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범죄심리학으로 본 박근혜

 범죄자들은 먼저 자기 행동부터 정당화한다. 자기 합리화는 죄책감과 처벌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마차와 그레샴 사이크스는 이런 범죄자의 행태를 ‘중화이론’(Techniques of Neutralization Theory)으로 풀이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사유를 전면 부인하고 버티는 심리행태도 중화이론을 적용하면 분석이 가능하다.


 중화이론은 자기 행위가 실정법상 위법임을 알면서도 적절한 명분을 내세워 합리화시킨다는 견해다. 이때 동원되는 자기 정당화는 다섯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가 자기 책임 부정이다. 자기 행위는 고의성이 없고, 책임도 없다고 주장하는 방식이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씨의 행위를 대통령에게 떠넘기는 게 헌법상 연좌제 금지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연좌제는 대상이 친족에게만 국한될 뿐 두 사람에게 해당하지 않는 것임에도 박 대통령은 터무니없는 논리를 펼친다. 최순실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골수 친박인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성탄전야 보수단체 집회에 참석해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었나. 1원 한 푼이라도 받았나”라며 결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월호 참사가 자신의 책임이 아니어서 탄핵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참사 당일 출근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7시간의 행적이 모호한 데도 정상근무하면서 신속하게 현장 지휘를 했다고 파렴치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두 번째는 가해나 권리침해의 부정이다. 자신의 행위로 피해를 본 사람이 없다는 변명이 그것이다. 박대통령은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을 강제로 하지 않았으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낸 것이라고 항변한다. 인터넷을 통해 여중생과 채팅을 하다가 마음이 맞아 원조교제를 한 중년 남성이 강제추행을 한 것도 아니고, 여학생에게 용돈까지 주었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해명하는 논리와 흡사하다.

 

  기업 총수들이 국회 청문회에서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증언한데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연락했다면 강요나 다름없음에도 박 대통령은 강제성을 부인했다. 최순실이 여론을 전달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하는 ‘키친 캐비닛’과 같았다는 변명도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 피해자에 대한 부정이다. 이는 상점의 물건을 훔친 뒤 가게주인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그랬다고 둘러대는 수법이다. 선친의 재산을 가로챈 숙부네 집을 찾아가 방화를 하는 행위, 형만 편애하는 아버지를 때린 아들의 심리도 이와 흡사하다. 박 대통령의 경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일시적 여론조사 결과와 촛불시위 등을 근거로 한 퇴진 요구는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국회가 탄핵사유를 조사하지 않았고,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도 제공하지 않아 절차적 위헌성이 심각하다는 주장도 넓게 보면 이 대목에 속한다. 스스로 약속한 검찰 수사에 불응한 것은 물론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겠다던 자신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음에도 거짓 논리를 제시했다. 최순실의 국정 관여 비율이 1% 미만이라며 계량화한 발상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네 번째는 비난자에 대한 비난이다.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그럴 자격이 있느냐고 반박하는 행태다.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측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 비선실세와 친인척 부정부패가 없었던 적이 있느냐는 논리를 들이댄다. 
                                                                     

 다섯 번째, 더 높은 충성심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박 대통령은 문화융성 정책의 일환으로 재단 설립을 추진한 것이며, 현대자동차에 최순실 지인 회사가 납품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중소기업 애로 해결 노력’이라고 합리화한다.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전국에 350만개가 넘지만 유독 최 씨 회사만 콕 찍어 지원을 지시해놓고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좋은 취지라고 우긴다. 크게 보면 모두 나라를 위해 애국심을 발휘한 것에 불과하다는 반론이다. 조직폭력배들이 패거리에 대한 충성심을 상위가치로 여기며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없다. 

  박사모, 친박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행태 역시 중화이론과 그리 다르지 않다. 법리와 상식에도 맞지 않는 궤변과 억지로 일관하고 있다. 중화이론의 정당화 논리들이 무죄로 만들 수 없듯이, 박 대통령의 한결같은 변명이 면죄부가 될 리 없다. 국민의 억장을 한 번 더 무너뜨리기에 충분할 뿐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