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출신 작가 코이(Koi)는 자신을 드넓은 강물에서 맘껏 헤엄치며 살기 위해 어항을 탈출한 물고기에 비유한다. 흔히 ‘비단 잉어’로 불리는 코이는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밖에 자라지 않는다. 반면, 연못에서 15~25㎝, 강물에서는 90~120㎝까지 너끈히 큰다. 코이라는 예명이 ‘넓고 자유로운’ 남한 땅에서 그가 키워가는 당찬 꿈을 말해준다.
코이는 열여덟 살이던 2008년 12월 홀로 함경북도 청진 고향 집을 떠나 국경을 넘어 중국에 도착했다. 그가 위험한 여정을 택한 것은 앞서 가족과 함께 남한에 와 살고 있던 친한 친구의 강력한 권고 때문이었다. 부모님도 그의 뜻을 꺾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태국을 거쳐 2009년 3월, 꿈에 그리던 남한 땅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겁 없이 넘어왔다고 당시를 돌아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엄두도 못 낼 것 같다며.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코이는 서울에서 미술대학 진학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대안학교인 하늘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입시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에 입학했다. 이 학과의 첫 탈북민 학생이었다.
우연, 또는 인연
입학 후 코이는 탈북청년크리스천연합회에서 미술치료사인 신형미(Shin Hyung-mee 辛亨美) 작가를 만났다. 신 작가는 코이를 처음 만났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2013년 첫 만남에서 코이가 아주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지녔다는 걸 단박에 느꼈죠. 당시 제가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탈북청년들을 위해 지원하는 집단 심리 상담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코이가 저의 개인적인 지도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줄곧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코이는 제가 주는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받으며 끊임없이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남북한 출신 두 작가가 ‘통일’을 주제로 아홉 작품을 선보인 ‘다시, 남향집’은 멘토와 멘티로서 이들이 이어 온 특별한 인연의 결과이자 작가 코이를 알린 첫 전시이기도 했다. 통일부 남북통합문화 콘텐츠 창작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 전시에는 두 작가의 공동 작품 3점과 각기 개인 작품 3점씩이 출품되었다. 회화, 섬유미술, 설치, 물감 프로젝트 등 다채로운 장르를 아우르는 작품들에 탈북민들이 자유와 평화 속에 더 나은 삶을 누리고자 남한으로 찾아 드는 모습을 담았다.‘남향집’은 햇볕이 잘 드는 마음 속의 따뜻한 집을 상징한다.
공동 작품 가운데 하나인 ‘시그마가 품은 한반도 지도’는 수열의 합 시그마(∑ Sigma) 에서 영감을 받아 삼천리 금수강산을 묘사했다. ‘색으로 소통하다’프로젝트에 참여한 59명이 힘을 더한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북한이탈주민 30명과 남한 시민 29명이 각자 생각하는 통일에 대한 이미지를 자기만의 색으로 표현해 물감을 만들었고, 여기에 두 작가가 작품 활동 중에서 느낀 ‘감정의 색’을 더해 모두 101개의 물감을 전시했다. 전시가 끝난 뒤 이 물감들은 통일교육이 필요한 여러 곳에 기증되었고, 앞으로 릴레이식으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코이 작가의 단독 작품 ‘너와 함께 걷는 남향집 가는 길’은 마치 그가 북한에서 매일 신고 다녔던 운동화 50켤레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설치미술이다.
“북에 있는 제 친구 50명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한 명 한 명에게 손편지를 신발에 써넣었어요.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과 통일에 대한 소망을 담았습니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무셨어요. 운동화 속 편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계셨고, 어떤 분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제게도 가장 소중한 작품이었죠.”
그의 또 다른 작품‘유닛 하모니(Unit Harmony)’는 소원을 적어 날리면 이뤄지는 종이비행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나 하나의 유닛은 각기 다른 개인의 꿈을 상징한다. 이 모든 꿈들이 하나로 합쳐져 더 큰 꿈을 이루듯이 통일을 바라는 염원이 모여 하나된 한반도를 이룰 수 있음을 표현했다
소통과 인내
신형미 작가의 단독 작품 ‘오래 달리기 트렉’은 미술치료사로 일하면서 그가 만난 수많은 탈북민 가운데 기억에 또렷이 남는 46명의 길고 힘든 여정을 구현했다. “저에게 오래 달리기는 어릴 때부터 어려운 일이에요.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도착하기까지 위험한 순간도 경험했고, 안도의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 장거리 트렉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교하면 어떨까 상상해 보는 것이죠.”
신 작가의 또 다른 단독 작품 ‘자리’는 의자 시리즈 중 하나로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몇 명의 탈북민 내담자를 표징한다.
남다른 멘토와 멘티 관계이지만 두 작가는 살아온 환경과 과정이 다른 만큼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가치관의 차이를 실감하기도 했다. 소통과 배려, 인내가 필요했다.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남과 북의 통합’을 고민했다.
코이 작가는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자신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고 말한다. “코로나 19로 관람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뜻밖에 많은 분들이 찾아줘서 놀랐습니다. 저의 재능이 통일을 위해 의미 있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특히 혼자 무언가를 해내는 것보다 ‘남한 출신 작가와 북한 출신 작가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통일의 첫 단추를 끼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시는 신형미 작가가 기획을 제안해 추진했다. 2008년 서울여대와 인천동부교육청 프로젝트 ‘하나 됨을 위한 탈북 청소년 예술치료 교육’이 발단이 되어 열린 전시회 <남향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시다. 올 봄 민주평화통일자문회 평화나눔갤러리에서 한 번 더 전시회가 열린다.
“저희는 기획단계부터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되는 전시로 준비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더 큰 전시 프로젝트로 발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며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북한에 자연스럽게 다가가고자 가교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신 작가의 설명이다.
꿈을 향한 발걸음
코이 작가는 현재 패션 관련 기관에서 일하며 홍익대 패션대학원 패션비즈니스학 석사과정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2016년에는 코오롱그룹 후원으로 커먼그라운드에서 남북한 청년 작가 9명이 함께한 전시회를 기획하고 참여했다. 그의 꿈은 통일에 대비해 패션산업과 문화예술 분야에 영향력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신형미 작가는 2004년부터 탈북민들과 깊은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한 탈북소년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미술치료사인 그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하나원에서 그림을 통한 심리상담으로 그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소통해왔다.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순수미술 회화를 전공한 신 작가는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치료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차의과대학교 임상미술치료학 박사과정 중이다.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국가?사회적 과제라는 신념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시각 전환 교육을 위한 여러 활동을 준비 중이다.
TALES OF TWO KOREAS
Kim Hak-soon Journalist; Visiting Professor,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 Korea University
Han Sang-mooh Photographer
Sharing Art for a Single Korea
“A South-Facing House, Again” ? an art exhibition by a North Korean refugee and her South Korean mentor/art therapist ? attracted many viewers near the end of 2020. It highlighted efforts toward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ns, and their shared desire for unification.
North Korean refugee “Koi” named herself after the colorful carp to mask her identity and express her newly-acquired freedom. Koi in a fishbowl rarely surpass eight centimeters in length, but those in a river can grow up to 15 times bigger. The young artist likens herself to a fishbowl variety that has now reached the “wide and free river” of South Korea.
In December 2008, Koi left her home in Chongjin, North Hamgyong Province, and sneaked into China, motivated by a close friend and her family members who had settled in South Korea. She couldn’t be deterred even by her own family’s warnings of severe punishment should she be captured.
After many twists and turns in China and Thailand, Koi arrived in South Korea, her “dream land,” in March 2009. She personified an old adage that says, “The newborn calf is not afraid of the tiger.” Today, she fully realizes the risks she took as a new, 18-year-old high school graduate. She says she would not attempt the journey now if she were still in the North.
Upon arriving, Koi set her sights on a fine arts education in Seoul. To prepare for the college entrance exam, she attended Heavenly Dream School, a private alternative school for displaced North Koreans in Seongnam, Gyeonggi Province. In 2012, Koi was admitted to Hongik University’s Department of Textile Art and Fashion Design. She was the department’s first student from North Korea.
Coincidence or Karma
While at the university, Koi met Shin Hyungmee, an art therapist, through the Young Defectors’ Christian Association. “When I first met Koi in 2013, I immediately felt that she had a very bright and positive view of life,” Shin recalls. At the time, I was participating in group counseling for young refugees, supported by the Korean Methodist Church headquarters. I knew that Koi eagerly wanted me to teach her privately. I’ve been her mentor ever since.”
The two artists created nine works for a joint exhibition held in Seoul from November 25 to November 30, 2020. The theme of the event was “national unification.” It was the second round of “A South-Facing House,” an exhibition series launched in 2008 by Seoul Women’s University and the Incheon Dongbu Office of Education as an art therapy project for young refugees. The series has showcased participants’ artistic talents in a variety of genres, including painting, textile art and installation. The 2020 edition was hosted by the Unification Ministry at Topohaus, a gallery in Insa-dong, an arts and crafts conclave in central Seoul.
The exhibition introduced Koi and her special relationship with Shin to the broader art scene. They collaborated on three of the artworks and separately produced three works each.
“A Map of the Korean Peninsula Embraced by Sigma,” one of the joint pieces, expressed the artists’ impression of Korea through the mathematical symbol denoting a sum. In an earlier project called “Communicate with Colors,” 30 refugees and 29 South Koreans came together, each creating a different color of paint based on their own view of national unification. These hues were supplemented by a “color of emotion” made by Shin and Koi. Thus, 101 colors were exhibited and later handed over to institutions involved with education for national unification.
“The Road to a SouthFacing House I Walk with You On,” one of Koi’s individual works, was an installation piece. It evoked 50 pairs of the sneakers that she wore back in the North.
“I put a handwritten letter in each pair of shoes to say hello to 50 friends of mine in the North. The letters reflect my longing for my family and friends, and my wish for national unification,” she explains. “Many visitors lingered in front of the work. Some of them read each letter carefully and shed tears. Others left notes to say they were very touched.”
“Unit Harmony,” another piece by Koi, was crafted based on her inspiration from paper airplanes carrying notes of well-wishes.
Each of the “units” stands for a different dream. It embodies the image of one Korea built on many wishes for unification, just as all these smaller dreams together make up a bigger dream.
Consideration and Patience
“Long-Distance Running Track,” a solo piece by Shin, depicted the long and rough journey taken by 46 individuals from among the many North Korean refugees whom she still remembers meeting as an art therapist.
“Ever since I was a child, long-distance running has been difficult for me,” Shin says.
“I wanted to compare North Korean escapees’ experiences of both dangerous moments and peaceful relief along their journey toward South Korea with how runners feel during a long-distance race.”
Despite their special relationship as a mentor and a mentee, as they worked together, Shin and Koi were constantly reminded of their different values, outgrowths of the disparate environments and experiences they have had. Communication, consideration and patience were critical. They thought hard about how to integrate their two different cultures.
Koi says she was encouraged by the sheer number of visitors to the exhibition. “I had anticipated that there would be only a small number of visitors due to COVID-19, but was surprised to find out that more people came than expected. I was convinced that my talent could be used for national unification. More importantly, two artists from the South and the North were able to engage in collaborative activities rather than doing something separately. We’ve already gotten off to a good start toward national unification, I believe.”
The exhibition was initiated by Shin. “We prepared it not as a one-off event, but as a long-running program,” she says. “With this serving as momentum, we’ll play the role of a bridge so that it can develop into a bigger project and more people can take part in it, approaching the topic of North Korea in a natural manner with optimism about unification.”
Another exhibition is scheduled for later this year at a gallery run by the National Unification Advisory Council.
Steps toward a Dream
Currently, Koi is studying for a master’s degree in fashion business at Hongik University and working for a fashion-related organization. In 2016, she planned and participated in a group exhibition by nine young North and South Korean artists at Common Ground, South Korea’s first shopping mall made of shipping containers, under the sponsorship of Kolon Group. Her dream is to become an influential expert in the fashion industry and the world of arts and culture so that she’ll be able to play a useful role in uniting the two Koreas.
Shin has maintained a close relationship with refugees since 2004. It all began when she met a boy from North Korea while working as a volunteer for Doctors Without Borders. As an art therapist, she also facilitated defectors’ mental healing and communicated with them at Hanawon, a government facility for defector re-education. She studied fine arts at Ohio University in the United States and obtained her master’s degree in art therapy from Seoul Women’s University Graduate School.
Now, Shin is undertaking a doctoral program on clinical art therapy at CHA University. She is also preparing for various activities designed to raise awareness of the important public task of helping displaced North Koreans live a fulfilling life in the S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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