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LiNK, Liberty in North Korea)는 미국의 한인 학생들이 2004년 설립한 비정부단체이다.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을 비롯한 16개국 275개 단체와 협력 관계를 맺고 주로 탈북민들의 해외 정착을 돕고 있는데, 최근 한국지부장 박석길(Sokeel Park 朴錫吉) 씨가 영국·한반도 관계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왕실에서 ‘대영제국 국가공로훈장(MBE)’을 받았다.
한국계 영국인으로 LiNK의 한국지부를 이끌고 있는 박석길 씨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동갑인 35세이다. 그는 자신이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더라면 ‘장마당 세대’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북한 주민들 중 특히 이 세대에 주목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에 태어난 이 젊은이들이야말로 북한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개연성이 높은 세대라고 믿기 때문이다.
‘장마당’은 소련 붕괴 이후 북한 정부가 주민들에 대한 생필품 배급을 대폭 줄이자, 먹고 살기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야외 시장을 가리키며 일정 부분 북한 경제의 시장화를 상징한다. 북한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장마당 세대는 1990년대 중반 국가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몰락한 이후 성장해 기존 세대와 사뭇 다른 사회화 과정을 겪었다. 이 연령대의 탈북민들에게 “당에서 배급받은 기억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개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외부 세계의 정보를 상대적으로 많이 접한 이들은 가치관, 인식, 행동 등에서 부모 세대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정보 기술과 환경이 바뀌면서 이들은 불법 외국 미디어를 소비해 외부 세계의 색다른 관점에 눈을 뜨게 됐다. 특히 패션을 비롯한 외양과 생활 방식은 남한 드라마와 중국 영화로부터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국제 정치 전문가이기도 한 박 지부장은 장마당 세대 이외에 북한의 가족들과 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탈북인, 자본주의, 정보 유입의 확대, 정부 통제를 벗어난 인적 연결망 탄생, 북한 내부의 만연한 부패를 6대 북한 변화 요인으로 꼽는다.
우연한 계기
“유엔에서 인턴십을 하느라 뉴욕에 있을 때 탈북인을 여러 명 만나게 됐죠. 그때 북한 주민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각오와 열정을 갖게 됐습니다.” 박 씨가 탈북인을 돕는 링크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그는 런던정경대에서 국제관계학·국제정치사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유엔이나 영국 외교부에서 일하고 싶어, 우선 유엔 인턴십부터 지원했다. 인턴으로 일하던 2008년 어느 날 뉴욕에 온 탈북자 구호단체 ‘크로싱 보더(Crossing Border)’ 설립자인 마이크 김의 강연을 들으러 가게 됐다. 시카고 출신 한인 2세이자 금융 전문가인 마이크 김은 북한 주민들의 빈곤 실상과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Escaping North Korea』라는 책을 출간한 직후였다. 훗날 탈북인을 돕다가 중국 공안에 구속되기도 한 그는 강연이 끝난 뒤 박 씨에게 링크에서 활동해 보라고 권했다.
링크는 1980년대 후반에‘카스콘(KASCON, Korean American Students Conference)’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한국인 학생들과 미국인 학생들이 모여 해마다 컨퍼런스를 열면서 탈북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졌다. 2004년 예일대에 모인 한인 2세 학생들은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북한의 자유’라는 뜻이 담긴 ‘링크’를 결성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워싱턴 DC에 본부를 두기로 했다. 회의나 토론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단체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링크의 활동비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각종 재단, 학생, 기업가, 종교 단체, 회원 등의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소모임에서는 티셔츠나 직접 구운 과자와 버블 티, 주먹밥 같은 작은 물건들을 팔고, 음악회를 열어 모금 활동을 하기도 한다. 정부 지원 예산은 전혀 없다.
기부금은 주로 중국에 은신해 있는 탈북인들을 탈출시키는 데 쓰인다. 1명이 탈출하는 데 드는 돈은 3000달러(약 330만 원) 정도다. 탈북인의 주요 경유지인 동남아 국가에 은신처를 제공하고, 미국에 정착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영어 교육과 직업 훈련도 시켜준다.
링크는 ‘노마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노마드 인턴’을 양성해 미국, 캐나다 등지를 다니며 북한과 북한 주민에 대한 인식과 행동을 바꾸게 하는 캠페인이다. 노마드 인턴으로 선발되면 북한 관련 교육을 받는다. 그런 다음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10주 동안 북한을 알리는 활동을 펼친다. 노마드 인턴은 3명이 한 팀을 이루어 모두 1000여 곳을 방문한다.
“미국 50개 주 중 두세 곳을 빼고 거의 모든 지방을 돌았어요. 작은 마을에 사는 미국인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냐’고 물을 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현장을 다녀본 박 씨의 체험담이다.
“북한 주민에 대한 한국 청년들의 공감 능력은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북한에 대한 많은 지식보다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외교관의 꿈을 대신한 링크
박 씨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13살 때인 1998년 처음 한국에 방문했다. 영국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왔기 때문이다. 소년 박석길은 처음 찾아온 한국에서 북한의 존재를 실감나게 체험했다. 버스를 탈 때마다 창문에 붙어 있는 빨간 스티커가 궁금했던 그는 “이게 뭐냐”고 아버지에게 캐물었다. 아버지는 “북한 간첩을 신고하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고 말해 주었다. 어린 소년은 그때 남북한의 적대 관계를 생생하게 느꼈다고 한다.
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모두 함경북도 명천(明川) 출신 실향민이었다. 명천은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한에 선물로 보낸 송이버섯으로 유명한 칠보산(七寶山)이 있는 곳이다. 박 씨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할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 갔다. 통역·번역가로 일하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국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는 것은 물론 BBC 뉴스에서 한국 얘기가 나오면 “와서 보라”고 채근했다.
영국에서 고교를 졸업한 박 씨는 워릭대(University of Warwick)에 합격한 뒤 서울에 와 1년간 연세대 어학당을 다니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어머니를 더 닮아 외모는 서양인이지만 이제 한국어가 유창하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그는 2007년 다시 한국으로 와 행정안전부의 지방정부연수원 국제협력교육과에서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에게 한국의 경제와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기도 했다.
박 씨는 2012년 5월 링크 한국지부가 만들어지면서 영국 외교관의 꿈을 접고 서울에서 장기 체류 상근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서울에 있는 한국지부에서는 현재 그를 포함해 8명의 회원이 상근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탈북 난민 구조와 보호, 정착을 돕는 링크의 기존 업무뿐만 아니라 탈북민들을 대하는 인식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무엇보다 한국 젊은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는 한국 학생들이 탈북인을 너무 모르는 데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국에 탈북인이 얼마나 왔는지 대부분 모릅니다. 3만 명이 넘는다고 하면 믿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그는 한국 학생들이 북한 주민에 무관심한 건 북한 이슈가 너무 정치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 씨는 링크가 ‘북한인권운동단체’로 불리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 한국에서 보수단체로 알려져 활동에 제약을 받을까 봐 걱정스러워서다. “한국에선 북한인권단체라 하면 바로 보수우파라고 말하잖아요. 우리는 우파도 좌파도 아닙니다. 북한 주민을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단체일 뿐입니다. 북한인권단체란 표현도 그래서 꺼려요.”
하지만 그는 장기적으로 인권 개선 없이 북한의 정상 국가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일각에서 지금 북한 인권을 거론하면 비핵화를 어렵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이 문제를 언제까지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독재 정권 시절의 한국에게도 그랬듯이 북한 인권 문제는 어렵지만 누군가는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박 씨는 BBC 월드서비스에 한국어 방송을 넣는 방안도 영국의 데이비드 앨턴(David Alton) 상원의원과 더불어 추진하고 있다. 한국어 방송이 많아질수록 북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프레임을 벗어난 공감 능력
2018년 한 해 동안 링크의 도움을 받아 북한 밖에 정착한 탈북인은 326명에 달한다. 탈북인 구출 사업을 시작한 이후 2018년 말까지 합하면 모두 1000여 명이 링크의 혜택을 받았다. “탈북인들은 남북한 간 문화 격차와 생소한 제도 때문에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링크는 탈북인이 한국에 정착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탈북민들이 늘어나고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씨는 탈북민이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일 뿐 아니라 북한 변화의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탈북인 대부분이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돈을 보내거나 통화하면서 자연스레 경제적으로, 의식적으로 북한 내부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한 축이 된다는 논리다. 박 씨는 앞으로 10~20년 안에 지금과는 아주 다른 북한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따라 한국의 미래를 짊어진 청년들이 북한 주민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북한 주민에 대한 한국 청년들의 공감 능력은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북한에 대한 많은 지식보다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은 주로 북한을 ‘한민족이며 통일의 대상’으로 보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을 많은 지하자원과 값싼 노동력 등을 갖춘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나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요.”
박 씨는 “한국 청년들이 북한 사회에 대해 참 무심하다. 그래서 북한이 문을 열었을 때 편견과 몰이해로 인한 남과 북의 사회적 갈등은 상상 이상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그는 정치·안보 프레임으로만 북한을 바라보는 국제 사회에도 다른 관점을 제안한다. “북한이라고 하면 흔히 김정은이나 핵무기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2500만 북한 주민이지요.”
링크는 탈북민 지원 외에 북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 세계에 전달하는 활동도 한다. 2018년 만든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The Jangmadang Generation)도 그 일환이다. 박 지부장이 공동 감독을 맡은 이 52분짜리 다큐멘터리는 탈북 청년 10명의 생생한 육성으로 북한 청년들의 사고와 문화를 전해 준다. 박 지부장은 “다큐멘터리를 본 분들은 영상 속 북한 청년들이 내 친구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주문한다. “적대도, 시혜도 아닌 시선이 중요하죠. 새로운 상상력을 위한 가교가 탈북인인 셈입니다.”
박 지부장은 영국·한반도 관계 증진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올해 영국 왕실에서 ‘대영제국 국가공로훈장(MBE)’을 받았다. 탈북민과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일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영국 축구국가대표팀 주장으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손흥민 선수와 함께 뛰고 있는 해리 케인도 이번 훈장 서훈자 명단에 올랐다. 박 지부장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활동하며 탈북인들이 무사히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모든 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훗날 여건이 된다면 조부모의 고향인 북한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북한 문제가 너무 큰 이슈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계간 KOREANA 2019년 여름호에 실린 것입니다.
Kim Hak-soon Journalist and Visiting Professor,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 Korea University
Ahn Hong-beom Photographer
TALES OF TWO KOREAS
‘Refugees are the Vanguards of Change’
Liberty in North Korea (LiNK) rescues and resettles North Korean defectors. The U.S.-based NGO’s office in Seoul is headed by Sokeel Park, who regards displaced North Koreans as potential facilitators of change in the communist North. But he feels South Koreans need to change a lot, too.
When 13-year-old Sokeel Park, a Briton of Korean descent, first came to South Korea in 1998, a red sticker on every bus piqued his curiosity. That, his father explained, was an appeal to alert authorities about suspected North Korean agents.
Today, Park is telling South Koreans about their fellow Koreans in the North, but not as an informant. He heads the South Korean branch of Liberty in North Korea (LiNK), a U.S.-based non-government organization dedicated to rescuing and resettling North Korean defectors. Its efforts are aided by 275 support clubs in 16 countrie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Canada, Britain and Japan.
At 34, Park is almost the same age as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Park believes their age group holds the keys to meaningful change on the Korean peninsula. If he was born in the North, Park would be in the “jangmadang generation.” Jangmadang (or changmadang in North Korea’s Romanization system) refers to North Korean farmers’ markets and black markets, seedlings of a nascent market economy. Jang is an abbreviation of sijang, meaning “market” and broadly “capitalism”; and madang means “place,” “spot scene,” etc. The markets began to emerge in the 1990s as the North grappled with natural disasters that destroyed crops and the end of assistance from the Soviet Union, which had collapsed.
The jangmadang generation constitutes a quarter of the North Korean population. Growing up with a reeling socialist economic system, this cohort’s socialization differs markedly from previous generations.
Most defectors of this generation claim they never received food rations from the Workers’ Party in their country. Their cultural experience is far removed from that of their parents and grandparents, too. With relatively more access to outside information, these young adults have different values, perceptions and attitudes. The internet and smuggled thumb drives have helped them develop alternative perspectives. South Korean TV shows and Chinese movies increasingly influence their fashion and lifestyle.
Park sees six catalysts, or motives, for change in the North: the jangmadang generation; capitalism; chronic corruption; rising inflow of information; defectors, or refugees, who are in contact with their relatives in the North; and personal networks beyond government control. But to optimize the potential contribution that North Korean resettlers could make, the sentiment of South Koreans must be changed, says Park.
Genesis of LiNK
LiNK is an offspring of KASCON, the Korean American Students Conference, which began in 1989. As interest in North Koreans fleeing their country swelled, their plight became a key topic of KASCON’s annual gatherings. Motivated to go beyond discussions and debates, second-generation Korean-American students at Yale University formed LiNK in 2004 and placed the headquarters in Washington, D.C.
LiNK relies on donations from various organizations, students, businesspeople, religious groups, and its own members. It also sells T-shirts, cookies, bubble teas and rice balls, and organizes fund-raising concerts. It doesn’t receive subsidies from any government.
Most of LiNK’s budget is spent on rescuing North Korean escapees hiding in China. It costs about US$3,000 (about 3.3 million South Korean won) per person. The group brings them through 3,000 miles of secret rescue routes through China and Southeast Asia to safe and free resettlement in South Korea or the United States.
By late 2018, LiNK had rescued more than 1,000 North Korean refugees and helped them resettle. Nearly one third of the total was achieved in 2018 alone.
Park believes North Korea will be quite different in the next 10 to 20 years. Accordingly, young South Koreans need to empathize with North Korean people above anything else, he says emphatically.
Vicarious Goal Fulfillment
Park was born to a Korean father and a British mother in Manchester, England, where he grew up. His first trip to South Korea was to accompany his grandmother’s remains after she died in England.
Between high school and university, Park spent a year at Yonsei University’s Korean Language Institute in Seoul. He earned a degree at the University of Warwick, where he majored in psychology, and returned to Seoul in 2007 to work at the Ministry of the Interior and Safety for a year. One of his duties was to facilitate courses on South Korea’s economy and culture for visiting officials from developing countries.
Over the next two years, Park obtained a master’s degree in international relations and international political history at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began working as an intern at the United Nations headquarters in New York. During this time, Park met North Korean defectors and decided that he would devote himself to working on behalf of North Koreans.
Park’s goal was a permanent job at the UN or the British Foreign Office. It was by sheer chance that he began working for LiNK. He attended a lecture in London by Mike Kim, the founder of Crossing Borders, an NGO that provides humanitarian assistance to North Korean refugees and their children living in China. After the lecture, Kim advised Park to work for LiNK.
In May 2012, when LiNK’s Seoul office opened, Park abandoned his dream of becoming a British diplomat to join the new branch. Besides Park, there are eight staffers. Their main task is to rescue, protect and resettle refugees. Those stranded North Koreans need substantial assistance in adapting to South Korean society due to the wide gulf between the two Koreas in terms of their culture as well as their economic and political systems.
Heading the Seoul Office
Park’s overriding goal is to get young South Koreans involved. He is flabbergasted at how little they know about North Korean defectors, who now number more than 30,000.
Park believes North Korea will be quite different in the next 10 to 20 years. Accordingly, young South Koreans need to empathize with North Korean people above anything else, he says emphatically. At present, they seem to be grossly indifferent and lacking in empathy toward North Koreans, Park says. If empathy toward North Koreans were measured on a scale of 1 to 100, he estimates young South Koreans would barely score 10.
As far as Park is concerned, the long-term chances of meaningful redirection in North Korea will improve with every refugee who resettles in South Korea. He believes North Korean resettlers abroad can be levers to economic and psychological change as they remit money to their relatives back home and secretly communicate with them.
Park suggests the international community use a different lens when scrutinizing North Korea. Discussions about the North typically revolve around Kim Jong-un or Pyongyang’s nuclear arms buildup. Park says the human factor, or the North’s 25 million people, needs to receive more attention. To that end, LiNK regularly releases vivid stories about North Koreans. An example is the 2018 documentary, “The Jangmadang Generation,” which features 10 young refugees. After watching the 52-minute documentary co-directed by Park, South Koreans would comment that they found North Koreans not much different from their friends, Park says.
This year, Park received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MBE) from the British royal household for his services to UK-Korean relations. That was in recognition of his contributions to aiding defectors and promoting human rights in North Korea. Park passes credit to those who unassumingly help LiNK safely rescue displaced North Kor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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