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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부패한 정치인, 발효한 정치인

 3년 전쯤 한국인 10명 가운데 6명은 ‘만성적 울분’ 상태라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가 ‘부도덕·부패한 정치’ 때문이라는 게 더 흥미롭다. ‘정치인의 부도덕·부패’가 차지하는 울분 순위는 해가 갈수록 높아졌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의 조사연구 결과였다. 같은 조사를 지금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 듯하다.


 실제로 올해 초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부패인식도 조사에서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한국 사회가 부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배경에는 역시 정치가 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정치권을 비리의 온상처럼 여긴다. 이런 인식이 2022년 조사 때보다 높아졌다.


 부정부패·비리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전·현직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전직 주요 정당 대표도 두 사람이나 된다. 여야도 가리지 않는다. 물증이 명백해 보이는 혐의를 정치공작으로 돌리는 일이 관행처럼 됐다. 불법과 부정부패 혐의를 받으면서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사람이 더 각광받는 아이러니도 발생한다. 국회가 부패혐의자들의 도피처가 됐다는 냉소가 만연하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 직무정지 조항을 당헌·당규에서 삭제하는 퇴행을 드러냈다. 부정부패 연루자의 자동 직무정지 규정 폐지는 이유가 무엇이든 정당의 공익적 성격을 스스로 부정하는 사례가 되기 쉽다. 깨끗한 정치를 바라는 국민에 대한 배반이다.

                                                                                         


 명품가방을 받은 대통령 배우자에게 반부패·부패방지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기구가 면죄부를 발행하는 바람에 국민의 부아를 돋우었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 제정을 주도한 국민권익위원회가 “직무와 관련이 없는 경우에는 배우자의 금품 등 수수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밝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막기는커녕 되레 촉진하는 정부라는 오명을 썼다. 국민은 부정부패의 처벌을 강화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권익위에 요구한다.


 그러는 사이에 여야 대표 정치인들이 부패정치로 퇴보하는 지구당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 22대 국회 첫날부터 여야 다수당이 나란히 불법 정치자금 조장 논란 때문에 2004년 폐지한 지구당을 20년 만에 부활시키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당 대표 도전에 나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 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 역시 지구당 부활을 다짐했다. 문제의 핵심은 지구당 자체가 아니라 돈으로 치환된다는 데 있다. 지구당이 사라진 까닭은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거액 불법 대선자금 전달 사건)이라는 부정부패 탓이다. 지구당이 폐지된 건 깨끗한 정치를 지향하는 정치개혁 차원이었다.


 지구당을 운영하려면 직원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 같은 돈이 든다. 지역 유지들과 유착해 후원금을 모으고 그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끼어든다.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이 그렇게 터졌다. 당시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자금 규모가 커서 제대로 걸린 것뿐이다. 지구당을 중심으로 횡행하던 구태와 음성적 자금 수수의 망령이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정치인의 부패는 발효와 비교된다. 부패와 발효는 종이 한장 차이다. 부패와 발효는 똑같이 미생물로 말미암아 분해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음식이 썩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부패고, 먹기 좋은 상태로 변하면 발효다. 정치인도 시간이 지나면 발효나 부패 중 하나의 길을 걷기 십상이다.


 부패균은 유기화합물이 자연생태에 있을 때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난다. 발효균은 대개 특정한 환경과 조건이 갖춰지면 생겨난다. 정치인은 정치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패균이 스며들게 하느냐 발효균을 발생시키느냐를 결정한다.


 정치인에게 돈은 생선과 같다고 한다. 가시가 목에 걸리지 않게 잘 발라가며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큰 가시, 거액의 정치자금 수수는 늘 뒤탈이 있다는 메시지다. 정치인에겐 곳곳에 달콤한 유혹이 도사린다. 한 발만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검은손’을 잡는다.


 한국 정치인은 과분할 정도로 후한 대우를 받는다. 그게 아니라도 22대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이 일반 국민의 평균 자산 보유액보다 7.6배 더 많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패와 발효가 같은 경계선에 있듯이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흔히 얘기한다. 자칫하면 교도소 담장 안으로, 운 좋으면 담장 밖으로 떨어진다. 정치인의 부패와 발효는 단순히 돈으로만 판명이 나지 않는다. 도덕적 정신적인 부패와 발효의 갈림길도 중요하다. 썩은 것은 과감히 척결하고, 발효하는 건 더 깊이 품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