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에서 가장 처연한 장면은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면서 굴욕적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올리는 순간보다 막다른 상황에 처해서도 신하들을 거느리고 명나라 수도 북경을 향해 절을 올리는 ‘망궐례’(望闕禮)가 아닌가 싶다. 명나라 누구 하나 그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음에도 그랬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망궐례 격식을 둘러싸고 신료들이 난상토론을 벌인 뒤 임금과 소현세자 부자가 예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황제 생일과 설날 같은 때 행하는 망궐례는 뼛속 깊은 모화(慕華)사상과 사대주의를 표징한다. 임진왜란으로 망할 뻔한 나라를 명나라가 구원군을 보내 살려준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듬뿍 담겼다. 청나라가 침략한 병자호란 때는 명나라가 조선을 구해주기는커녕 제 코가 석자인 처지였던 건 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다.

 

  임진왜란을 당한 선조는 ‘재조지은’을 잊지 못해 죽을 때까지 명나라가 있는 서쪽을 등지고 앉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의 눈으로 보면 어이없는 삽화다. 선조는 이순신과 의병들의 활약은 무시한 채 명나라에만 모든 공을 돌린 한심한 임금이었다.


 ‘인조반정’을 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광해군이 배은망덕하여 천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랑캐(후금·청)에게 성의를 베풀어 조선을 오랑캐와 짐승의 나라로 만들었다’는 죄목이었으니 극단적인 숭명반청(崇明反淸)은 예정된 수순이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허무한 일이지만, 쿠데타로 쫓겨난 광해군이 그대로 있었다면 최소한 정묘호란·병자호란은 피했을지 모른다.

                                                                  

 

  광해군도 자주국방 능력은 갖추지 못했으나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고, 나라의 존립을 위해 떠오르는 강대국에 적대적인 외교를 펼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조 당시에도 뜻있는 신료들은 명에 대한 과잉 충성과 사대적 의리 때문에 조선이 참담한 지경으로 내몰렸다고 인식했다. 사실 왕과 볼모로 잡혀간 왕족, 신하들이야 수치심만 참으면 됐을지 모르지만, 죄 없이 끌려간 50만 명에 이르는 부녀자와 민간 백성들이 당한 참상은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이처럼 교훈적인 영화 ‘남한산성’을 한가위 연휴 동안 앞 다퉈 관람한 정치인들의 촌평은 대부분 본질을 짚기보다 곁가지 만지기나 ‘제 논에 물대기’에 가깝다. 보수진영 정치인들은 주로 무능한 인조 임금에만 초점을 맞췄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문제 대응 자세를 빗대려는 목적에서다. 제1야당 대표와  한 국회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명길로 대표되는 주화파와 김상헌이 대표주자로 등장하는 척화파 모두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었을 뿐이라는 평가는 몰역사적 인식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인조와 ‘숭명반청’에 모든 걸 바친 이들이 내재적 시각에서는 충신일지 모르나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한 책임을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인조와 쿠데타로 당권을 잡은 서인들은 정권안보에만 급급했을 뿐 국가안보와 백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외교적 지혜에 방점을 찍은 서울시장의 시각도 일부는 맞지만, 나라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주국방력 부재를 빠트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 바른정당 의원이 그나마 가장 근접한 교훈을 거론했다. 그는 (남한산성)굴욕의 가장 큰 원인으로 총체적 국력과 국방력, 정보부재에 따른 정세판단의 무능을 꼽았다. 촌평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펼칠 수 없었던 원천적 한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외교노선과 정책은 오늘날 더욱 유효한 반면교사다.


 자주국방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한결 한심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독자적인 방위력을 토대로 한 전시작전권 환수를 강조하자 보수진영이 벌떼처럼 달려든 것은 남한산성의 교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이다. 내일, 아니 내년에 당장 하자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제1야당 대표가 전시작전권 환수계획을 마치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한미동맹을 파기하려는 음모로 매도하고 ‘코미디’로 치부하는 것은 침소봉대이자 견강부회다.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대한민국의 작전권 이양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형태로 주권을 양보한 사례다.” 자주국방과 전시작전권 환수는 보수진영이 더 큰 목소리를 내야하는 덕목임을 ‘남한산성의 굴욕’이 증언하고 있다. 자주국방능력은 단지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농단과 위협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수단이기도 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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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지도를 보면 대부분의 국경선이 곡선이지만 아프리카는 자로 잰 듯한 직선으로 된 곳이 유독 많다. 국경선이이야말로 산과 강 같은 자연 요인, 종족, 전쟁, 문화의 상호작용으로 말미암아 곡선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직선 국경을 지닌 까닭은 강대국의 농간 때문이다.


 아프리카 국경선을 그은 이들은 아프리카라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유럽 관료들이었다. 유럽 강대국들은 19세기 말 아프리카의 영유권을 다투었다. 이로 인해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한 관련국들은 1884년 베를린에 모여 아프리카 땅을 피자 자르듯 나눠 가졌다. ‘베를린 의정서’가 그 결과물이다. 베를린 회의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열세 나라, 미국과 오스만튀르크 등 모두 15개국이 참석했다.


 마음대로 그은 국경 지도를 갖고 아프리카 내륙을 일제히 침공한 뒤에야 경계가 지리적으로나 경제적, 민족적 실상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분쟁이 다시 불거지는 걸 바라지 않았던 침략자들이 합의를 그대로 밀고 나가 오늘날의 국경으로 남게 됐다. 서로 다른 부족이 한 국가로 묶이고 여러 나라로 나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잔혹한 내전이 그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지역도 그리 다르지 않다. 오늘날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은 영국과 프랑스 외교관들이 1918년 지리, 역사, 경제를 무시한 채 모래 위에 마음대로 그어놓은 국경선의 산물이다. 이들은 당시 쿠르드인, 바그다드 사람, 바스라 사람들은 모두 이라크 국민이 된다고 막무가내로 정했다.

 

  원래 한 나라였던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은 프랑스가 갈라놓았다. 누가 레바논 국민이 될 것인지, 누가 시리아인·요르단인이 될지를 결정한 것은 프랑스 외교관들이었다. 지정학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분할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은 그렇게 유럽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오늘(25일) 이라크의 쿠르드족 자치정부가 강대국과 주변 관련 국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강행하는 것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하겠다.” ‘쿠르디스탄’이라고 불릴 최초의 민족국가를 세우려는 이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이라크 정부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주민투표를 연기하라고 다그쳤지만, 이들은 자유를 위한 어떠한 대가도 치를 준비가 돼 있음을 천명했다. 독립을 반대하는 쪽과 진지하게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채비도 갖추었다는 신호등 또한 켰다. 쿠르드족은 최근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전쟁에 참여해 일등공신으로 기여하면서 명분을 쌓았다.


 약 3700만 명이 이라크 외에 터키, 이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독립국가가 없는 세계 최대의 민족이다. 쿠르드족의 비극은 1920년 체결된 세브르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오토만 제국이 붕괴한 뒤 서방 전승국들은 세브르조약을 통해 쿠르드족 독립국가 창설을 약속했다.

 

  그렇지만 터키의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세브르조약이 체결될 당시 이미 이 조건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약을 재협상하는 과정에서 이 약속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1923년 세브르조약 후속으로 체결된 로잔조약에 따라 처음 약속은 효력을 잃고 말았다. 

                                                                               


 그 뒤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쿠르드족의 끊임없는 투쟁이 이어졌지만, 가혹한 탄압만 받아왔다. 비극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쿠르드 독립국가 건설은 중동 전체와 맞물려 있는 핵폭탄의 하나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와 수자원이 대부분 이들 거주지에 분포해 이해관계가 한결 첨예하다.


 최종 투표결과가 무난히 찬성으로 나오더라도 쿠르드족이 수세기에 걸쳐 숙원한 꿈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중앙정부가 반대하는 데다 이라크의 분리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하는 미국까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쿠르디스탄’ 국가 독립을 지원하기는커녕 방해만하고 있다. IS 격퇴를 위해서는 쿠르드족을 철저히 이용하면서 말이다. 쿠르드족의 눈물겨운 분투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져야 마땅하다. 우리 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이 남북한을 분할해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국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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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설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문구는 나를 믿어주세요(Believe me!)”.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00일 동안 스물여섯번이나 이 말을 썼다는 언어학 교수의 집계와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도 궁지에 몰릴 때마다 날 믿어주세요를 연발했다.

 

 믿어 달라는 말은 거짓말하는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오죽하면 권위를 가장 인정받는 뉴욕 타임스가 트럼프가 입만 열면 거짓말한다며 그의 거짓말 목록을 공개했을까 싶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가 취임 첫날부터 154일 동안 거짓말을 한 날이 무려 114일이라는 증거를 내놓았다.

 

   트럼프가 거짓말을 하지 않은 날은 주특기인 트위터 글쓰기를 하지 않거나, 본인 소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며 골프를 친 날이 대부분이었다. 참다못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정직하지 않은 우리 대통령이라는 주제의 사설을 4일 연속 내보냈다. 언론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일들이다.

                                                                             

 

 그런 트럼프는 지구온난화가 거짓말이고 사기극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지구온난화 주장을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려는 중국의 사기극으로 몰고 간다.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이 1위 나라인 중국을 물고 들어가는 게 어불성설임에도 그렇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을 그대로 이행하면 미국 석탄 산업이 붕괴해 3조 달러의 경제적 손실, 650만 명의 일자리 상실, 가구 당 7000달러의 소득저하가 불가피하다는 게 트럼프의 우격다짐이다.

 

 트럼프가 끔찍이 싫어하는 단어도 기후변화. 미국 연방정부가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급하면서 연구과제명에서 기후변화라는 말을 빼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트럼프 때문이다. 지난 61일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할 때까지 트럼프는 기후변화에 부정적인 트위터 글을 115번이나 썼다.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초대형 허리케인 하비어마는 트럼프를 겨냥한 자연의 경고장이나 다름없다. 지난 825일 미국 텍사스 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로 인한 물난리는 1000년만의 대홍수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역대 허리케인 피해 가운데 가장 큰 경제적 손실인 100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세계에서 기록적인 경제 피해를 낳은 재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셈이다.

                                                                                    

 허리케인 하비의 피해 복구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대서양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중 가장 강력한 어마가 아름다운 카리브 해 섬나라들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관광 천국으로 불리는 생 바르, 생 마르탱, 앵귈라, 버진 아일랜드, 쿠바 등은 단숨에 생지옥으로 변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속속 전해진다. 섬의 95퍼센트가 파괴된 생 마르탱은 5성급 리조트가 즐비하고 트럼프 소유 저택도 있다고 한다.

 

  주민 630만 명이 긴급 대피한 미국 플로리다 주의 피해상황은 아직 점칠 수 없는 단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마의 뒤를 잇는 허리케인 호세도 강풍을 동반한 열대성 저기압이어서 자연의 분노는 사그라질 줄 모른다. 올 여름에도 지구온난화의 피해는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전역에 걸쳐 속출했다.

 

 허리케인이 날이 갈수록 위협적인 까닭은 지구온난화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아 올해의 허리케인들이 최소 30퍼센트 더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멕시코 만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1.4~5도 더 높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부인하고 있지만 기온은 계속 오르고 빙하는 끊임없이 녹아내린다. 21세기 후반이 되면 허리케인 바람세기의 증가 속도가 지금보다 10~20배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까지 발표됐다.

 

 이러고도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를 거짓말이라고 강변할까? 트럼프에게 조롱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내용의 글들이 인터넷에 홍수처럼 쏟아진다. 트럼프가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를 선언한 데 그치지 않고, 관련 연구 예산까지 삭감한 걸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지적을 과학적 근거가 없는 거짓말로 치부하고,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한다는 트럼프야말로 지구촌의 주적처럼 됐다. 허리케인 하비어마재해가 기후변화를 믿지 않고 악용하는 정치지도자와 다시 맞서 싸우는 전환점이 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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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동설을 가르쳤던 하나님과 지동설을 믿게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은 다른 분일까? 지동설을 주창한 과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교회가 천동설을 믿은 근거는 신이 인간을 중심으로 우주를 창조했다는 하나님 말씀을 기록한 성서였다.

 

  우주를 창조했다고 확신하는 종교는 창조주의 무오류를 전제로 한다. 신은 오류가 없어야 하는데 왜 이런 우주의 모순이 일어났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1992년 10월31일 로마교황청이 1633년의 갈릴레이 종교재판에 대해 과오를 인정했을 뿐이다.


 가치중립적인 과학과 신념에 바탕을 둔 종교의 충돌은 진화론과 창조론에서 절정에 달한다. 양보할 수 없는 존립 근거가 달린 문제여서다. 진화론의 탄생은 인류를 뒤흔든 혁명이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 영역보다 사회 전반에 더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신이 창조했다는 인류(호모사피엔스)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제 신이 되려고 할 정도다.(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과학은 진화론을 신봉하지만 특정 종교는 여전히 창조론을 확신한다.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우려를 낳는 것은 그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글과 강연으로 창조과학의 전도사 역할을 한 탓이다. 청와대는 후보자의 한국창조과학회 활동을 신앙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연구 관련 주무부처가 아니어서 창조과학회 이력은 상관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그동안 박 후보자가 펼친 창조과학 활동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실제로 바이오업계는 박성진 후보자 지명 소식에 걱정이 적지 않다고 한다. 벤처기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분야가 바이오 쪽이어서다.


 박성진 후보자가 2007년 창조과학 학술대회에서 한 말은 과학과 종교의 충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 이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교육, 연구, 언론, 법률, 기업, 행정,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1세대 창조과학자들의 뒤를 이을 젊은 다음 세대들의 대대적인 양육이 필요하다.”

                                                                       

 

   창조과학회 이사직을 사퇴하고, 홈페이지의 글을 삭제했다고 그의 생각이 달라질까. 프란치스코 교황조차 2014년 교황청 과학위원회 검토를 거쳐 진화론과 빅뱅이론이 가톨릭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국에서는 공직자의 신념이 직업윤리보다 우선이었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증언이 숱하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2014년 ‘상상, 현실이 되다’는 책을 창조과학론자로 분류되는 인물과 공동으로 펴낸 사실 때문에 창조과학 신봉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장관으로서 답변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답변해 구설에 올랐다. 사실 유 장관은 창조론에 대한 생각보다 과학기술과 무관한 그의 경력이 더 많은 지적을 받았다. 대기업 임원, 전경련 교육원 교수, 국회의원 낙선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산업계 인사여서다.


 전대미문의 과학사기사건인 ‘황우석 사태’의 공범격인 인물인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과학기술혁신본부 초대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나흘 만에 사퇴한 일은 새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다시 보게 된 소동이었다.

                                                                                     


 조금 넓혀보면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인선도 과학에 대한 인식 결여가 드러난다. 류 처장은 살충제 달걀 파동에 이어 터진 생리대 부작용, 유럽산 간염 소시지 파문에 대한 수습도 허둥대고 있다. 그는 약국을 운영해 본 게 전부일 뿐 아무런 행정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 조직 운영의 기본 상식이 없어 거대한 국가 조직의 수장으로는 부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처음부터 뒤따랐다. 고위공직자의 책임감도 찾아볼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윤진숙 해양부산부 장관’에 비견되는 오명을 떨쳐버리지 못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초기에 감동을 준 인사와 달리 과학기술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생각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수준의 인사가 이뤄진 것은 안타까운 일다. 해당 분야의 수장들은 한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야 할 선봉장이다. ‘명견만리’(明見萬里)라는 책을 온 국민에게 추천할 정도인 대통령의 인식에 참모진이 제대로 보좌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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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 홀딩스 회장은 한국 젊은이들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투자를 하려면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미래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방한한 그가 그래서 찾은 곳이 한국에서 청년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는 노량진이었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한국 청년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은 로저스는 깜짝 놀랐다. 젊은이들이 바라는 직업 1위가 공무원이어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도전정신이 사라진 한국에서 더 이상 투자 매력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두 차례 세계 일주를 한 로저스는 한국처럼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나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통계청이 2016년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청년층 취업시험 준비생 가운데 40%가 공무원시험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수치는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가장 높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고교생의 장래희망 1위도 공무원, 2위가 건물주라는 점이다. 이런데도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더불어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로저스가 보는 한국의 장래가 밝다면 외려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젊은이가 공무원이나 대기업만 좇으면 5년 이내에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기간 노량진 고시촌을 방문해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에게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충원하겠다고 약속해 이곳 분위기는 한층 들떠 있다. “추경 통과됐어요. 이번에 모두 파이팅 합시다.” 국회가 추가경정 예산안을 통과시킨 지난달 22일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공무원시험 합격률이 1.8%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 정부의 졸속 교사 수급정책으로 초등교사 임용대란이 심각하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초등교사 선발인원을 최대 90%가량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2018학년도 공립학교 교사 선발계획’을 보면, 올해 초등교사 선발인원은 지난해에 비해 43% 줄었다.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초등교사 선발인원을 대폭 늘린 업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발간한 ‘대학 전공계열별 인력수급 전망 보고서’는 교육계열 인력이 2025년까지 17만4000명이나 초과 공급될 것으로 내다본다.

                                                                                    


 자연계 우수학생들의 의대 쏠림현상과 더불어 의사인력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도 내부자들이 공식적으로 제기할 정도다. 대한의사협회가 2019년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이 축소돼야 한다는 입장을 최근 보건복지부에 정식 요청했다. 한국 인구가 2000년 대비 2014년에 7.3% 늘어났으나, 같은 기간 의사 수는 7만2503명에서 11만2407명으로 55%나 증가해 의사인력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현상은 역대 정부가 정책적 합리성보다 정치적인 의도로 의대 신설을 인가하거나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린 탓이다.


 이와는 달리 공학계열은 2025년까지 7만7000명 정도의 인력부족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국고용정보원이 경보를 발령했다. 가장 심각한 전기전자분야를 포함해 공학계열 전반에서 고급 인력 부족현상이 두드러질 전망이라고 한다. ‘서울대 공대 대신 무조건 의대’란 공식은 너무나 오래된 걱정거리다. 서울대 합격 포기자가 해마다 10% 달하고, 그 가운데 약 40%가 공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학생의 20%가 창업을 검토하고 10% 정도는 실천에 옮기는 반면, 한국 대학생의 3%가 창업을 꿈꾸며 0.1%만 실제로 창업에 도전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격차는 성공확률이 낮은 토양이 주요원인이다. 젊은이들을 나무랄 수 없다. 지난 20년간 억만장자를 분석한 결과, 부의 대물림이 아닌 자수성가형은 미국 71% 일본 81%인데 비해 한국은 26%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가인력구조 재편의 긴요성을 보여주는 지표들은 차고 넘친다. 국가 차원에서 치밀한 전략과 실행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한국의 장래가 밝지 않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야할 때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큰 그림을 세밀하게 그리고, 정치적 고려 없이 실행해 나가야 할 숙제다. 경제계, 대학을 포함한 이익집단의 이기주의와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은 난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지혜롭게 조정하는 게 정치의 본령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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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正義)의 반대말은 의리’라는 한국적 정서가 정치판에서는 한결 도드라진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정치는 의리로 하는 것’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유권자들에게 주입하려 애쓴다. 홍 대표는 지난 주말 “선장의 총애를 받아 일등 항해사에 오른 사람들이 배가 난파할 지경에 이르자 선상반란을 주도하면서 선장 등 뒤에 칼을 꽂고 자기들끼리 구명정을 타고 배를 탈출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을 겨냥해 날린 화살이다. 그는 특히 “TK(대구·경북)민심은 살인범을 용서해도 배신자들은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다”며 지난 대선 때 했던 발언을 거듭했다.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말의 다른 버전이란 느낌을 준다. 사실 이 언명은 박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당부했던 것과 사뭇 모순된다. “공직사회에서 정의의 반대말이 불의가 아니라 의리라고 들었다. 공직에 있다면 국가를 위해서 사사로움은 멀리할 줄 아는 자기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그가 탄핵당한 뒤 구속된 채 재판을 받고 있는 까닭도 정의가 아닌 사사로운 의리를 앞세웠던 탓임을 돌아보면 허탈해지는 대목이다. ‘의리’라는 단어에서 최순실 씨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사람은 의리가 필요해. 내가 지금까지 언니 옆에서 의리를 지키니까 이만큼 받고 있잖아.”

                                                                                 


 박근혜 정권의 적폐로 말미암아 혁신위원회를 두게 된 자유한국당이 혁신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의구심을 물씬 풍겨난다. 홍 대표가 전권을 주기로 약속하고 영입한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탄핵 반대에 앞장섰던 인물인 데다 반혁신적 현재진행형 발언으로 당 안팎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홍 대표의 성향과 의중이 고스란히 반영된 혁신위원장이어서 이런 사태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혁신과정에서 “탄핵에 앞장 선 분들의 잘잘못을 따지겠다”고 선언한 것부터 개혁 역행발언으로 들린다. 홍 대표가 혁신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그는 과거에도 극우성향의 언행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극우사이트인 ‘일베’를 두둔하는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한 적도 있다.


 국회의 합법적 절차와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판단으로 결정된 탄핵을 반헌법적이라고 여기는 인물이 개혁의 칼자루를 쥐었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80퍼센트에 육박하는 탄핵찬성 민의와 언론을 협잡이나 일삼는 집단으로 타매하는 것은 반민주적 발상의 극치다. 혁신의 목적이 외연 확장으로 지지층을 넓히는 것임에도 강성 보수색깔을 덧칠해 지지할 수 있는 사람만 겨냥하겠다고 선언한 것 역시 혁신 의지가 다른 곳에 있음을 시사한다.


 전권을 쥔 혁신위원장이 임명한 10명의 혁신위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박근혜를 옹호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고개가 더욱 갸우뚱해진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했던 변호사와 탄핵 국면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20대 여성 혁신위원이 포함된 것은 귀를 의심케 한다. 20대의 젊은 여성이 혁신위원이라면 미래지향적인 혁신방안을 선도해야겠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자유한국당의 혁신위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를 추구한다고 집약했으나 대다수의 민의와 법치를 부정하는 듯한 모순을 드러냈다. 치열한 자기반성과 냉철한 현실인식이 바탕에 깔려야 혁신이 가능하겠지만 합리적 보수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듯하다.

  정치에서 의리는 유권자들에게 발휘해야 하는 것이지 조폭세계에서나 통용되는 것과는 다르다. 불의를 저지른 인물과의 의리는 그게 곧바로 불의다. 의리는 정의와 결합할 때만 정당성을 지닌다. 겉으로는 혁신을 표방하지만 속내는 혁신과 거리감이 있는 게 ‘홍준표당’이다. 다당체제에서 15퍼센트 정도의 지지층을 견인하는 게 제1야당 지위에 가장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지 않고선 생각할 수 없는 혁신작업이다. 합리적인 보수당을 지향하는 바른정당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좌표설정이 바로 ‘태극기집회’에 있다고 보는 현실적 추론도 여기서 나온다. 


 제1 보수정당의 환골탈태를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국정치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다. 바른 정당과는 부정적인 의미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혁신에 소극적인 ‘홍준표당’의 지향점이 그래서 의뭉스럽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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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다수 한국 정치인들이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자주 쓰는 말이 ‘금도’(襟度)다. “금도를 넘었다” “금도를 벗어났다” “금도가 무너졌다” “금도를 지켜야 한다”와 같은 말이 하루가 멀다고 들려온다. 상대방이 지나친 언행으로 공격 했을 때 주로 동원하는 반박 표현이다. 대통령, 국회의장, 당 대표라고 예외가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지난 주말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다. 이 원내수석은 “정치공세에도 금도가 있는 것이다. 우리 대선후보와 전직 대표인데 그분들이 아무리 비판하고 싶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 것”이라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 취업특혜의혹과 관련한 ‘제보조작’ 파문에 대해 추 대표가 ‘머리자르기’라는 용어로 공격하자 국회 일정 전면 불참선언과 함께 나온 논평이다.


 금도라는 낱말에는 선을 넘는다는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어디에도 없다. 금도(襟度)는 선비의 폭넓은 소맷자락처럼 다른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도량이어서 ‘보여주거나’ ‘발휘해야할’ 성향의 언어일 뿐이다. 

                                                                                     


 금도가 진정으로 머물러야할 곳은 강하거나 칼자루를 쥔 쪽이다. 지금의 정치상황이라면 집권여당과 청와대다. 취임 2개월째 80%를 넘나드는 대통령의 지지율과 50%를 넘는 여당의 지지율은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이다. 검찰수사와는 별개로 국민의당 제보 조작파문과 관련해 추 대표가 ‘머리 자르기’ 발언에 이어 연일 강성으로 대응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보기 어렵다. 전형적인 ‘금도 빈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에 갇혀 있는 상대당이 스스로 석고대죄하도록 만드는 게 더 지혜롭다. 정치게임으로만 보더라도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은 가산점이 될 수 없다. 낯을 들지 못해야할 정당이 ‘국민의당 죽이기’, ‘패자에 대한 정치보복’이란 거친 언사로 반격을 가해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서다.


 집권당 대표의 언행은 사소한 것에도 남다른 무게가 실린다. 그렇지 않아도 집권여당은 다수인 야당을 설득해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과 정부조직개편안 같은 발등의 현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할 중책을 지녔다. 화급한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와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숙제도 상존한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새 정부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뒷말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상식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르는 정치적 묘방이 숨겨져 있는지는 모르겠다. 추 대표는 얼마 전 ‘5행시 이벤트’로 전당대회를 앞둔 자유한국당에 직접 저격수로 나선 적도 있다. 집권당 대표는 국면을 넓게 보고 정국을 이끌어 갈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바른 길이다. 여소야대인 정치구도에서 금도의 정치 역량은 더욱 절실하고 긴요하다.

                                                                               


 한미 정상회담과 주요20개국(G20)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금도를 발휘할 시점이 도래한 듯하다. 외교 무대의 성공을 바탕 삼아 국내정치를 조속히 안정적으로 다질 필요성이 커졌다. 문 대통령은 송영무 국방부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의 정식 임명이라는 뇌관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해야 한다. 귀국 당일인 10일을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 시한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야3당이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두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여야 관계가 급랭하며 7월 국회운영이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로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란 판단은 성급하다. 외려 임명을 강행해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것보다 작은 아픔을 감수하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청와대는 여론만 보고 가겠다지만 두 후보자에 대해서는 여론조차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문제의 인사들이 개혁 과제 수행의 적임자로 흔쾌히 인정받기 어려워서다. 개혁에 방점을 두고 있는 정의당마저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지지층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야당을 좀 더 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적지 않다.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새로운 조타수가 필요하다는 여론에도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금도 정치는 칼날이 아닌 칼자루를 쥔 쪽의 덕목이다. 작은 것을 얻기 위해 큰 것을 놓치면 좋은 정치가 아니다. 높은 지지율의 대통령이 금도의 정치가 필요할 때는 통 큰 리더십을 보여주는 게 국민은 물론 자신에게도 바람직할 것 같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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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섬나라 일본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 교수가 이 조어를 창안한 것은 10년 전 일이다. 나쓰노 교수는 대륙에서 1000㎞나 떨어진 섬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고유한 생태계를 형성했지만, 외부종이 유입되자 면역력 약한 고유종들이 멸종 위기를 맞은 갈라파고스 섬들의 상황에 빗대어 이처럼 명명했다.

 

   휴대전화 인터넷망 아이모드(I-mode)의 개발자이기도 한 그는 소니, 파나소닉 같은 일본의 초일류 IT기업들이 세계 표준을 무시한 채 내수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고집한 게 갈라파고스 현상을 자초했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면서 인기몰이를 하던 일본이 고립을 초래해 쇠락의 길을 걸은 것은 더욱 역설적이다. 일본 기업들이 도전보다 안주를 택했기 때문이다. 나쓰노는 이를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지부조화는 명백한 판단 착오였음에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끝까지 믿으려하는 심리현상이다.

                                                                                    


 오는 7월3일 전당대회를 계기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자유한국당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져 있는 듯하다. 소속 정당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곧이어 치러진 대선에서 참패한 한국당은 혁신은커녕 진화를 멈춘 섬처럼 보인다.

 

  세상이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한국당의 시계는 여전히 2016년 가을에 머물러 있다. 어리석은 선택임에도 끝까지 자신이 옳았다고 믿는 인지부조화 현상도 일본 IT기업들과 흡사하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며 자기들끼리 권력싸움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세상의 흐름과 동떨어져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자기반성과 혁신 없이 강한 야당만 추구하다보니 무리수가 등장한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너나없이 좌충우돌 막말을 쏟아내 한국당 혐오증을 가중시킨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권을 다 잡은 것처럼 보이는 홍준표 대표 후보가 ‘아무말대잔치’의 선두주자다. 홍 후보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 막말의 극치를 과시했다. 그의 막말은 전통적인 보수성향의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리게 한다는 비판이 많다. 홍 후보는 “중도층이나 외연 확장 같은 말은 학자들이나 하는 소리”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국당은 국회 107석을 보유한 제1야당의 존재감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과시하고 있다. 인사 문제를 빌미로 한국당은 뭐든지 퇴짜 놓는 당 같은 모습이다. 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예방을 저지하고, 청와대가 주도하는 여야정 협의체 참여를 거부했다. 문재인 대통령 초청 국회 상임위원장 오찬에도 불참했다. 국회의장과 원내 대표의 주례 회동에도 연속으로 불참했다. 한국당의 의도는 제1야당의 선명성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기세를 초반에 꺾겠다는 심산에서 나온 것 같다.

                                                                                      

      
 문재인 정부를 주사파(主思派) 정권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극우정당의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증좌의 하나다. 종북이라는 공격만하면 지지율이 저절로 올라갈 거라는 오판이 확장성은커녕 운신의 폭을 점점 좁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 낡은 습성이다.

 

   대구·경북 유권자와 60대 이상 노령지지층에 매달려 있는 것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부추긴다. 벌써부터 홍 후보가 당권을 쥐고 그의 막말로 당이 운용되면 젊은 층의 외면과 ‘대구경북당’이란 낙인찍기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당내에서도 나온다. 친박계는 당을 쇄신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고, 홍 후보는 당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들려온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머지않아 자책골로 지지도가 추락하고 자신들의 지지도는 자동적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공식을 믿는 듯하다. 과거 정권들의 선례에 비춰볼 때 결국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거대한 착각이다.


 자기성찰도 없이 야당의 존재감만 찾으려 드니 정당 지지율은 대선후보의 지지율 24%에 턱없이 못 미치는 한자리 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같은 다른 야당과 거의 동률이나 다름없다. 실력에 비해 몸집이 너무 크다는 힐난도 그래서 나온다.


 사실 당내에서도 7·3 전당대회 결과보다 앞날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는 얘기가 많다. 당 대표가 누가 되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치열한 혁신을 통해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앞날은 밝지 않을 게다. 일본기업들은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오픈 플랫폼 전략으로 돌파하면서 지난날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집념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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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작용에는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뉴턴의 운동 법칙은 정치에 적용해도 유효할 때가 많다. 개혁에 대한 반개혁세력의 반격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속도를 내자 보수 야당의 반발도 흡사하다.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논리가 뒤따른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처럼 적폐청산이라고 쓰고 정치보복이라고 읽는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정원 7대 정치개입사건’ 재조사에 들어가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한풀이식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한다. 이 중에는 검찰 조사가 이미 끝난 사건도 있고, 대부분 정치적으로 이슈화돼 여론으로부터 혹독하게 검증을 받았던 사안들인데 이제 와서 무얼 더 캐내려 하느냐는 부연설명도 곁들인다. 짐짓 국정원 직원들 걱정까지 해준다. “국정원 공무원들은 무슨 죄가 있느냐?” 대부분의 언론기관이 쉬는 토요일임에도 긴급 논평처럼 냈다.


 재조사 사건은 2012년 대선 댓글사건, 북방한계선(NLL) 관련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보수단체 지원 의혹,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박원순 서울시장 사찰 의혹, 불법 해킹 의혹, 최순실 사건 비호 의혹 등 하나같이 중요하고 민감한 이슈다. 이 가운데 댓글 사건은 수사하던 검사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 인사로 쫓겨나기까지 했던 중대 사안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처벌받아야할 불법행위였다.

                                                                               


 일부 야당은 검찰이 다 조사한 사건을 다시 들춘다고 반발하지만, 권력의 주구역할을 한 검찰조사를 믿고 넘어가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정보기관과 정치검찰을 동원해 공작정치를 일삼았던 박근혜 정권 사람들이 적폐청산을 통해 탈정치권력기관으로 바로 세우겠다는 새 정부를 보고 정치보복이라니 적반하장이다.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 등 속칭 ‘사자방’은 복마전으로 불릴 정도였다. 정권 차원의 적폐 상징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뿌리의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보수야당의 반발과 달리 국민여론조사에서는 4대강 사업 재조사 찬성의견이 무려 78.7%다.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 바른정당의 지지자 71%도 ‘재조사 찬성’이다.

 

  대다수 국민은 적폐청산대상으로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 인사들과 보수야당은 심각한 녹조현상과 가뭄 대책에 관해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호도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세월호 엄정 수사,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정윤회 문건 재조사 같은 적폐청산 작업도 이뤄졌거나 진행 중이다. 
                                                                                    

 

 적폐청산 전반에 관한 여론도 매우 호의적인 건 마찬가지다. 지난 주말 발표된 한국일보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노력에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78%로 집계됐다. 적폐청산에 대한 압도적인 긍정 평가는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국민적 열망의 연장선으로 봐도 무방하다. 시대가 변한 지금 정치보복이란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증거다.  


 당내 갈등 치유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전선구축을 목표로 삼은 한국당은 새 정부의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치환해 개혁법안이나 정책마다 반대에 나설 개연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정치보복이란 말은 잘못한 게 그리 없는데도 정치적 탄압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독재정권과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야당이 ‘정치보복’이란 말만해도 동정표를 얻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격변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밝혔듯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사람을 겨냥한 정치보복이 아니라 시스템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시스템 구축하는 일은 적폐청산의 성공여부에 달렸다. 박근혜 정권이 내걸었던 모순적인 ‘비정상의 정상화’는 새 정부에서 적폐청산을 거쳐 비로소 정상궤도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적폐청산에 매달리면 협치는 물거품이라는 주장은 협박성 언어에 가깝다. 협치 거부를 위한 명분쌓기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적폐청산은 곧 정치보복이라는 등식이 여전히 통용된다는 생각도 이젠 청산 대상의 하나다. 적폐청산 없이 제대로 된 개혁은 불가능하다. 적폐청산 없이 밝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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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인물은 단연 전임자이지만,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정치적 상황과 성향 등에서 카터 전 대통령과 공통점이 많다. 문 대통령의 집권은 카터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탄핵 절차 도중 사임한 다음 선거에서 이겨 정권교체를 이룬 상황과 흡사하다.


 보수 정권의 부도덕성과, 기득권에 매몰된 워싱턴 정가의 주류세력에 진절머리가 난 미국 유권자들은 정직과 도덕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건 조지아의 땅콩농장주 카터에게 환호했다. 그러자 카터는 자존심에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도덕성을 넘어 때로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정도였다. 카터는 외교정책에서도 인권과 도덕성을 앞세웠다.

 

  그는 저서 ‘예수님이 대통령이라면’에서 대통령이 정직하고 인격적일 때 진정한 세계 평화의 리더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항상 웃는 얼굴로 푸근한 이미지를 심어준 카터는 웃을 때 치아를 몇 개 드러내느냐에도 신경을 쓴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는 20세기의 가장 실패한 미국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아이러니와 마주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가장 인기 없고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혔다. 오일 쇼크로 치명타를 입은 경제난, 11%까지 치솟은 실업률이 재선 실패를 불러왔다. 석유파동에 직면하자 국민은 손쉬운 방책을 원했지만, 카터는 정직한 해결책을 바라는 것으로 착각했다. 20세기 미국 대통령 가운데 카터를 포함해 재선에 실패한 3명이 모두 경제난에 발목이 잡혔다는 사실은 많은 걸 시사한다.

 게다가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 외교에 매달리다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유약한 대처,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 구출 실패 등을 초래해 세계 최강국의 체면을 구겨버렸다. 그에겐 쓸데없이 작은 일에 매달리는 ‘마이크로매니저’라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미국민들은 지적이면서 청교도 정신까지 갖춘 카터를 지겨워했다. 경제가 엉망인 상황에서 국민을 자꾸만 가르치려 들었기 때문이다. 카터는 재선에 실패한 뒤 1982년 펴낸 회고록에서도 ‘미국은 도덕과 자유, 민주주의를 선명하게 하는 외교정책을 추진할 때 가장 강하고 실행력이 있다’고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카터의 임기 말 지지율은 13%로, 닉슨이 쫓겨날 당시 지지율 24%보다 낮았다. 지금이야 ‘카터보다 훌륭한 전임 대통령은 없다’고 박수를 받지만 ‘대통령을 하지 않고 퇴임 대통령으로만 남았더라면 더 존경 받았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따뜻한 인성과 겸손한 성품을 갖춘 문 대통령은 취임 초반부터 소탈하고, 가식이나 권위의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국정의 큰 그림을 잘 그려나가 갈채를 받고 있다. “너무 잘해서 무섭다”는 한 야당 의원의 평가는 상징성 있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카터를 반면교사로 상정해 놓으면 더욱 좋을 듯하다. 의외로 과감한 결단력이 있다는 지지자들의 목소리도 응원가가 될법하다.

 

  심리학자들이 지적해 온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떨쳐버려야 성공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대통령이 사랑과 존경만 받아서는 안 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말도 새겨놓을 만하다.


 국민과의 소통에 역점을 두고 사소해 보이는 문제까지 지혜롭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 초반 분위기를 잘 잡아가고 있음에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도 ‘대통령은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일레인 카마르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의 충고는 경청함직하다. 카마르크는 대통령들이 정책, 커뮤니케이션, 실행력의 세 가지 능력에 조화를 이뤄야 함에도 ‘오늘날에는 소통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미디어 환경을 지나치게 의식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역할 균형을 잃어버렸다는 게 그의 통찰이다. 오늘날 대통령들이 세 가지 가운데 실행력을 심각하게 간과하고 있다는 카마르크의 조언은 명심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대관세찰(大觀細察)하는 실행력의 하나로 일자리창출을 맨 앞자리에 세워 경제 살리기에 모든 정열의 절반 이상을 쏟아 붓는다는 각오로 임하면 길이 보일 게다. 갈급한 서민생활이 나아지지 않으면 적폐청산과 사회개혁도 색이 바래고 만다. 지지 세력의 욕구를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안보와 외교에서 무르다는 평가를 받지 않아야 한다. 문 대통령이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다’는 손가락질만 받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희망가가 들려올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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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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