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 홀딩스 회장은 한국 젊은이들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투자를 하려면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미래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그가 그래서 찾은 곳이 한국에서 청년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는 노량진이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한국 청년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은 로저스는 깜짝 놀랐다. 젊은이들이 바라는 직업 1위가 공무원이어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도전정신이 사라진 한국에서 더 이상 투자 매력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두 차례 세계 일주를 한 로저스는 한국처럼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나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통계청이 2016년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청년층 취업시험 준비생 가운데 40%가 공무원시험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수치는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가장 높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고교생의 장래희망 1위도 공무원, 2위가 건물주라는 점이다. 이런데도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더불어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로저스가 보는 한국의 장래가 밝다면 외려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젊은이가 공무원이나 대기업만 좇으면 5년 이내에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기간 노량진 고시촌을 방문해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에게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충원하겠다고 약속해 이곳 분위기는 한층 들떠 있다. “추경 통과됐어요. 이번에 모두 파이팅 합시다.” 국회가 추가경정 예산안을 통과시킨 지난달 22일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공무원시험 합격률이 1.8%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 정부의 졸속 교사 수급정책으로 초등교사 임용대란이 심각하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초등교사 선발인원을 최대 90%가량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2018학년도 공립학교 교사 선발계획’을 보면, 올해 초등교사 선발인원은 지난해에 비해 43% 줄었다.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초등교사 선발인원을 대폭 늘린 업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간한 ‘대학 전공계열별 인력수급 전망 보고서’는 교육계열 인력이 2025년까지 17만4000명이나 초과 공급될 것으로 내다본다.

                                                                                    


 자연계 우수학생들의 의대 쏠림현상과 더불어 의사인력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도 내부자들이 공식적으로 제기할 정도다. 대한의사협회가 2019년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이 축소돼야 한다는 입장을 최근 보건복지부에 정식 요청했다. 한국 인구가 2000년 대비 2014년에 7.3% 늘어났으나, 같은 기간 의사 수는 7만2503명에서 11만2407명으로 55%나 증가해 의사인력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현상은 역대 정부가 정책적 합리성보다 정치적인 의도로 의대 신설을 인가하거나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린 탓이다.


 이와는 달리 공학계열은 2025년까지 7만7000명 정도의 인력부족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국고용정보원이 경보를 발령했다. 가장 심각한 전기전자분야를 포함해 공학계열 전반에서 고급 인력 부족현상이 두드러질 전망이라고 한다. ‘서울대 공대 대신 무조건 의대’란 공식은 너무나 오래된 걱정거리다. 서울대 합격 포기자가 해마다 10% 달하고, 그 가운데 약 40%가 공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학생의 20%가 창업을 검토하고 10% 정도는 실천에 옮기는 반면, 한국 대학생의 3%가 창업을 꿈꾸며 0.1%만 실제로 창업에 도전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격차는 성공확률이 낮은 토양이 주요원인이다. 젊은이들을 나무랄 수 없다. 지난 20년간 억만장자를 분석한 결과, 부의 대물림이 아닌 자수성가형은 미국 71% 일본 81%인데 비해 한국은 26%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가인력구조 재편의 긴요성을 보여주는 지표들은 차고 넘친다. 국가 차원에서 치밀한 전략과 실행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한국의 장래가 밝지 않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야할 때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큰 그림을 세밀하게 그리고, 정치적 고려 없이 실행해 나가야 할 숙제다. 경제계, 대학을 포함한 이익집단의 이기주의와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은 난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지혜롭게 조정하는 게 정치의 본령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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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正義)의 반대말은 의리’라는 한국적 정서가 정치판에서는 한결 도드라진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정치는 의리로 하는 것’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유권자들에게 주입하려 애쓴다. 홍 대표는 지난 주말 “선장의 총애를 받아 일등 항해사에 오른 사람들이 배가 난파할 지경에 이르자 선상반란을 주도하면서 선장 등 뒤에 칼을 꽂고 자기들끼리 구명정을 타고 배를 탈출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을 겨냥해 날린 화살이다. 그는 특히 “TK(대구·경북)민심은 살인범을 용서해도 배신자들은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다”며 지난 대선 때 했던 발언을 거듭했다.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말의 다른 버전이란 느낌을 준다. 사실 이 언명은 박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당부했던 것과 사뭇 모순된다. “공직사회에서 정의의 반대말이 불의가 아니라 의리라고 들었다. 공직에 있다면 국가를 위해서 사사로움은 멀리할 줄 아는 자기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그가 탄핵당한 뒤 구속된 채 재판을 받고 있는 까닭도 정의가 아닌 사사로운 의리를 앞세웠던 탓임을 돌아보면 허탈해지는 대목이다. ‘의리’라는 단어에서 최순실 씨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사람은 의리가 필요해. 내가 지금까지 언니 옆에서 의리를 지키니까 이만큼 받고 있잖아.”

                                                                                 


 박근혜 정권의 적폐로 말미암아 혁신위원회를 두게 된 자유한국당이 혁신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의구심을 물씬 풍겨난다. 홍 대표가 전권을 주기로 약속하고 영입한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탄핵 반대에 앞장섰던 인물인 데다 반혁신적 현재진행형 발언으로 당 안팎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홍 대표의 성향과 의중이 고스란히 반영된 혁신위원장이어서 이런 사태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혁신과정에서 “탄핵에 앞장 선 분들의 잘잘못을 따지겠다”고 선언한 것부터 개혁 역행발언으로 들린다. 홍 대표가 혁신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그는 과거에도 극우성향의 언행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극우사이트인 ‘일베’를 두둔하는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한 적도 있다.


 국회의 합법적 절차와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판단으로 결정된 탄핵을 반헌법적이라고 여기는 인물이 개혁의 칼자루를 쥐었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80퍼센트에 육박하는 탄핵찬성 민의와 언론을 협잡이나 일삼는 집단으로 타매하는 것은 반민주적 발상의 극치다. 혁신의 목적이 외연 확장으로 지지층을 넓히는 것임에도 강성 보수색깔을 덧칠해 지지할 수 있는 사람만 겨냥하겠다고 선언한 것 역시 혁신 의지가 다른 곳에 있음을 시사한다.


 전권을 쥔 혁신위원장이 임명한 10명의 혁신위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박근혜를 옹호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고개가 더욱 갸우뚱해진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했던 변호사와 탄핵 국면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20대 여성 혁신위원이 포함된 것은 귀를 의심케 한다. 20대의 젊은 여성이 혁신위원이라면 미래지향적인 혁신방안을 선도해야겠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자유한국당의 혁신위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를 추구한다고 집약했으나 대다수의 민의와 법치를 부정하는 듯한 모순을 드러냈다. 치열한 자기반성과 냉철한 현실인식이 바탕에 깔려야 혁신이 가능하겠지만 합리적 보수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듯하다.

  정치에서 의리는 유권자들에게 발휘해야 하는 것이지 조폭세계에서나 통용되는 것과는 다르다. 불의를 저지른 인물과의 의리는 그게 곧바로 불의다. 의리는 정의와 결합할 때만 정당성을 지닌다. 겉으로는 혁신을 표방하지만 속내는 혁신과 거리감이 있는 게 ‘홍준표당’이다. 다당체제에서 15퍼센트 정도의 지지층을 견인하는 게 제1야당 지위에 가장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지 않고선 생각할 수 없는 혁신작업이다. 합리적인 보수당을 지향하는 바른정당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좌표설정이 바로 ‘태극기집회’에 있다고 보는 현실적 추론도 여기서 나온다. 


 제1 보수정당의 환골탈태를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국정치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다. 바른 정당과는 부정적인 의미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혁신에 소극적인 ‘홍준표당’의 지향점이 그래서 의뭉스럽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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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다수 한국 정치인들이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자주 쓰는 말이 ‘금도’(襟度)다. “금도를 넘었다” “금도를 벗어났다” “금도가 무너졌다” “금도를 지켜야 한다”와 같은 말이 하루가 멀다고 들려온다. 상대방이 지나친 언행으로 공격 했을 때 주로 동원하는 반박 표현이다. 대통령, 국회의장, 당 대표라고 예외가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지난 주말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다. 이 원내수석은 “정치공세에도 금도가 있는 것이다. 우리 대선후보와 전직 대표인데 그분들이 아무리 비판하고 싶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것”이라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 취업특혜의혹과 관련한 ‘제보조작’ 파문에 대해 추 대표가 ‘머리자르기’라는 용어로 공격하자 국회 일정 전면 불참선언과 함께 나온 논평이다.


 금도라는 낱말에는 선을 넘는다는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어디에도 없다. 금도(襟度)는 선비의 폭넓은 소맷자락처럼 다른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도량이어서 ‘보여주거나’ ‘발휘해야할’ 성향의 언어일 뿐이다. 

                                                                                     


 금도가 진정으로 머물러야할 곳은 강하거나 칼자루를 쥔 쪽이다. 지금의 정치상황이라면 집권여당과 청와대다. 취임 2개월째 80%를 넘나드는 대통령의 지지율과 50%를 넘는 여당의 지지율은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이다. 검찰수사와는 별개로 국민의당 제보 조작파문과 관련해 추 대표가 ‘머리 자르기’ 발언에 이어 연일 강성으로 대응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보기 어렵다. 전형적인 ‘금도 빈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에 갇혀 있는 상대당이 스스로 석고대죄하도록 만드는 게 더 지혜롭다. 정치게임으로만 보더라도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은 가산점이 될 수 없다. 낯을 들지 못해야할 정당이 ‘국민의당 죽이기’, ‘패자에 대한 정치보복’이란 거친 언사로 반격을 가해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서다.


 집권당 대표의 언행은 사소한 것에도 남다른 무게가 실린다. 그렇지 않아도 집권여당은 다수인 야당을 설득해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과 정부조직개편안 같은 발등의 현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할 중책을 지녔다. 화급한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와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숙제도 상존한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새 정부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뒷말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상식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르는 정치적 묘방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겠다. 추 대표는 얼마 전 ‘5행시 이벤트’로 전당대회를 앞둔 자유한국당에 직접 저격수로 나선 적도 있다. 집권당 대표는 국면을 넓게 보고 정국을 이끌어 갈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바른 길이다. 여소야대인 정치구도에서 금도의 정치 역량은 더욱 절실하고 긴요하다.

                                                                               


 한미 정상회담과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금도를 발휘할 시점이 도래한 듯하다. 외교 무대의 성공을 바탕 삼아 국내정치를 조속히 안정적으로 다질 필요성이 커졌다. 문 대통령은 송영무 국방부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의 정식 임명이라는 뇌관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해야 한다. 귀국 당일인 10일을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 시한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야3당이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두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여야 관계가 급랭하며 7월 국회운영이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로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란 판단은 성급하다. 외려 임명을 강행해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것보다 작은 아픔을 감수하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청와대는 여론만 보고 가겠다지만 두 후보자에 대해서는 여론조차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문제의 인사들이 개혁 과제 수행의 적임자로 흔쾌히 인정받기 어려워서다. 개혁에 방점을 두고 있는 정의당마저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지지층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야당을 좀 더 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적지 않다.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새로운 조타수가 필요하다는 여론에도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금도 정치는 칼날이 아닌 칼자루를 쥔 쪽의 덕목이다. 작은 것을 얻기 위해 큰 것을 놓치면 좋은 정치가 아니다. 높은 지지율의 대통령이 금도의 정치가 필요할 때는 통 큰 리더십을 보여주는 게 국민은 물론 자신에게도 바람직할 것 같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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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섬나라 일본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 교수가 이 조어를 창안한 것은 10년 전 일이다. 나쓰노 교수는 대륙에서 1000㎞나 떨어진 섬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고유한 생태계를 형성했지만, 외부종이 유입되자 면역력 약한 고유종들이 멸종 위기를 맞은 갈라파고스 섬들의 상황에 빗대어 이처럼 명명했다.

 

   휴대전화 인터넷망 아이모드(I-mode)의 개발자이기도 한 그는 소니, 파나소닉 같은 일본의 초일류 IT기업들이 세계 표준을 무시한 채 내수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고집한 게 갈라파고스 현상을 자초했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면서 인기몰이를 하던 일본이 고립을 초래해 쇠락의 길을 걸은 것은 더욱 역설적이다. 일본 기업들이 도전보다 안주를 택했기 때문이다. 나쓰노는 이를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지부조화는 명백한 판단 착오였음에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끝까지 믿으려하는 심리현상이다.

                                                                                    


 오는 7월3일 전당대회를 계기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자유한국당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져 있는 듯하다. 소속 정당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곧이어 치러진 대선에서 참패한 한국당은 혁신은커녕 진화를 멈춘 섬처럼 보인다.

 

  세상이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한국당의 시계는 여전히 2016년 가을에 머물러 있다. 어리석은 선택임에도 끝까지 자신이 옳았다고 믿는 인지부조화 현상도 일본 IT기업들과 흡사하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며 자기들끼리 권력싸움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세상의 흐름과 동떨어져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자기반성과 혁신 없이 강한 야당만 추구하다보니 무리수가 등장한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너나없이 좌충우돌 막말을 쏟아내 한국당 혐오증을 가중시킨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권을 다 잡은 것처럼 보이는 홍준표 대표 후보가 ‘아무말대잔치’의 선두주자다. 홍 후보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 막말의 극치를 과시했다. 그의 막말은 전통적인 보수성향의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리게 한다는 비판이 많다. 홍 후보는 “중도층이나 외연 확장 같은 말은 학자들이나 하는 소리”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국당은 국회 107석을 보유한 제1야당의 존재감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과시하고 있다. 인사 문제를 빌미로 한국당은 뭐든지 퇴짜 놓는 당 같은 모습이다. 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예방을 저지하고, 청와대가 주도하는 여야정 협의체 참여를 거부했다. 문재인 대통령 초청 국회 상임위원장 오찬에도 불참했다. 국회의장과 원내 대표의 주례 회동에도 연속으로 불참했다. 한국당의 의도는 제1야당의 선명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기세를 초반에 꺾겠다는 심산에서 나온 것 같다.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主思派) 정권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극우정당의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증좌의 하나다. 종북이라는 공격만하면 지지율이 저절로 올라갈 거라는 오판이 확장성은커녕 운신의 폭을 점점 좁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 낡은 습성이다.

 

   대구·경북 유권자와 60대 이상 노령지지층에 매달려 있는 것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부추긴다. 벌써부터 홍 후보가 당권을 쥐고 그의 막말로 당이 운용되면 젊은 층의 외면과 ‘대구경북당’이란 낙인찍기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당내에서도 나온다. 친박계는 당을 쇄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고, 홍 후보는 당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들려온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머지않아 자책골로 지지도가 추락하고 자신들의 지지도는 자동적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공식을 믿는 듯하다. 과거 정권들의 선례에 비춰볼 때 결국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거대한 착각이다.


 자기성찰도 없이 야당의 존재감만 찾으려 드니 정당 지지율은 대선후보의 지지율 24%에 턱없이 못 미치는 한자리 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같은 다른 야당과 거의 동률이나 다름없다. 실력에 비해 몸집이 너무 크다는 힐난도 그래서 나온다.


 사실 당내에서도 7·3 전당대회 결과보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는 얘기가 많다. 당 대표가 누가 되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치열한 혁신을 통해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앞날은 밝지 않을 게다. 일본기업들은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오픈 플랫폼 전략으로 돌파하면서 지난날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집념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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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작용에는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뉴턴의 운동 법칙은 정치에 적용해도 유효할 때가 많다. 개혁에 대한 반개혁세력의 반격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속도를 내자 보수 야당의 반발도 흡사하다.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논리가 뒤따른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처럼 적폐청산이라고 쓰고 정치보복이라고 읽는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정원 7대 정치개입사건’ 재조사에 들어가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한풀이식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한다. 이 중에는 검찰 조사가 이미 끝난 사건도 있고, 대부분 정치적으로 이슈화돼 여론으로부터 혹독하게 검증을 받았던 사안들인데 이제 와서 무얼 더 캐내려 하느냐는 부연설명도 곁들인다. 짐짓 국정원 직원들 걱정까지 해준다. “국정원 공무원들은 무슨 죄가 있느냐?” 대부분의 언론기관이 쉬는 토요일임에도 긴급 논평처럼 냈다.


 재조사 사건은 2012년 대선 댓글사건, 북방한계선(NLL) 관련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보수단체 지원 의혹,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박원순 서울시장 사찰 의혹, 불법 해킹 의혹, 최순실 사건 비호 의혹 등 하나같이 중요하고 민감한 이슈다. 이 가운데 댓글 사건은 수사하던 검사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 인사로 쫓겨나기까지 했던 중대 사안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처벌받아야할 불법행위였다.

                                                                               


 일부 야당은 검찰이 다 조사한 사건을 다시 들춘다고 반발하지만, 권력의 주구역할을 한 검찰조사를 믿고 넘어가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정보기관과 정치검찰을 동원해 공작정치를 일삼았던 박근혜 정권 사람들이 적폐청산을 통해 탈정치권력기관으로 바로 세우겠다는 새 정부를 보고 정치보복이라니 적반하장이다.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 등 속칭 ‘사자방’은 복마전으로 불릴 정도였다. 정권 차원의 적폐 상징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뿌리의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보수야당의 반발과 달리 국민여론조사에서는 4대강 사업 재조사 찬성의견이 무려 78.7%다.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 바른정당의 지지자 71%도 ‘재조사 찬성’이다.

 

  대다수 국민은 적폐청산대상으로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 인사들과 보수야당은 심각한 녹조현상과 가뭄 대책에 관해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호도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세월호 엄정 수사,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정윤회 문건 재조사 같은 적폐청산 작업도 이뤄졌거나 진행 중이다. 
                                                                                    

 

 적폐청산 전반에 관한 여론도 매우 호의적인 건 마찬가지다. 지난 주말 발표된 한국일보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노력에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78%로 집계됐다. 적폐청산에 대한 압도적인 긍정 평가는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국민적 열망의 연장선으로 봐도 무방하다. 시대가 변한 지금 정치보복이란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증거다.  


 당내 갈등 치유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전선구축을 목표로 삼은 한국당은 새 정부의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치환해 개혁법안이나 정책마다 반대에 나설 개연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정치보복이란 말은 잘못한 게 그리 없는데도 정치적 탄압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야당이 ‘정치보복’이란 말만해도 동정표를 얻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격변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밝혔듯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사람을 겨냥한 정치보복이 아니라 시스템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시스템 구축하는 일은 적폐청산의 성공여부에 달렸다. 박근혜 정권이 내걸었던 모순적인 ‘비정상의 정상화’는 새 정부에서 적폐청산을 거쳐 비로소 정상궤도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적폐청산에 매달리면 협치는 물거품이라는 주장은 협박성 언어에 가깝다. 협치 거부를 위한 명분쌓기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적폐청산은 곧 정치보복이라는 등식이 여전히 통용된다는 생각도 이젠 청산 대상의 하나다. 적폐청산 없이 제대로 된 개혁은 불가능하다. 적폐청산 없이 밝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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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문재인 대통령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인물은 단연 전임자이지만,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정치적 상황과 성향 등에서 카터 전 대통령과 공통점이 많다. 문 대통령의 집권은 카터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탄핵 절차 도중 사임한 다음 선거에서 이겨 정권교체를 이룬 상황과 흡사하다.


 보수 정권의 부도덕성과, 기득권에 매몰된 워싱턴 정가의 주류세력에 진절머리가 난 미국 유권자들은 정직과 도덕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건 조지아의 땅콩농장주 카터에게 환호했다. 그러자 카터는 자존심에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도덕성을 넘어 때로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정도였다. 카터는 외교정책에서도 인권과 도덕성을 앞세웠다.

 

  그는 저서 ‘예수님이 대통령이라면’에서 대통령이 정직하고 인격적일 때 진정한 세계 평화의 리더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항상 웃는 얼굴로 푸근한 이미지를 심어준 카터는 웃을 때 치아를 몇 개 드러내느냐에도 신경을 쓴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는 20세기의 가장 실패한 미국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아이러니와 마주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가장 인기 없고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혔다. 오일 쇼크로 치명타를 입은 경제난, 11%까지 치솟은 실업률이 재선 실패를 불러왔다. 석유파동에 직면하자 국민은 손쉬운 방책을 원했지만, 카터는 정직한 해결책을 바라는 것으로 착각했다. 20세기 미국 대통령 가운데 카터를 포함해 재선에 실패한 3명이 모두 경제난에 발목이 잡혔다는 사실은 많은 걸 시사한다.

 게다가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 외교에 매달리다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유약한 대처,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 구출 실패 등을 초래해 세계 최강국의 체면을 구겨버렸다. 그에겐 쓸데없이 작은 일에 매달리는 ‘마이크로매니저’라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미국민들은 지적이면서 청교도 정신까지 갖춘 카터를 지겨워했다. 경제가 엉망인 상황에서 국민을 자꾸만 가르치려 들었기 때문이다. 카터는 재선에 실패한 뒤 1982년 펴낸 회고록에서도 ‘미국은 도덕과 자유, 민주주의를 선명하게 하는 외교정책을 추진할 때 가장 강하고 실행력이 있다’고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카터의 임기 말 지지율은 13%로, 닉슨이 쫓겨날 당시 지지율 24%보다 낮았다. 지금이야 ‘카터보다 훌륭한 전임 대통령은 없다’고 박수를 받지만 ‘대통령을 하지 않고 퇴임 대통령으로만 남았더라면 더 존경 받았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따뜻한 인성과 겸손한 성품을 갖춘 문 대통령은 취임 초반부터 소탈하고, 가식이나 권위의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정의 큰 그림을 잘 그려나가 갈채를 받고 있다. “너무 잘해서 무섭다”는 한 야당 의원의 평가는 상징성 있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카터를 반면교사로 상정해 놓으면 더욱 좋을 듯하다. 의외로 과감한 결단력이 있다는 지지자들의 목소리도 응원가가 될법하다.

 

  심리학자들이 지적해 온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떨쳐버려야 성공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대통령이 사랑과 존경만 받아서는 안 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말도 새겨놓을 만하다.


 국민과의 소통에 역점을 두고 사소해 보이는 문제까지 지혜롭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 초반 분위기를 잘 잡아가고 있음에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도 ‘대통령은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일레인 카마르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의 충고는 경청함직하다. 카마르크는 대통령들이 정책, 커뮤니케이션, 실행력의 세 가지 능력에 조화를 이뤄야 함에도 ‘오늘날에는 소통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미디어 환경을 지나치게 의식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역할 균형을 잃어버렸다는 게 그의 통찰이다. 오늘날 대통령들이 세 가지 가운데 실행력을 심각하게 간과하고 있다는 카마르크의 조언은 명심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대관세찰(大觀細察)하는 실행력의 하나로 일자리창출을 맨 앞자리에 세워 경제 살리기에 모든 정열의 절반 이상을 쏟아 붓는다는 각오로 임하면 길이 보일 게다. 갈급한 서민생활이 나아지지 않으면 적폐청산과 사회개혁도 색이 바래고 만다. 지지 세력의 욕구를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안보와 외교에서 무르다는 평가를 받지 않아야 한다. 문 대통령이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다’는 손가락질만 받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희망가가 들려올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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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마치 이사(李斯)의 상소문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읽은 진시황의 심정과 흡사한 듯하다. 홍 후보는 투표일을 사흘 앞두고 바른정당 탈당 의원의 복당을 허용하고 친박근혜계 핵심 의원들의 징계 해제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해 세를 과시했다.


 이사의 상소문은 덧셈정치의 표본처럼 회자된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음으로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음으로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홍 후보가 바른정당을 떠난 비박계 의원들의 복당과 당원권이 정지된 친박 의원들의 징계 해제를 밀어붙인 명분은 ‘보수 대통합’에 의한 막판 역전승이다. 바른정당 탈당파 회군에 대한 자유한국당 친박계의 거부감과 반발이 만만치 않자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복당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친박계 핵심의 정치적 사면·복권을 단행하는 카드다. 선거 막판에 1~2위가 뒤바뀌는 ‘골든크로스’를 노린다는 게 홍 후보의 전략이지만, 1위와 지지율 격차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여부는 불확실하다.

                                                                                       


 이 때문에 경쟁후보 진영의 논평대로 “질 것이 뻔한 대선은 안중에 없고 대선 이후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시각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도로 새누리당을 만들면 대통령 선거 뒤 홍 후보의 당권확보에 유리한 것은 물론 야당으로서의 몸집도 불려놓을 수 있어 일석이조일 가능성이 큰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른정당과의 보수진영 주도권 싸움에서도 자유한국당이 세 대결로 몰아갈 수 있는 터전을 다지는 데도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국정농단 문제가 있었던 친박들을 용서하자는 홍 후보의 주장은 국민 정서나 정치 도의상으로도 설득력이 털끝만큼도 없다. 이번 대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인한 탄핵·파면 때문에 치러진다는 사실을 잊고 있거나 무시하는 증거 밖에 되지 않는다.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에 대한 열망이 담긴 선거의 의미를 폄훼하는 처사다. 국정농단의 책임을 지고 쇄신하겠다며 당 이름까지 바꾼 뒤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지금 박근혜 탄핵과 구속을 끝까지 반대한 친위대를 용서해 ‘도로 친박당’이 됐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혁신 쇼를 벌였지만 적폐의 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만 재확인시켜줬다. 나라의 미래는커녕 정치야욕만이 넘쳐나는 구태를 저버리지 못한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우리가 압승하기 위해 바른정당에서 오려는 사람들도 다 용서하자’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우선은 좋은 편을 취한다는 경구가 제 격인 상황이다. 


 보수진영에 국한시켜 봐도 ‘도로 새누리당’이 홍 후보와 자유한국당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보긴 힘들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마지막으로 공표된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 15~20%는 박근혜 탄핵을 반대한 ‘태극기 집회세력+α’에 불과하다. 박근혜를 무조건 두둔하는 ‘애국 보수’를 기치로 내건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에 기대는 보수 정당에 희망은 없다. 국민과 진짜 보수를 배신한 게 박근혜와 새누리당이었음을 애써 눈 감는다고 세월과 함께 지워지지 않는다.


 대선 후 홍 후보의 입지도 불확실하다. 또 다시 혁신을 운운하는 과정에서 친박계의 기세가 등등해 진정한 재건축은 뒷전으로 밀려나날 개연성이 크다. 당의 내홍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극한 정쟁을 촉발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벌써부터 어른거린다.

                                                                                 


 썩은 상처를 도려내야 새 살이 돋아나는 건 상식이다. 미봉 상태로 넘어가면 더 큰 병으로 번져 끝내 고치기 어려워질 확률이 높다. 보수의 개혁은 뼈를 깎을 각오로 해도 모자랄 판이다. 보수에겐 수구를 떨쳐버리는 용기가 요긴하다. ‘부패기득권 세력의 온상’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회복하기 어렵다. 


  이사가 상소한 태산과 바다는 홍준표의 자유한국당과 다르다. 이사는 천하의 인재를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걸 경계했다. 어디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와 치명적인 오물까지 마구 받아들인 태산과 바다는 삶의 터전을 제공하기는커녕 목숨을 앗아가는 무기가 될 뿐이다.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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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투표한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자극적인 감정표현이 상례화했다.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들만큼 그런 상념이 두드러진 사례도 드물 것 같다. 물건을 사고 나서 자책하는 ‘구매자 후회’(buyer’s remorse)와 다름없다.


 소비자들은 적절하지 않은 상품을 비싸게 산 것을 곧잘 후회하곤 한다. 상당수 구매자들은 판매자에게 설득당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산다. 그것도 직업적인 구매자가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논리에 근거해 구매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 ‘유권자 후회’(voter’s remorse)도 충동구매를 한 뒤 한탄하는 구매자 후회와 흡사하다.


 성경에 구매자 후회에 관한 첫 기록이 등장한다고 해석하는 종교인도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뱀의 꾐에 넘어간 이브와 아담의 얘기가 그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죄가 간교한 뱀의 구매 권유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뱀이 이브를 유혹하고, 이브가 아담을 부추긴다. 결국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 먹는다. 하나님의 저주가 뱀은 물론 이브와 아담에게도 내린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구매자 후회를 하는 꼴이다. 구매자 후회는 원죄와도 가깝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공화당 후보 시절 ‘구매자 후회’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것은 위스콘신 주에서 이미 조기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에게 투표한 분들은 ‘구매자 후회’를 겪고 있을 겁니다. 재투표를 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젠 자신을 뽑은 유권자 가운데 후회하고 있을 사람이 제법 많을 법한데도 그랬다.


 유권자 후회는 투표가 이성적인 정치행위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투표를 단순하고 감성적으로 한다. 영국 작가 헥터 먼로의 냉소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국민은 분노에 투표하는 것이지 올바른 평가를 내려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어떤 것에 찬성해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반대해서 투표한다.”


 19대 대통령선거는 이제껏 찾아볼 수 없었던 다양한 현상들로 말미암아 유권자들도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떤 관전자는 초현실적인 대선판이라고 평할 정도다. 상당수 유권자가 사상 첫 보궐선거여서 빙상 경기의 쇼트트랙에 비유될 만큼 단기전으로 치러져 선수의 진짜 실력을 파악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한다.

                                                            

  막판의 후보 사퇴와 연합, 안보 이슈, 네거티브 같은 3대 변수도 유권자 후회 여부를 좌우할 관건의 하나다.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여권과 야권의 대결구도가 무너지는 바람에 이념, 지역구도, 보수 유력후보가 없는 ‘3무 대선’이 등장해 고질병폐가 다소 사라진 긍정적인 면도 있긴 하다.


 어느 때보다 차악(次惡)선택 논쟁도 가열돼 구매자의 마음을 헷갈리게 한다. 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면서 유권자를 유인하는 세력이 엄존한다. 특정 후보를 겨냥한 특정 진영의 음모설까지 그럴듯하게 퍼져나가 SNS상에서는 논전이 가관이다. 특정 진영 언론이 반대 진영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계략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특정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유력 후보가 너무나 싫어서다. 여론조작 시도 움직임도 실제로 꿈틀거린다. 이런 것들이 유권자의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 십상이다. 유권자들은 건강하고 활력 있는 토론과 정확한 정보를 통해 후보를 평가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전략적 선택’이라는 미명 아래 난무하는 ‘O찍X’론은 사표논쟁(死票論爭)의 연장선상인 차악론에 대해서도 증오와 분노를 퍼부어댄다. 진보 진영의 차악론, 보수 진영의 차악론이 교직(交織)해 더욱 어지럽다. 후보 차악론의 복잡성은 전형적인 차악으로 불리는 진짜 ‘전쟁’의 딜레마와 흡사하다. 애초부터 이번 선거만큼 보수적인 유원자의 표심이 유력후보의 부침에 따라 갈 곳을 찾지 못해 유랑한 경우도 없었다. 범보수 단일화 요구도 상존한다.


 유권자 후회가 많을수록 후보자들은 이미지와 인기 관리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유권자가 감소해야 정치가 발전한다. ‘장미 대선’으로 일컬어지는 이번 대선이 후보들의 장밋빛 언행에 흔들려 또 다시 구매자 후회를 양산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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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소민족 망명정부의 비애를 김광균 시인처럼 처연하게 은유한 이는 일찍이 없었다. 김광균은 추일서정’(秋日抒情)에서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에 비견했지만, 패망한 나라의 화폐가 쓸모없이 나뒹구는 신세임을 비감하게 보여준다. 영토와 국민은 강대국에게 앗기고 허울뿐인 주권만 지닌 망명정부의 애상은 떠올리기만 해도 지끈거린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1939년 프랑스 파리에 망명정부를 세운다. 프랑스마저 독일에 항복한 뒤 폴란드 망명정부는 영국 런던으로 옮겨간다. 이 망명정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폴란드 본토에 소련의 꼭두각시 정부가 수립되자 1990년까지 존속했다. 노동운동가 레흐 바웬사를 중심으로 한, 정통성 있는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폴란드 망명정부는 막을 내렸다. 폴란드 헌법은 온갖 수모 속에 끈질긴 독립투쟁을 벌인 망명정부의 정통성만 인정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줄곧 폄훼됐던 망명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기념일이 오는 13일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98주년을 맞는다. 박근혜 시대의 종언과 더불어 청산해야할 숙제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가치 훼손과 건국절 제정 움직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건국절 제정이 국민적 저항을 받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사실상 부인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밀어붙였다. 1948대한민국 정부수립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는 작업이 그것이었다. 그게 독립운동의 역사와 가치를 격하하고 보수 기득권층의 친일 흔적을 희석하려는 계략이라는 사실은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

 

 1948년 건국의 부당성은 손으로 꼽기 부족할 정도로 많다. 우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승계를 명시한 헌법 전문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영토조항에 위배된다. 고귀한 독립운동의 흔적은 윤색되고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십상이다.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 거사를 앞두고 대한민국 14426에 한인애국단 선서식을 치른 일과 같은 독립운동 근거는 사라지고 만다. 한 나라에 개천절과 건국절이라는 두 개의 개국일이 존재하는 희한한 일도 생긴다. 문화재 반환을 비롯한 미청산 과제를 일본에 요구할 역사적 자격을 잃어버린다. 남북통일의 역사적·법적 자격을 포기하는 꼴이다.

 

 이승만 정부의 첫 관보와 첫 역사교과서까지도 1919년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해로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 부정된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 이미 대한민국이 건국됐음을 일왕(일본 천황)에게 통보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식문서도 최근 공개된 바 있다. 이처럼 보수우익의 우상인 이승만과 박정희도 그대로 사용했던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용어를 뉴라이트라는 집단이 나와 혼란에 빠뜨렸고, 보수집권세력이 부화뇌동하기에 이르렀다.

                                                                                   

 보수우익진영의 주장은 1919413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지 대한민국 국가가 성립한 날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토, 국민, 주권, 전 세계적인 인정 같은 네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만 정식 국가로서 인정이 된다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폴란드의 망명정부나 샤를 드골의 프랑스 망명정부도 정부를 참칭하는 독립운동단체에 불과하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보수진영이 그토록 숭배하는 미국도 주권국가라고 국제사회에 선포한 177674일만 독립기념일로 삼는다. 미국은 영국 식민지 신분으로 국가, 영토, 주권 가운데 아무 것도 갖추지 못했던 상태가 독립선언 후 13년이나 지속됐다. 그럼에도 미국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정식 취임한 1789430일을 건국일로 지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혼란의 근본 원인은 해방 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데 있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보수우익진영은 당초 건국’ 70주년이 되는 2018815일에 건국절을 지정하는 걸 목표로 세웠다.

 독립운동의 역사와 가치를 훼손하면서 끊임없이 ‘1948년 건국절에 매달리는 보수우익의 만행은 박근혜 시대의 종말과 함께 끝나야 한다. 오는 510일 취임할 새 대통령은 2년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망명정부이며 헌법을 지닌 공화국 정치체로 역사에 기술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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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나라는 역사를 감추지 않는다. 항상 오점을 직시하고 그것을 바로잡는다.” 누가 한 말 같은가? 진보 역사학자, 아니면 좌파 정치지도자? 놀랍게도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삼은 신보수주의자(네오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명언이다. 부시는 지난해 9월 워싱턴 내셔널 몰에 문을 연 흑인역사문화박물관 개관식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나란히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박물관은 진실을 위한 우리의 헌신을 보여준다는 한 마디도 덧붙였다. 흑인역사박물관은 노예 제도와 흑인 차별의 진면목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미국의 치부나 다름없다.

 

 부시의 말은 역사 왜곡에 혈안이 된 일본 정부에 그대로 전해주면 안성맞춤이다. 사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친일·독재의 실상을 윤색하고 아버지 박정희를 미화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해가 갈수록 역사 왜곡에 집요함을 더해 가고 있는 일본 극우정권은 지난 주 한층 무서운 마각을 드러냈다. 24일 공개된 일본 고교 역사·사회과목 교과서 검정 결과,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책이 대폭 늘어나 80%에 이르렀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은폐·축소한 일본 교과서는 여기에 더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을 줄이고 왜곡하기 시작했다. 201512월 한일 두 나라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처음으로 반영됐지만, 다수의 교과서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사실만 부각했다.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은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베 정권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선 국면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위안부 합의부터 들먹였다. ‘불가역적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도 손대지 못한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랑했다. 이런 수준의 합의라면 앞선 정부들이 하지 못할 까닭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일본의 역사왜곡을 도와준 꼴이 됐다. 더 큰 문제는 가해자인 일본의 아베 총리와 각료들이 피해자인 한국인들을 조롱하는 데도 한국정부가 입을 다물고 있는 점이다. 진정한 사과와 책임 없는 이상한 합의 탓에 일본이 사실을 왜곡해도 한국 정부가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더 화나게 만드는 것은 한국 외교 관계자들이다. 이준규 주일 한국대사는 25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의 차기 정권이 위안부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발언을 또다시 해 비난을 자초했다. 이 대사는 부산 위안부 소녀상도 이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일본 편을 들었다.

                                                                                  

      

   국민 여론과 거꾸로 가는 행태다. 지난달 한국갤럽 여론 조사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재협상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재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은 2016158%, 2016963%에서 2017270%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부산 소녀상 역시 78%그대로 둬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찬성 여론과 맞먹는 수준이다. 국민의 눈길이 곱지 않은 것에는 이준규 대사 임명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점이 감안됐으리라는 의구심도 작용했다.

 

 잘못된 위안부 합의는 온갖 파문을 낳고 있다. “위안부 합의 무효!”를 외치며 일본 대사관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던 대학생이 지난주 검찰로부터 징역 16개월을 구형받은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숙명여대생 김샘(25) 씨는 시위를 벌이고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지킨 혐의로 한 달에 네 번 재판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저항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용수 할머니(90)는 지난 25일 제주 평화나비 콘서트에서 한일위안부 합의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진정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알량한 10억 엔의 돈이 아닌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원한다는 강렬한 목소리가 담겼다.

 

 오는 510일 탄생할 차기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해야 마땅하다. 차기 정권으로서는 이미 합의한 걸 되돌리려면 외교적 난관이 없지 않겠지만, 피해자도, 국민도 원하지 않는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는 없는 게 낫다. 정부 차원의 백서를 당초 계획대로 만들고 일본이 재협상에 불응하면 유엔을 비롯해 전 세계인을 상대로 홍보·외교전을 펼쳐나가는 길을 선택하는 게 옳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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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