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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인문학 접시’에 풍성하게 담아낸 이탈리아 음식문화

입력 : 2010-05-07 17:19:15수정 : 2010-05-07 23:57:26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엘레나 코스튜코비치 | 랜덤하우스코리아

세계 3대 음식으로 흔히 프랑스, 중국, 터키 요리를 꼽는다. 그렇다면 파스타와 피자의 나라, 이탈리아는 살짝 억울하지 않을까? 사실 이탈리아는 국가를 상징하는 세 가지 낱말이 사랑하다(Amare), 노래하다(Cantare), 먹다(mangiare)라고 할 만큼 음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옛날 로마의 미식가들은 강 하류에서 잡은 물고기와 상류에서 잡은 것을 맛으로 구별했다고 한다. 당시 정치가 세네카가 “먹기 위해 토하고, 토하기 위해 먹는다”고 비판했을 만큼 로마인들의 식탐도 유별났다. 1000만명이 각기 다른 요리를 해낸다는 게 이탈리아의 복잡한 요리 문화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아무리 오래 산 외국인일지라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 한 가지는 다양하던 화제가 종국에는 음식 이야기로 흐르고 마는 특이한 대화 분위기라고 한다. 마치 한국 남성들이 회식 도중 한 번씩은 꼭 옛날 군대 이야기로 일관하는 것과 흡사한 장면이다. 사실 한국사람, 특히 지식인이라면 식사 중이라도 음식에 지나친 관심을 보일 경우 대화의 품격을 떨어뜨린다고 여기는 이가 여전히 많은 것과 비교된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문학 작품과 언어에선 음식에 대한 비유로 가득하다. ‘마카로니에 얹은 치즈’라는 말은 완벽히 결합된 상황이나 어떤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가리킨다. ‘빵처럼 맛있는’은 성격이 좋다는 뜻으로 쓰인다. ‘불 위에 너무 많은 고기를 올리다’는 여러 일을 동시에 하거나 많은 말을 늘어놓는 상황을 일컫는다. ‘파를 끄트머리부터 먹다’는 중요하지 않은 일부터 시작하거나 반대로 할 경우를 뜻한다.

ⓒAndrei Bourtsev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기억을 떠올리고, 새로운 어휘를 즐기며, 자신과 타인의 달변에 취하고, 휴양지에서 맛본 음식의 감격을 지인들과 공유하면서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 음식에 정치적, 사회적 상징성을 즐겨 부여하고 이데올로기를 담는 게 이탈리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러시아 출신 문학가이자 번역가인 엘레나 코스튜코비치의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는 독특한 이탈리아 음식 문화를 인문학이란 명품 접시에 기품 있게 담아 놓은 수작이다. 이탈리아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코스튜코비치가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문학 작품과 역사서를 비롯한 방대한 자료를 우려낸 것이어서 정보와 지식의 양적·질적 풍요는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이방인의 탐구가 깊이에서 취약점을 드러낼 우려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현지에서 보고 느낀 지은이가 나라 안과 밖 양쪽의 시선으로 외려 객관성과 균형을 담보할 수 있을 듯하다. 지은이는 설익은 스파게티 면과 ‘알 텐테’(꼬들거리는 질감) 간의 미묘한 차이를 단박에 가려내는 요리사의 탁월한 감각, 올리브오일과 마늘만으로 최고의 맛을 내는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에 우선 감복한다. 이탈리아 문화에서 어떤 요리법을 전수한다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땅의 기억을 불러온다는 것이고, 그 땅에 속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이탈리아 음식 코드는 요리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농업, 동물학, 민족지학, 일상의 기호학, 응용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의 복합적인 정보를 형성하고 설명해주는 키워드라고 한다.

이탈리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공동체가 그들만의 대표 음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피렌체의 스테이크, 밀라노의 리조토, 트레비소의 라디키오, 카프리의 샐러드 같은 것들이다. 그 지역에서만 완벽하게 요리되는 음식이나 그 지역에서만 재배하고 사육하며 가공하는 특산물은 자부심과 자랑도 하늘을 찌른다. 그들은 음식을 만들면서 ‘마법’의 주문을 걸고, 재료 이름을 기도문처럼 외울 정도다.

ⓒAlexey Pivovarov

슬로푸드 운동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배경도 알려준다. 슬로푸드 운동의 핵심은 ‘생물의 다양성’이며, 본질적인 요소는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열망이 아니라 만남과 식탁을 둘러싼 대화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폴리에서 ‘카페 소스페조’로 대표되는 나눔의 문화와 특별한 윤리는 정겹다. 손님이 커피 다섯 잔을 시킨 뒤 두 잔만 마시고 나머지 석 잔은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카페 소스페조 있나요” 하고 물으면 내주는 미풍양속이다. 손님들이 대신 지불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한 주에 한 번씩 피자를 무료로 제공하는 ‘피자의 날’도 마찬가지다.

피에몬테 지역의 간식용 빵에 발라 먹는 크림인 ‘누텔라’는 민주주의와 좌파의 이상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로써 최신 이데올로기 사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한다. 대중가수 조르조 가베르는 “누텔라는 좌파, 스위스 초콜릿은 우파”라고 노래했을 정도다.

외국인들이 쉽게 부딪히는 이탈리아인들의 음식에 대한 엄격함은 귀담아 놓을 필요가 있겠다. 이른 아침이 아니라면 카푸치노를 주문 받지 않는다. 아침 식사로 치즈가 들어간 파니노를 주문하기 어렵다. 낮 12시30분 이전이나 2시 이후 점심식사를 주문하지 못한다. 식후에 차를 마시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음식 두 가지 또는 재료 두 가지가 부적절하게 연결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번역의 감수를 맡은 스타 셰프 박찬일은 저자 코스튜코비치와 이 책을 ‘요리계의 시오노 나나미’나 역사학자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의 요리편으로 비유한다. 주례사 비평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서문을 쓴 인기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상찬과 ‘강추’는 그의 작품을 러시아에 번역·출간해온 저자와의 인연 때문으로 치더라도 말이다.

이탈리아 음식의 조리방식에 대한 해설, 파스타 소스와 재료, 파스타와 소스의 궁합 등을 기록한 목록이 자세하게 실려 있는 데다 곳곳에 보이는 친절한 감수자 주(註)도 작은 미덕의 하나다. 김희정 옮김. 2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