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친박 보수의 유일한 무기 ‘종북’

 노란색을 보면 가슴이 뛰는가→‘예’→종북!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가→‘아니요’→종북! 촛불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는가→‘예’→종북! 고위공직자는 병역을 필해야 하는가→‘예’→종북! 최저임금은 인상되어야 하는가→‘예’→종북! 국정원은 개혁되어야 하는가→‘예’→종북!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일은 민주항쟁인가→‘예’→종북! 친일파는 척결되었어야 하는가→‘예’→종북!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가→‘예’→종북! 이승만은 독재자인가→‘예’→종북!


 박근혜 정부 초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 ‘종북 자가진단표’(종북 셀프테스트)의 일부다. 한 누리꾼이 만든 풍자물이었지만,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 무조건 종북 딱지를 붙여 공격하는 정치권과 광신적 지지자들의 비열한 술수를 비튼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이후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 ‘종북’이란 말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홍수처럼 쏟아졌다. 한 통계를 보면 절감할 수밖에 없다. 포털 뉴스 검색 결과, 종북이라는 낱말을 포함한 기사는 2007년 44건, 2008년 803건에서 2012년 1만6811건, 2013년 2만4601건, 2014년 6만8833건으로 급증 추세를 보였다. 2014년은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해다. 2015년과 지난해의 통계는 없지만, 폭증했을 개연성이 높다.

                                                                                 


 ‘친박’(친박근혜)일수록 종북을 공격무기로 삼는 걸 자랑거리로 여기는 이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이 ‘친박 8적’에 포함되자 퇴진반대 집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 자나 깨나 종북척결을 외친 죄 밖에 없다.”

 

  김진태 의원은 지난 주말 ‘태극기 집회’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종북 좌파까지 국비 지원을 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몰아갔다.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 같은 친박 정치인도 “촛불집회는 좌파 종북 세력의 조직적 선동”이라고 음해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는 무기로 종북 낙인이 효용가치가 크다고 여기는 건지 탄핵심판 변호인들이 연신 무리수를 두는 모습도 볼썽사납다. 서석구 대통령 변호인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서 가짜 노동신문을 근거로 촛불집회를 종북으로 매도했다. 서 변호인은 방송에 출연해 “김정은이가 촛불집회를 횃불집회로 만들려고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종북 낙인의 최대 피해자 가운데 하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다. 권력의 사주로 동원된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 등에게 온갖 수모를 당한 배후의 실상이 특검수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비판해도 종북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극우보수주의자들은 조작해서라도 간첩으로 몰아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서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북’을 만능무기로 삼다보니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자승자박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시절인 2005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읍소 편지가 자신들의 카페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름으로 올라오자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 종북·빨갱이로 몰았다. 이후 편지를 보낸 사람이 ‘박근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머쓱해 게시글을 삭제하는 해프닝을 낳았다.

  친박 보수진영은 종북 혐의를 무리하게 덧씌워 소송에서 패소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교조를 종북이나 북한 찬양 단체로 몰아온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연이어 패소하는 상황이다. 친박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도 “종북 지자체장을 퇴출해야 한다”고 비난했다가 배상 판결을 받았다.


 종북 낙인찍기는 모든 문제를 기승전안보 프레임으로 만든다. 2012년 대선 때 국정원은 무수한 댓글작업에서 정권 반대세력을 종북이라고 규정해 논란을 빚었다. 종북이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는 전가의 보도로 악용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일이었다. 종북만능주의적 사고는 국민대통합과 조화로운 민주공동체의 적이다. ‘이게 나라냐’는 한탄이 나오는 것은 종북이 아니라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라고 믿는 ‘종박’세력들 때문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