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영국 여성이 경험한 북한은 생각보다 다정하고 친절한 곳이었다. 평양 생활은 2년 남짓은 그의 가치관을 크게 바꿔 놓기에 짧지 않았다. 외교관 남편과 함께 평양에서 2년 머물고 영국으로 돌아온 린지 밀러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상 불가능했던 북한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책을 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자유를 당연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곡가이자 음악 감독인 린지 밀러(33·Lindsey Miller)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외교관 배우자와 북한에 머물며 만난 사람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묶어 지난 5월 책으로 펴냈다. 200쪽의 이 책 제목부터 범상하지 않다. <북한,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North Korea: Like Nowhere Else).
북한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는 그곳 사람들이 마치 차가운 로봇 같을 것이라 예상했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더없이 냉담하거나 적대적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평양에서 2년을 살다 돌아온 지금, 그런 생각은 편견이었다고 밀러는 말한다. 그가 만난 북한 주민들은 우호적이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외국인들은 흔히 열병식이나 집단체조, 미사일 같은 선입관을 가지고 북한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도 매우 엄하고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에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주를 귀여워하고,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죠.”
평양 주변은 물론 시골길에서도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가는 군용 트럭 뒤에 빼곡히 앉은 군인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밀러가 본 군인은 딱딱하고 무서운 존재가 아닌 그저 미소를 짓고 인사도 건네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군인이기에 앞서 평범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는 이 사진을 찍은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군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고, 그들 중 한 명은 밀러에게 손 키스를 보냈다.
확실한 변화
밀러는 북한 사회의 획일화된 분위기 속에서 작은 변화를 발견했다. 어느 날 오후, 단속과 제재를 상징하는 로동신문사 앞을 손잡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이 광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책에 담았다. 그뿐 아니라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린 학생들은 미국 디즈니사의 캐릭터들이 그려진 가방을 메고 다니기도 했다.
“미국 문화의 상징인 디즈니 가방을 북한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북한 국영 텔레비전에서도 디즈니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북한 주민들이 그런 것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지 궁금했습니다.”
밀러는 자신이 찍은 수천 장의 사진 중 트럭을 타고 가는 북한 군인들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이 사진에는 그가 북한과 그곳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잘 표현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 군인이라 하면 김정은 정권을 떠올리지만, 밀러가 보고 느낀 그들은 군인이기에 앞서 평범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는 이 사진을 찍은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군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고, 그들 중 한 명은 밀러에게 손 키스를 보냈다. 다들 웃기 시작했다. 밀러도 똑같이 손 키스를 보냈다.
“우리는 북한에 이런 일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복에 너무 집중해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을 잊곤 하죠. 저는 북한에 살면서 그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고, 가족과 그들의 인생은 어떨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주민들과의 접촉
외국인 거주자들은 꽤 자유롭게 평양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쇼핑을 하거나 외식을 하고, 거리에서 마주친 주민들과 비교적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많은 북한 주민들이 기본적인 영어 회화를 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영어를 하려고 먼저 다가오기도 했다. 반면 관광객들과는 달리 외국인 거주자가 지켜야 하는 규칙과 제약도 있었다.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북한 주민의 집 방문도 불가능했다.
북한 주민들과 항상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감시 체계를 많이 경험했다. 길에서 만나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한순간 표정을 바꾸고 갑자기 자리를 뜰 때가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영락없이 양복 입은 남자가 서 있곤 했다. 평양 시내의 상점들 역시 이방인을 선뜻 반기지는 않았다. 가끔 가게안에 여러 손님이 있는데도 밀러가 들어오면“영업이 끝났다”고 하기도 했다.
밀러가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대상은 평양의 젊은 여성이었다. 특히 또래 여성들에게 관심이 갔다. 연애와 결혼, 커리어에 대한 그들의 사고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제가 만난 평양의 젊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보다는 일과 커리어를 더 중시했어요. 제가 결혼을 했는데도 왜 아이가 없을까 매우 궁금해했습니다. 장시간 일하는 게 너무 피곤하다는 얘기를 한 여성도 있었죠. 결혼하기 싫다는 여학생도 있었어요. 물론 평양의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경우들이었죠. 제가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 사회의 상위 권력 계층이었고 외부인들과 접촉도 많이 경험해본 상태였어요.”
그는 외교단지가 있는 평양 동부의 문수동에서 살았다. 각국 대사관, 국제기관, 국제 구호단체들이 있는 지역이다. 규모가 크지 않았고 가끔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위성TV를 볼 수 있었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으나 속도가 아주 느렸다. 외교단지 안에는 외국인 학교도 있지만, 수준이 높지 않아 대부분의 외교관 자녀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었다.
밀러는 북한으로 떠나기 전, 그곳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외화인 달러, 유로, 위안화등을 준비해 오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구겨진 달러는 받지 않았다. 도착 직후 현지인 운전자를 통해 공항 주차장 요금정산소에서 1달러를 줬는데 구겨지고 더럽다며 거절당했다. 평양에선 물건을 산 뒤 거스름돈 대신 껌, 주스 같은 간식거리를 받는 것이 흔한 일이다. 백화점에서는 잔돈을 북한 화폐 원으로 거슬러 주기도 했다. 외국인들은 자동화폐입출금기(ATM)를 사용할 수 없었다. 외화 현금이 동나면 잠시 외국을 다녀오는 지인에게 부탁해 전달받았다. 많은 외국인들이 북중 국경 도시 단둥의 ATM에서 현금을 찾아왔다.
짧지만 강렬한 기억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은 밀러에게 가장 흥미롭고 강렬한 기억을 남겨주었다. 그는 이미 외신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만, 북한 방송은 회담 소식을 하루 늦게 발표했다. 알고 지내던 북한 사람들이 밀러에게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설명해 달라고 했다. 평양 시내에 ‘우리는 하나’라는 슬로건과 함께 김정은과 트럼프의 악수 장면을 담은 대형 사진들이 걸렸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 가요를 듣거나 TV 프로그램을 본다는 소문은 많았지만, 밀러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듣지는 못했다. 북한에서 남한의 콘텐츠를 접하는 것은 최고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행위이다. 북한 사람들은 밀러가 서울에 가봤는지, 서울은 어땠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한 북한 주민은 그가 발리 해변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너무 아름답다며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그들은 영국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봤다. 그러나 성평등이나 동성 결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밀러의 초기 북한 사진에는 건물이 많이 등장한다. 그의 눈에 건축의 외양이나 디자인이 이색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빠르게 사람들로 초점이 바뀌어 자신이 바라보는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창의적인 시각으로 담았다. 간혹 차마 사진에 담지 못한 순간들이 있었고 밀러는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처음엔 책을 출판할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으로 돌아가 사진을 정리하면서 북한에서의 추억이 떠올랐고 자신이 겪은 경험과 감정들을 돌이켜보면서 이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은 연출되지 않은 사진 200장과 16편의 이야기로 엮었다. 북한의 체제나 정치 상황보다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췄다.
<북한,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이라는 제목에는 함의가 많다.
“북한이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간단히 답하긴 정말 어려웠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곳, 제가 경험해 본 모든 장소 중, 이 세상에 북한과 같은 곳은 없거든요. 신분의 외국인들에게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이 확연히 구분돼 있어요. 제 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인 이유입니다.”
밀러는 북한에서 영국으로 돌아간 뒤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이미 북한에 먼저 살아본 경험이 있어 더욱 가슴이 벅찼고, 비무장지대(DMZ)에서 특히 감정이 남달랐다.
“비록 국경은 닫혔지만 북한에 대한 마음까지 닫아서는 안 됩니다. 북한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한 말이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KOREANA 2021년 가을호에 실린 것입니다.
Tales of Two Koreas
2021 AUTUMN
Refocusing with a Wider Lens
Kim Hak-soonJournalist and Visiting Professor,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s, Korea University
A young Briton’s book of candid photographs and short personal essays illuminates her emotional struggles as a foreign resident in North Korea and challenges common perceptions of the North Koreans.
Lindsey Miller arrived in North Korea with rock-bottom expectations. The 2017-2019 posting of her diplomat husband would mean encounters with heartless, robotic people who would openly exhibit hostility, she thought. Still, undaunted, she grabbed her camera and ventured out of the foreign district in eastern Pyongyang.
Being part of the diplomatic community afforded Miller the advantage of not having a minder who might interfere with her photography. Her early photos were mostly of buildings; she thought their exteriors and designs were exotic. But her attention soon shifted to capturing images of everyday people and learning their stories.
Returning home to the UK and resuming her life as a composer and music director, Miller didn’t intend to produce a book. She says that after two years in North Korea, she feels even less knowledgeable about the country than when she first arrived there. But with her photos stoking memories, she felt compelled to share her encounters. The result is “North Korea: Like Nowhere Else,” a compilation of 200 candid photographs and 16 short essays based on her interactions and arc of emotions while in the North.
“North Korea and the experience I had there are so much bigger and more complex than I could have ever imagined, and it can never be summarized in a simple sentence,” she says. “My book conveys an immersive, sensory experience of what day-to-day life was like for me living as a foreigner in North Korea. It explores the complicated, emotional impact my experience had, but most importantly, it shows how I saw the daily lives of the North Korean people.”
One of her favorite photos is of North Korean soldiers on the move in a truck. It reflects the book’s aim of seeing North Korea not only in terms of amilitary state, but as a place where people lead their daily lives with the same joys, familial love and aspirations that can be found anywhere else.
Interactions
“If we spend more time with the men in the photograph, and knowing the context I detail in the caption, how would our perceptions change and what would that say about us?” Miller asks. The soldiers were in their early 20s. They exchanged greetings with Miller, and one blew her a kiss. Everyone laughed and she blew a kiss to him in return.
In general, Miller found North Koreans to be “very friendly, kind and curious.” But moving beyond spontaneous encounters was usually impossible. As a foreign resident, she wasn’t permitted to visit a North Korean’s home without an escort, and like all foreigners, she owned a local mobile phone that didn’t connect to the telecommunications network used by North Koreans.
“Conversations themselves were frustratingly limiting,” Miller says. “Certain topics had to be avoided because of the risk to the person you were speaking to, and to yourself. And so there you were, two people, stuck in the middle of this controlled cage, trying to balance natural curiosity with careful small talk in an effort to actually get to know each other.”
“It was also difficult developing relationships with Koreans as there was never any clear line between authenticity and falseness in social situations. You never knew if the person you were speaking to was genuinely interested or if they had been tasked with an ulterior motive.”
Despite the hurdles, friendships were formed and so were connections, even if fleeting. “I was once invited to have drinks with some North Korean students,” she recalls. “They asked where I was from while drinking heavily and it felt like I could have been anywhere in the world. Music was playing, students all around were drinking and having a great time. After five minutes they said, ‘We can’t chat long because of security, but it was great to meet you.’ It was moments like that which were precious, and I wish I could have gone on for longer.”
These barriers to interactions meant that questions naturally lingered. For example, why were schoolchildren carrying backpacks emblazoned with Disney characters, cultural symbols of North Korea’s so-called “greatest enemy,” the U.S.?
Questions
In 2018, U.S. President Donald Trump’s Singapore summit with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elicited inquiries. Miller had learned about it through international news services, but North Korea’s state media reported it a full day later. Her North Korean acquaintances came and asked questions about what was happening.
“That year brought some much-needed relief, and with the slogan ‘we are one’ being used so frequently, along with seeing Kim Jong-un shaking hands with Donald Trump, it really felt like something had changed, whether that was actually the case or not. My North Korean friends said many times how much lighter they felt,” Miller notes.
Many North Koreans also asked her about British culture but didn’t seem to understand gender equality or same-sex marriage. Questions about South Korea were broached, but they were usually geared toward politics or her personal view of the two Koreas’ future rather than details about life in the South.
Miller’s attention was most drawn to young women in Pyongyang, especially those in their late 20s and early 30s, her own age group. They seemed to value work and their career more than marriage and childbearing. Many asked what it was like to not have children and have a career.
The 2018 North-South pop music concert in Pyongyang was particularly meaningful, given Miller’s career in music. “I felt incredibly privileged to be watching that concert and to see the expressions on the faces of the audience. It was a moving experience as well for many of the performers, some of whom had family from the North now settled in the South. It was an emotional event and one which I will never forget.”
On a more practical note, North Koreans who attended the pop concert were happy that TV broadcasts included the South Korean song lyrics, Miller says. They struggled to hear the words through the rhythms and lyrical patterns in the South Korean pop songs, which are very different from those in North Korean music.
Outside Again
Miller visited South Korea for the first time after returning to the UK from North Korea. “It was so poignant to visit South Korea after having been to North Korea first, and visiting the DMZ from the South after having visited it from the North was very moving and emotional,” she says.
“What North Korea taught me most was the value of compassion and human connection. In such an isolated place, I was so thankful for the cherished friendships I managed to build with a few North Korean individuals,” Miller says. “In the beginning, I never thought those kinds of friendships would be possible, but I was wrong. It wasn’t easy, but it was possible.”
Those friendships now exist in a vacuum. There is no way to stay in touch ? no links through email or telephone ? and even if she knew postal addresses, letters and parcels would undoubtedly be intercepted.
“Once you’ve left, it’s like a lifeline has been severed,” Miller says. “Writing this book probably means I won’t be able to go back. But I would want to be able to look my North Korean friends in the eye and know that I was honest in recounting my experiences and the truth of my time there. That I was honest about the lives of the North Korean people and I didn’t sugarcoat the facts because I wanted to go back someday. If we continue to sugarcoat the facts for our own selfish gains, we’ll never discuss the truth of the situation in North Korea. North Korean people deserve better than that.”
“Perhaps with this human focus, we can inspire change in how we speak about North Korea and consider the 25 million people living there in a more personal, connected way. It starts with us,” Miller adds. A Korean edition of her book is scheduled to be published on September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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