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루이 16세와 박근혜

 “국민이여, 짐은 죄 없이 죽는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쫓겨난 왕 루이 16세는 콩코드 혁명 광장의 단두대에서 이렇게 외쳤다. 그는 단두대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중얼거렸다. “나의 죄를 조작한 사람들을 용서한다…이 땅에 두 번 다시 무고한 피가 뿌려지지 않도록, 신이여, 돌보아주소서.” 1793년 1월 21일, 오전 10시가 지날 즈음이었다.


 루이 16세는 그에 앞서 1789년 7월14일 아침잠이 채 깨기 전 바스티유 감옥 함락 소식을 전해 듣고선 “폭동인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최측근인 라 로슈푸코 리앙쿠르 공작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폐하! 혁명입니다.” 왕은 어쩔 수 없이 혁명을 받아들였지만, 마음은 ‘구체제’(앙시앵 레짐)에 머물러 있다가 끝내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졌다.

                                                             
 국회로부터 압도적인 탄핵을 당한 박근혜 대통령도 루이 16세의 심사(心思)를 닮은 듯하다.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 직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피눈물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알겠다”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 국무위원은 “(박 대통령이) 주변 관리의 잘못은 있으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라며 본인의 억울한 심경과 더불어 향후 탄핵심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언론에 전했다.

                                                                                 

                                                  <단두대레서 처형되는 루이 16세>


 한동안 보류했던 최재경 민석수석비서관의 사표를 직무정지 직전 수리하고 조대환 변호사를 임명한 것에서도 박 대통령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지만 박 대통령의 마지막 행보는 국민을 참담에 빠지게 한다.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 수석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유족들과 특조 위원들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후벼 팠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 “특조위는 법적 근거가 없다. 해체돼야 한다”면서 특조위 무력화에 앞장서고 갈등을 빚다가 6개월여 만에 사퇴했다.


 조 수석은 타계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의 김기춘 전 비서실장 발언에도 등장한다.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정치지망생을 임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메모 아래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실제로 여당 추천 몫으로 임명됐다. 조 수석이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사법시험 동기라는 점에 곱지 않은 눈길을 주는 사람도 많다. 세 사람 모두 박 대통령이 임명했다는 사실도 공통점이다. 세월호 참사는 탄핵 사유의 하나이자 특별검사의 수사대상이기도 하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후임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 최성규(75) 인천순복음교회 원로목사를 임명한 것도 대통령의 양식을 의심할 정도다. 국론 분열에 앞장선 인물을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국민과의 대결’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최 목사는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아픈 상처만 곱씹어도 안 된다”는 글을 썼는가 하면, 신문 광고를 내 “세월호 침몰로 정치가 멈추고,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며 조기매듭을 주장했다.

                                                                      

  최 목사는 5·16 쿠데타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고 역사적 필연’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임명은 보은적 성격 외에도 보수적인 교계의 결집을 이끌어내기 위한 저의가 담겼다. 박 대통령은 탄핵 국면에서 인권 분야 경력이 전혀 없는 차관급 인권위원을 임명해 ‘인권적·민주적·법적 정당성’ 어느 것 하나도 갖추지 못한 인사라는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내내 부적절했던 인사는 대통령 탄핵 사유의 하나에 포함됐다.


 친일·독재·박정희 미화 논란을 불러일으킨 국정 역사교과서를 포기하지 않고 강행하려는 의도 역시 박 대통령의 뜻을 받든 청와대가 교육부를 다그쳤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것도 보수재결집을 노린 불순한 생각에서 나왔음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행태는 ‘늑대는 이빨을 잃어도 천성을 잃지 않는다’는 서양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이 루이 16세를 단죄했듯이, 촛불혁명은 박 대통령의 반동을 물리치고 앙시앵레짐을 타파하고 말 것이다. 구체제 청산은 탄핵과 더불어 이미 시작됐다. 탄핵 가결 이후에도 꺼질 줄 모르는 촛불은 ‘탄핵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웅변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12월 12일자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