호 명지대 교수의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나무)는 30여년간 발품을 팔아 진경산수화와 실제 절경을 비교하며 남다른 관점을 던져준다. 그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가 세계미술사를 장식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서양 현대미술의 아버지라는 폴 세잔의 풍경화와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저울질하기도 한다. 특히 정선의 금강산 전경도는 뚜렷한 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창성을 지녔다고 여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1751)와 송석원 길에서 찍은 인왕산 실경. ‘인왕제색도’는 75세 노인이 그렸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개가 넘치는 겸재의 대표작이다. ‘인왕제색도’는 겸재의 작품 중 실경과 가장 닮은 그림으로 꼽히지만, 이조차 실제 사진과 비교하면 좌우를 상당히 단축했음을 알 수 있다. | 생각의나무 제공


우리 산천을 직접 발로 밟고 눈으로 보기 전에는 산수화를 그리지 않았던 정선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진경산수화는 ‘인왕제색도’를 제외하면 실경과 닮지 않았다는 점을 눈 밝은 지은이가 밝혀낸다. 이는 정선이 ‘참된 경치’라는 뜻의 ‘진경’(眞景)에 신선경이나 이상향이라는 ‘선경’(仙境)의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실경을 과장하는 변형방식의 ‘박연폭도’(朴淵瀑圖)도 흡사하지만 또 다른 특색을 드러낸다.

일일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지은이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두 가지 유형으로 파악한다. 실경을 닮게 그리려 사생에 충실한 작가군과 정선처럼 변형을 모색한 작가들로 뚜렷이 구분하고 있다.

정선과 달리 현재 심사정, 진재 김윤겸, 표암 강세황, 단원 김홍도 등은 실경 현장을 닮게 그리려 애쓴 화가들이다. 서양화법에 익숙했다는 김홍도의 진경 작품 속 현장에 실제로 서 보면 마치 카메라 옵스쿠라를 사용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한다. 김홍도의 진가는 ‘소림명월도’처럼 평범한 일상의 풍경으로까지 소재를 확대했다는 데 있다.

일반인들에게 낯익지 않은 김윤겸, 지우재 정수영, 설탄 한시각, 동회 신익성의 작품 세계도 별도의 장을 배정해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금강산 작가가 겸재 정선이라면, 20세기에는 ‘기억’과 ‘감격’으로 금강산에 몰두했던 소정 변관식을 내세운다. 변관식마저 금강산을 그리지 않았거나 아예 그가 없었다면 분단사 50년 가운데 금강산은 남쪽 문화사에서 자취조차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김홍도의 ‘소림명월도’. 전경에 몇 그루의 잡목을 배치하고 그 사이로 들어온 보름달을 그렸다.


저자는 조선 후기의 회화식 지도가 정선이 완성한 진경산수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 발달했다고 해석한다. 조선시대 지도의 꽃이자 한국 고지도사의 위대한 결실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회화적 느낌을 주는 것은 김정호가 고안한 산맥의 흐름과 주요 산 표현 때문이다. 김정호의 도식화 방식은 다른 나라 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지도의 독창성이라고 자리매김한다.

선조의 부마인 문인화가 신익성이 1640년쯤 그린 두물머리의 ‘백운루도’(白雲樓圖)가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첫 실경 그림이라 추정한 것도 지은이가 처음이다. 고려시대 이녕이 그렸다는 ‘예성강도’(禮成江圖) 등이 기록에 전해지지만 현존하는 작품이 아직 알려진 게 없다.

앞서 나온 지은이의 책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를 즐긴 독자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유홍준의 <나의 우리문화유산 답사기>를 연상케 하는 발품 수작이지만 그와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진경산수화 150점과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나란히 실어 둘을 견주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림 이야기를 그림처럼 유려하게 터치한 글맛도 소담스럽다. 3만원


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10-05-21 17:32:55수정 : 2010-05-21 17:32:55

ㆍ한국 교육사의 원전 60년만에 재탄생
ㆍ민족·계급 관점 결합한 교육사관 눈길

다시 읽는 조선교육사…이만규 | 살림터

항일 민족주의 교육자이자 국어학자 이만규(李萬珪·1888~1978)는 남한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불온한 위험인물로 취급받았다. 월북학자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육계 인사가 아니라면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조차 드문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연배가 높은 이들 가운데는 교육자이자 서예가였던 이철경의 아버지가 이만규라면 ‘아! 그랬던가’할 수도 있을 게다. 이철경이 중진가수 서유석의 어머니이니 이만규가 서유석에겐 외할아버지다.

이만규는 고려·조선시대 교육을 ‘계급 편파교육’ ‘지방 편파교육’ ‘성 편파교육’으로 깎아내리면서도 질의문답식 교수법, 시험점수와 평소의 근태, 품행· 인물됨됨이를 종합한 성적평가법 등을 문화적 유산으로 높이 평가한다. 송나라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을 인용하며 고려시대에 ‘서당교육’이 고유의 교육 형식으로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그림은 김홍도의 <서당도>.

이만규는 일제시대에는 중등학교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교육실천가이자 교육행정가였다. 해방 직전과 직후엔 식민교육학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교육사체계를 다시 세운 자주적 교육사가이자 통일운동가였다. 북한에서는 초·중등교육정책을 집행했던 교육혁명가였다.

그는 일제 말기 민족주의 실력양성운동단체인 흥업구락부 사건과 한글보호운동인 조선어학회사건에 각각 연루돼 총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기간에 <조선교육사> 집필 구상을 한다. 출옥 후 2년7개월간 해직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책을 완성해 펴냈다. <조선교육사>는 한국 교육사학사의 고전이자 원전인 셈이다. 그만큼 기념비적인 저술이다. 원시시대부터 1945년 8월14일까지의 교육사를 망라한 이 책은 지은이가 월북학자였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재출간되지 못했다. 1980년대 말 재출간했지만 곧 절판돼 시중에서는 품절상태였다.

이처럼 뜻 깊은 책이 심성보 부산교육대 교수의 주도 아래 옛 글투인 초판의 상당부분을 읽기 쉬운 현대어로 고쳐 <다시 읽는 조선교육사>(살림터)로 재탄생했다. 이 책은 우리 교육사를 문화의 한 분야로 보고 시대마다 교육제도와 사상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일종의 한국교육통사(韓國敎育通史)다. 무엇보다 관점이 뚜렷하다. 민족주의, 민주주의, 계급주의, 문화주의적 관점을 결합한 교육사관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만규는 이 책에서 통일신라가 당나라에서 유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중국 역사를 주로 가르친 것을 사대주의라고 혹평한다. 특히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지은 최치원의 <계원필경>을 사대와 아첨에 사상이 절었다고 매도한다. 반면에 그는 신라의 화랑도 교육을 세계사에 견줄 만한 우리 민족 고유의 교육방식으로 드높이고 있다. 화랑도의 국토 순례가 불교나 예수의 성지순례와 같으며, 무예·용기·예절·충의·체면·여성 존중을 중세 유럽의 기사도 교육에 비길 수 있다고 호평한다.

인재등용의 관문인 과거(科擧)의 교육 사상적 폐해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고려 광종 때부터 조선 고종 때까지 936년간 시행된 과거로 말미암아 지식은 겉치레만 화려할 뿐 천박해지고, 학문은 모리와 투기의 도구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재등용도 공평성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고려·조선 시대의 교육이 ‘계급 편파교육’ ‘지방 편파교육’ ‘성 편파교육’이어서 진정한 ‘국민교육’이 아니었다고 깎아내린다.

조선시대 교육을 마냥 폄훼하는 것만은 아니다. 질의문답식 교수법, 시험점수와 평소의 근태, 품행·인물됨됨이를 종합한 성적평가법, 학생자치권, 권당(捲堂) 같은 스트라이크 행사까지 허용한 사기배양법 등은 지금의 서양에서도 더 나아가지 못할 만큼 우리 교육사의 문화적 유산으로 자랑할 만하다고 상찬한다. 이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으로 봉건제도 아래서 유생들에게 정당한 학원의 자유를 보장한 것을 꼽는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옳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세 가지 스트라이크 수단을 동원할 수 있었다. 권당(식당에 들어가지 않기), 공재(空齋·기숙사에서 나오기), 공관(空館·성균관에서 퇴거하기)이 그것이다. 공관은 동맹휴학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는 매우 흥미롭다. 세종 때 집현전 학생들이 ‘왕이 학생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공관을 단행했다. 세종이 영의정 황희에게 “집현전 학생들이 나를 버리고 갔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하고 물었다. 황희는 자신이 타이르겠다고 나서 학생들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간청했다. 그때 한 학생이 황희에게 “공은 정승이나 되어 임금의 잘못을 고치지 못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황희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기쁜 얼굴로 대했다고 한다.

송나라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을 인용하며 조선시대 중기에 ‘서당교육’이 시작되었다는 일반론도 뒤집고, 이미 고려시대에 우리 고유의 교육형식으로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교육사상은 늘 정치사상과 병행한다고 여긴 그가 일제시대 교육을 ‘민족교육 파멸기’로 규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일제시대의 민족교육운동사에서 제외하다시피 한 신사상연구회, 학생운동, 노동쟁의, 민족운동 등 민족주의 좌파 진영의 교육활동을 적게나마 복원한 것도 의미가 크다. 전반적으로 문학사학, 민족사학, 사회경제사학이라는 3차원성이 어우러진 그의 교육사학관이 책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요즘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우선 교육사 시대구분론에 대한 서술이 없다.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조선시대의 교육, 조선시대 말 27년간의 교육, 일제 강점기 36년간의 교육으로만 나누고 있다. 교육사상가를 언급하면서 신라의 원효, 실학의 정약용, 홍대용, 일제시대의 안창호, 조소앙을 소개하지 않은 것도 취약점에 속한다.

그럼에도 작고한 교육사학자 정순목 영남대 교수는 한국교육사에서 이를 능가할 만한 저술이 나오지 않았다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60여년 전에 처음 나온 책을 다시 펴낸 것도 이 때문이다. 3만3000원


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10-05-07 17:19:15수정 : 2010-05-07 23:57:26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엘레나 코스튜코비치 | 랜덤하우스코리아

세계 3대 음식으로 흔히 프랑스, 중국, 터키 요리를 꼽는다. 그렇다면 파스타와 피자의 나라, 이탈리아는 살짝 억울하지 않을까? 사실 이탈리아는 국가를 상징하는 세 가지 낱말이 사랑하다(Amare), 노래하다(Cantare), 먹다(mangiare)라고 할 만큼 음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옛날 로마의 미식가들은 강 하류에서 잡은 물고기와 상류에서 잡은 것을 맛으로 구별했다고 한다. 당시 정치가 세네카가 “먹기 위해 토하고, 토하기 위해 먹는다”고 비판했을 만큼 로마인들의 식탐도 유별났다. 1000만명이 각기 다른 요리를 해낸다는 게 이탈리아의 복잡한 요리 문화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아무리 오래 산 외국인일지라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 한 가지는 다양하던 화제가 종국에는 음식 이야기로 흐르고 마는 특이한 대화 분위기라고 한다. 마치 한국 남성들이 회식 도중 한 번씩은 꼭 옛날 군대 이야기로 일관하는 것과 흡사한 장면이다. 사실 한국사람, 특히 지식인이라면 식사 중이라도 음식에 지나친 관심을 보일 경우 대화의 품격을 떨어뜨린다고 여기는 이가 여전히 많은 것과 비교된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문학 작품과 언어에선 음식에 대한 비유로 가득하다. ‘마카로니에 얹은 치즈’라는 말은 완벽히 결합된 상황이나 어떤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가리킨다. ‘빵처럼 맛있는’은 성격이 좋다는 뜻으로 쓰인다. ‘불 위에 너무 많은 고기를 올리다’는 여러 일을 동시에 하거나 많은 말을 늘어놓는 상황을 일컫는다. ‘파를 끄트머리부터 먹다’는 중요하지 않은 일부터 시작하거나 반대로 할 경우를 뜻한다.

ⓒAndrei Bourtsev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기억을 떠올리고, 새로운 어휘를 즐기며, 자신과 타인의 달변에 취하고, 휴양지에서 맛본 음식의 감격을 지인들과 공유하면서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 음식에 정치적, 사회적 상징성을 즐겨 부여하고 이데올로기를 담는 게 이탈리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러시아 출신 문학가이자 번역가인 엘레나 코스튜코비치의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는 독특한 이탈리아 음식 문화를 인문학이란 명품 접시에 기품 있게 담아 놓은 수작이다. 이탈리아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코스튜코비치가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문학 작품과 역사서를 비롯한 방대한 자료를 우려낸 것이어서 정보와 지식의 양적·질적 풍요는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이방인의 탐구가 깊이에서 취약점을 드러낼 우려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현지에서 보고 느낀 지은이가 나라 안과 밖 양쪽의 시선으로 외려 객관성과 균형을 담보할 수 있을 듯하다. 지은이는 설익은 스파게티 면과 ‘알 텐테’(꼬들거리는 질감) 간의 미묘한 차이를 단박에 가려내는 요리사의 탁월한 감각, 올리브오일과 마늘만으로 최고의 맛을 내는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에 우선 감복한다. 이탈리아 문화에서 어떤 요리법을 전수한다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땅의 기억을 불러온다는 것이고, 그 땅에 속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이탈리아 음식 코드는 요리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농업, 동물학, 민족지학, 일상의 기호학, 응용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의 복합적인 정보를 형성하고 설명해주는 키워드라고 한다.

이탈리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공동체가 그들만의 대표 음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피렌체의 스테이크, 밀라노의 리조토, 트레비소의 라디키오, 카프리의 샐러드 같은 것들이다. 그 지역에서만 완벽하게 요리되는 음식이나 그 지역에서만 재배하고 사육하며 가공하는 특산물은 자부심과 자랑도 하늘을 찌른다. 그들은 음식을 만들면서 ‘마법’의 주문을 걸고, 재료 이름을 기도문처럼 외울 정도다.

ⓒAlexey Pivovarov

슬로푸드 운동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배경도 알려준다. 슬로푸드 운동의 핵심은 ‘생물의 다양성’이며, 본질적인 요소는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열망이 아니라 만남과 식탁을 둘러싼 대화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폴리에서 ‘카페 소스페조’로 대표되는 나눔의 문화와 특별한 윤리는 정겹다. 손님이 커피 다섯 잔을 시킨 뒤 두 잔만 마시고 나머지 석 잔은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카페 소스페조 있나요” 하고 물으면 내주는 미풍양속이다. 손님들이 대신 지불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한 주에 한 번씩 피자를 무료로 제공하는 ‘피자의 날’도 마찬가지다.

피에몬테 지역의 간식용 빵에 발라 먹는 크림인 ‘누텔라’는 민주주의와 좌파의 이상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로써 최신 이데올로기 사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한다. 대중가수 조르조 가베르는 “누텔라는 좌파, 스위스 초콜릿은 우파”라고 노래했을 정도다.

외국인들이 쉽게 부딪히는 이탈리아인들의 음식에 대한 엄격함은 귀담아 놓을 필요가 있겠다. 이른 아침이 아니라면 카푸치노를 주문 받지 않는다. 아침 식사로 치즈가 들어간 파니노를 주문하기 어렵다. 낮 12시30분 이전이나 2시 이후 점심식사를 주문하지 못한다. 식후에 차를 마시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음식 두 가지 또는 재료 두 가지가 부적절하게 연결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번역의 감수를 맡은 스타 셰프 박찬일은 저자 코스튜코비치와 이 책을 ‘요리계의 시오노 나나미’나 역사학자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의 요리편으로 비유한다. 주례사 비평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서문을 쓴 인기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상찬과 ‘강추’는 그의 작품을 러시아에 번역·출간해온 저자와의 인연 때문으로 치더라도 말이다.

이탈리아 음식의 조리방식에 대한 해설, 파스타 소스와 재료, 파스타와 소스의 궁합 등을 기록한 목록이 자세하게 실려 있는 데다 곳곳에 보이는 친절한 감수자 주(註)도 작은 미덕의 하나다. 김희정 옮김. 2만3000원


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10-04-23 17:41:41수정 : 2010-04-23 17:41:41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박형규 | 창비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박형규란 이름을 빼놓으면 퍼즐이 맞춰지지 않는다. 그럴 만큼 그의 발자취는 실로 큼지막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으로 추대된 것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사회 부조리나 부정부패 같은 것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평범한 목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던 30대 후반의 박형규 목사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4·19 혁명일이었다. 때마침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근처 궁정동에서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총소리와 함께 피 흘리는 학생들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들것에 실린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선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예수를 떠올렸다.

그때 그는 한국 교회가 죽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인생의 모토가 된 세계적인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이 불현듯 솟아올라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 해야 한다’는 숙제를 스스로 짊어졌다. 한평생 길 위에서 실천하는 신앙을 펼치는 그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의 회고록 제목이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로 정해진 것도 그런 까닭이지 싶다.

박 목사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여섯 차례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대표적인 게 1973년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이었다. 10월 유신이 선포된 바로 이듬해 기독교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플래카드와 전단을 배포하기로 했지만 실패했다. 그럼에도 박 목사는 기획한 사람들과 함께 ‘내란예비음모죄’로 기소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민주화 투쟁사건에는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전두환 정권 때 박 목사의 항쟁은 더욱 지칠 줄 몰랐고, 마침내 절정에 올랐다. 그가 담당하던 ‘서울제일교회’를 와해하려는 정권의 계략으로 말미암아 끝내 길거리로 나서야 했다. ‘용공목사’ ‘빨갱이’로 몰리면서 당한 고초로도 그의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6년간 ‘노상 예배’를 이어가며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비폭력 민주화 운동’을 실천하는 동안 분수령을 이룬 6월 항쟁으로 독재 권력의 항복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올해 미수(88세)의 고령임에도 통일·평화 운동의 끈을 놓지 않고 남북평화재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인간의 영적인 구원과 사회적 구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되어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 책은 함께 민주화투쟁을 벌여온 동지들의 권고에 못이겨 구술한 회고담을 신홍범 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이 정리한 것이다. 정리자가 후기에 썼듯이 영성생활과 숨겨진 일화가 아닌, 개인사를 통해 본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사여서 한층 값지다. 책이 4·19혁명 50주년 되는 날에 맞춰 세상에 나온 것도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2만원



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10-16 17:50:18수정 : 2009-10-17 02:09:02

▲사과 솔루션…아론 라자르 | 지안출판사

19세기 미국 시인 랠프 에머슨이 분별력 있는 사람은 결코 사과하는 법이 없다고 했을 만큼 진정한 사과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북한도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체제의 특성상 잘못을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그런 북한이 지난 14일 남북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회담에서 황강댐 방류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과 조의를 표명한 것은 드문 일에 속한다. 남측이 이를 사과로 받아들임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이렇듯 사과는 관계 회복의 열쇠이자 갈등과 위기를 풀어나가는 상생의 소통법 가운데 하나다. 정신의학자인 아론 라자르 매사추세츠 의대 학장은 사과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갈등조정수단이라고 규정한다. 라자르는 <사과 솔루션>(원제 On Apology)에서 사과는 더 이상 약자나 패자의 변명이 아니라 ‘리더의 언어’로 바뀌었다며 패러다임 변화를 선언했다. 사과가 단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 이상의 가치를 지녔음을 3000여 건의 역사적, 정치적, 개인적 사례 연구와 임상경험들을 통해 보여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종교에 대한 관용과 인정을 표명한 교서 ‘노스트라 아에타테’ 1965년

‘사과의 기술’이 개인은 물론 정부, 기업, 사회 조직 등에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영역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 사과가 급증하는 이유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우선 1990년대 이후 새로운 밀레니엄을 ‘백지상태’로 출발하기 위해 자기 성찰과 도덕적 청산에 할애했다. 둘째, 급속한 세계화가 사과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상시 접촉이 불가피한 이웃 나라 사이에서는 분쟁해결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과를 활용하고 있다. 셋째, 지난 세기에 벌어진 대규모 인명 살상과 핵무기 확산이 사과를 증가시켰다. 넷째, 집단과 국가 간 세력 균형의 변화도 사과 빈도수를 늘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 기업, 학계, 종교계 등에서 여성의 권력과 영향력이 커진 요인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사과를 더 자주, 더 세련되게 할 줄 안다.

사과가 늘어날수록 진정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점으로 떠오른다. 정치가, 기업인 등의 ‘가짜 사과’나 ‘유사 사과’가 대표적이다. 가해자가 예를 갖추지 않은 사과를 반복하거나 거짓으로 사과하는 것은 차라리 사과를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사과의 핵심인 진정성에는 정직, 관용, 겸손, 헌신, 용기, 희생이 요구된다.

링컨 대통령의 재선 취임연설에서의 ‘노예제도’에 대한 사과

지은이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사과가 실패하는 유형으로 여덟 가지를 든다. “제가 어떤 잘못을 했건 사과드립니다.”(애매한 인정), “본의 아니게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수동적 표현), “만약 제 실수가 있었음이 드러난다면…”(조건부 설정), “피해를 입으셨다니까…”(피해 자체의 의심), “크게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잘못의 축소), “피해를 줬다니 유감입니다”(교만한 태도), 잘못된 대상에게 사과하는 꼼수, 작고 엉뚱한 잘못만 인정하는 물타기 등이다.

독일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2차 대전 때 독일의 만행을 사죄한 종전 40주년 기념 하원연설. 1985년

저자는 공적 사과의 모범 사례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노예제도 사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유대인 학살 침묵과 반유대주의 사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의 2차 세계대전 만행 사죄를 꼽는다. 특히 노예제도 사과는 잘못의 진솔한 인정, 진정한 후회, 잘못의 자세한 배경 해명, 피해 보상의 네 가지 프로세스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사과의 전범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실패한 사과를 비롯한 타산지석의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인들의 사과 문화다. 일본인들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 밖에 있어 애당초 사과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긴다고 한다. 서구에서 ‘전쟁범죄’라고 일컫는 행위마저 일본이 사과를 주저하는 까닭도 조상이나 히로히토 일왕을 탓하는 일이 용납되지 않는 보수적인 풍토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해 행위를 한 뒤 즉각 사과하는 것만이 관계회복의 첩경도 아니지만 사과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말이 마지막 경종을 울린다. 윤창현 옮김. 1만4000원


Posted by 김학순

입력 : 2009-09-18 17:44:08수정 : 2009-09-18 17:44:09

ㆍ바벨탑·이집트 피라미드·베니스 팔라초…
ㆍ문화유적 통해 인간의 수직속성을 읽다

계단, 문명을 오르다(전 2권)임석재 | 휴머니스트

일과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마주치는 계단의 함의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가히 종교적 상징성, 정치적 기념비성, 사회적 공공성, 경제적 욕망, 심리적 섬세함, 생리적 육체성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둘러싼 개인적, 집단적, 정신적, 육체적 문명 작용의 집합체이다. 계단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오름이다. 계단은 인간의 수직 욕망을 자극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는다. 계단은 정치권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며, 하늘에 이르는 종교적 길이다. 계단은 인생살이의 비유에도 곧잘 등장한다. 에드워드 멘델슨은 <인생의 일곱 계단>이란 소설집에서 탄생, 어린 시절, 성장, 결혼, 사랑, 부모, 미래의 7단계를 그렸다. 계단의 예술적인 곡선은 심지어 은밀한 시각 요소가 가미돼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서양 문명의 뼈대를 이루는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하늘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인간의 욕심으로 짓는 수직 구조물은 경계의 대상이며, 특히 이교도의 수직 구조물은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사진 위 - 피터 브뤼헐 1세의 ‘바벨탑’) 사진 제공 | 휴머니스트


손꼽히는 건축사학자인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가 통찰하는 계단은 이렇듯 시대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건축을 통해 집약적으로 저장된 보물 창고다. 한국의 대표적인 다작 건축글쟁이인 그의 신작 <계단, 문명을 오르다>(휴머니스트)는 독특한 미시 서양문명사를 엮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다. 그는 계단 하나만 추적해도 서양의 모든 문명을 읽어낼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계단이 원래 한 문명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징성이 농축된 부재(部材)’라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와 바벨탑에서부터 이집트의 피라미드, 이란 페르세폴리스, 베니스의 팔라초, 독일 아우구스투스부르크 왕궁, 로마의 스페인 계단, 브뤼셀 대법원 계단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화유적을 망라하며 계단의 문명사를 현장감 있고 감흥 깊게 펼쳐놓는다.

그는 인류 최초의 계단은 발자국이었다고 여긴다. 계단을 물질적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공적 도구가 아니라 자연 지형에 순응해서 맞춘 노력의 산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지 오르내리기의 수단 같은 기능주의적 인식은 길게 잡아야 150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전 2500년 동안 인류가 계단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다양한 인문사회학적 의미가 넘쳐나던 곳이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계단은 권력의 속성이 강하다.

한편 중세시대 건물 외부에 설치된 나선형 계단은 집권층의 권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작용했다(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팔라초 콘타리니에 있는 보볼로 계단). 사진 제공 | 휴머니스트


기독교는 야곱의 사다리 개념을 은유적으로 해석해 계단을 상징화하고, 르네상스 때에는 작가주의가 등장했다. 계몽주의는 계단의 공공성 담론을 창안했다. 로마의 유명한 스페인 광장을 설계한 알레산드로 스페키는 도심에 노천 계단을 이용한 시민공원 개념을 처음 도입한 도시건축가로 꼽힌다.

저자는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의 경우 두 가지 면에서 20세기 계단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나선형 계단을 조형적으로 활용해 조각 요소처럼 만든 것과 ‘산책로’라는 이름의 경사로를 중요한 건축 부재로 정착시킨 것을 든다.

지은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계단은 바로크시대의 것들이다. 바로크는 인간의 내적 열망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문명이자 계단을 가장 풍부하고 다양하게 사용한 문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계단의 다원성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계단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한 건축가로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80)를 꼽는다. 계단이 심미적인 요소이면서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위험한 장소라는 양면성, 이동 통로로서의 기능성과 중심공간으로서의 상징성, 사용자의 형태와 채광, 복합형식 등 팔라디오가 파악한 계단의 속성은 다양했다.

20세기 들어 고층건물의 등장과 더불어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발명되면서 오르기 힘든 계단은 결정타를 맞고 쇠퇴했다. 저자는 계단을 내주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얻은 것은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기계-물질문명의 폐해로 퇴색한, 계단에 저축되어 왔던 인문사회학적 의미는 결단코 복원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 같은 포괄적인 작업이 우리나라는 물론 사실상 세계 최초의 시도라고 자부한다. 1권 1만6000원, 2권 1만7000원



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