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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s of Two Koreas

목도리로 남북의 마음을 잇다

  대북 지원 단체인 하나누리 대표 방인성 목사는 자원봉사자들이 손수 짠 목도리를 북한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지원 사역을 8년째 이어오고 있다. 2017년부터는 마을금고를 주축으로 하는 북한 농촌마을 자립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한국 교회들이 북한 주민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여기기에 앞서 그들의 삶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문제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함경북도 두만강 하류에 자리한 라선특별시는 북한에서 맹추위로 소문난 곳이다. 1월 평균 기온이 섭씨 영하 18도인 데다가 “소가 날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겨울바람이 거세다. 하나누리의 대표이자 함께여는교회의 담임목사인 방인성(Pang In-sung 方仁成) 씨는 해마다 겨울이면 이 추운 곳으로 향한다. 라진·선봉경제특구로 더 잘 알려진 이곳의 아이들에게 목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곳에 겨울나기 물품을 전달하고 있는 방 목사는 “목도리 3,000여 개가 담긴 종이 상자를 실은 트럭이 칼바람을 뚫고 유치원, 탁아소, 보육원을 돌고 나면 아이들 표정이 무척 밝아진다”고 전했다.

                          
 “난방 연료가 부족한 실정이라 북한 어린이들은 매서운 겨울바람을 맨몸으로 견뎌야 합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목도리는 최고의 겨울나기 선물이죠. 그래서 저는 1m 남짓한 목도리가 3,000리나 떨어진 남과 북의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자원봉사자들의 정성

 

방인성 목사가 북한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목도리는 예외 없이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만든다. 주로 중고교 학생인 자원봉사자들이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하나누리 사무실에 모여 목도리를 손수 뜬다. 사무실에 오지 못하는 봉사자들은 하나누리가 제공하는 재료를 택배로 받아 완성한 뒤 다시 사무실로 보내 준다. 캠페인에 참여한 중고교생들은 목도리를 뜨는 것으로 학교에서 요구하는 자원봉사 시간을 인정받는 효과도 있으니, 이 캠페인은 남북한 청소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북한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선물받은 목도리가 남한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말하면 더없이 고마워한다. 진심이 담겨 있는 선물이라고 여겨서다. 기부금을 모아 목도리를 사서 전달하면 손쉽겠지만 굳이 손수 뜨는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업에서도 이 캠페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임직원들이 단체로 목도리 뜨기 운동에 동참했고, 미국·캐나다 등지에서도 재료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해마다 국내외적으로 2,000~3,000명이 캠페인에 참여한다”는 것이 방 목사의 귀띔이다.


 목도리를 뜨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재료와 함께 동봉된 도안을 보면 처음 해 보는 사람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재료비는 방 목사가 벌이는 ‘목도리, 남북을 잇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독지가들의 정성으로 마련된다. 이 캠페인은 2011년 한 하나누리 직원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당시는 남북 관계의 악화로 교류 사업이 모두 중단됐을 때였다. 아무리 정치적 상황이 어려워도 민간 교류의 끈은 놓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방 목사에게 목도리 뜨기 아이디어가 참신하게 다가왔다. 중국인을 통해 물품을 북한에 전달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북한 관계자들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느냐며 감탄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이 서울 중구에 있는 하나누리 사무실에 모여 목도리를 뜨고 있다. 목도리 뜨기 행사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데, 방문이 어려운 자원봉사자들은 재료를 택배로 받아 완성해서 보내온다.

                                                                          

자립을 위한 마을금고 사업

 

 하나누리는 좀 더 거시적인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북한 농촌마을 자립 모델 사업이 그것이다. 2009년부터 라선특별시 룡평마을에 농기구·비료·종자 등을 꾸준히 지원해 왔고, 량강도의 농장, 함경북도 청진의 고아원·보육원을 돕기도 했던 하나누리는 2017년부터 룡평자립마을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10년 계획인 이 프로젝트는 외부 지원 없이 이 마을이 스스로 식량, 육아, 주거, 교육, 의료, 에너지, 자치 등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목표다.


 이 사업의 핵심은 마을금고 운영이다. 하나누리에서 마을금고 농장 계좌에 넣은 자금을 주민들이 대출 받아 농약이나 농기구를 사고 나중에 상환하는 방식이다. 이 사업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무함마드 유누스가 창시한 그라민은행의 영세민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마이크로크레딧에서 착상했다.


 룡평마을은 48가구에 농장 면적이 62정보(약 61만 5,000㎡)에 달한다. 이 마을은 2017년 마을금고 대출로 트랙터 1대, 디젤유, 비료 등을 구입했다. 대출 규모는 한국 돈으로 치면 3,290만 원 정도다. 이 마을에서 보내온 2017년 성과 보고서를 보면 괄목할 만하다. 벼와 옥수수의 생산량이 각각 전년 대비 1정보(9,917㎡)당 1톤씩 늘었다. 또 1가구당 월 생활 수준을 비교하면 전년보다 쌀 10㎏, 국수 10㎏ 정도 소비가 증가했다.


 자립마을 사업의 관건은 빌린 돈의 상환 능력에 있다. 2018년 7월 17일 1차 상환액이 들어왔다. 초기 사업이 안정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하는 방 목사는 “룡평자립마을은 북한 전 지역에 적용 가능한 확산 모델”이라고 역설했다. 이 마을에서 상환한 자금은 나선특별시의 또 다른 마을에 재투자할 계획이다.


 북한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선물받은 목도리가 남한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말하면 더없이 고마워한다. 진심이 담겨 있는 선물이라고 여겨서다. 기부금을 모아 목도리를 사서 전달하면 손쉽겠지만 굳이 손수 뜨는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일 이후를 대비하다


 하나누리는 라선특별시에 대표 사무소를 여는 계획도 세웠다. 그곳에서 진행되는 사업의 전반적 관리, 수익의 재투자, 남측 기업의 소통 창구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표 사무소는 중장기적으로 여행사, 외국어 학원, 운송업, 양식업, 지하자원 개발, 스마트시티, 도시·토지 개발 연구 사업 등을 추진하게 된다.


 방 목사는 룡평마을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구마다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0~30%의 고금리 대출이 북한 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2009년 북한 정부가 화폐 개혁을 단행했을 때 저축했던 돈을 많이 잃어버렸던 북한 주민들은 은행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 영향으로 고리대금업이 성행했고, 가계 대출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에 착안해 마을금고에서 사업 대출뿐만 아니라 가계 대출도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룡평마을 1가구당 월 생활비가 한화 5만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해, 한 가구당 최대 한화 8만 5,000원을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것이 사업의 뼈대다.


 하나누리는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인 활동, 연구, 교육, 이 세 날개로 통일을 준비한다는 목표로 2007년 출범했으며, 2019년 1월에는 부설 연구 기관으로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소(Hananuri Northeast Asia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했다.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상생 가능한 발전 모델을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당장은 룡평자립마을 사업 모델화 연구를 과제로 삼는다.


 하나누리 산하에는 이 외에도 ‘토지 + 자유연구소(Institute of Land and Liberty)’가 설립돼 희년경제(禧年經濟) 체제를 연구하고 있다. 토지든 노예든 빌린 지 50년이 되는 해에 원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던 초기 기독교 전통인 ‘희년’에서 착안한 개념인데, 햇빛이나 공기처럼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공유하자는 철학이 담겨 있다. 즉 통일 이후 북한의 토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남북한에 적용 가능한 대안 경제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려는 것이다.


 “두 체제를 뛰어넘는 한반도의 새로운 대안 경제 구조가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드러내는 경제 구조를 성경 속의 희년 법에서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누리는 노무현 정부 시절 사회·문화 교류 차원에서 남북 미술 작가들의 합동 전시회를 열고, 남북 청소년들의 나무 심기 봉사 활동을 통해 교류하는 기회도 만들었다. 2007년에는 남북 청년 500여 명이 도라산 역에서 휴전선을 넘어 개성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행사도 준비했다. ‘자전거로 분단을 넘는다’는 취지로 기획한 행사였다. 하지만 다음 해 이명박 대통령의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행사는 돌연 취소됐다.


 “통일부나 후원 기업, 북측에서 모두 크게 관심을 보인 행사였어요.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와 협의서를 작성하고 실행 직전까지 갔는데,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더는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추진하고 싶습니다.”
 방인성 목사는 2007년 비정부기구 하나누리를 설립하여 북한 주민들을 위한 실질적 지원 외에도 통일 이후를 대비해 상생 가능한 발전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개신교 개혁 운동에 대한 관심

 

 방 목사의 북한 지원 사업을 힘들게 하는 것은 비단 정치적 상황만이 아니다. 하나누리의 활동은 남쪽 기독교계에서조차 대체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 “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일을 하느냐”, “그 사람들은 없어져야 되는 사람들이다. 속지 마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을 정도다. 방 목사는 “통일이 되면 한국 교회들이 북한에 예배당 세울 생각만 하는데, 북한 주민을 실질적으로 돕는 문제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교회와 교단들이 경쟁하며 십자가를 세우고 교회 확장에만 욕심을 부린다면 북한은 더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한국 교회가 북한 주민들을 전도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먼저 북한 주민을 사랑하고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통일과 평화 운동에서 ‘돈보다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주변인들을 독려한다.


 방 목사가 북한과 통일 문제에 열중하게 된 데는 할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다. 평안북도 철산 출신인 할아버지 방계성(方啓聖) 목사는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에는 예배당에 인공기를 게양하고 기독교연맹에 가입하라는 공산당의 요구를 거절해 총살형을 당했다. 방 목사의 아버지 방정원(方正圓) 씨도 목사였다. “비극적 가족사를 뛰어넘어 북쪽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복음의 본령이라는 생각으로 통일과 평화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방 목사는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신학부와 옥스퍼드대 웨스트민스터칼리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영국 국제장로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뒤 킹스 크로스 한인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옥스퍼드 한인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기도 했다.


 1996년 귀국한 그는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에 항거하다 투옥됐던 성도들이 서울 창신동에 세운 성터교회를 맡았다. 이 성터교회 시절 아픈 신자를 위해 신장을 기증하는 바람에 그는 신장 하나로 살고 있다. ‘목사의 설교와 삶은 일치해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런가 하면 방 목사는 2014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염원하며 광화문광장에서 40일 동안 단식을 한 적도 있다.


 이렇듯 남북 지원 사업과 사회적 현안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온 그는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함께여는교회는 신자가 100명 남짓한 작은 교회이며, 교회개혁실천연대와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를 결성해 개신교 개혁 운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이 글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계간 KOREANA 2019년 봄호에 실린 것입니다.

 

Kim Hak-soon Journalist and Visiting Professor,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 Korea University
Ahn Hong-beom Photographer

 

TALES OF TWO KOREAS
A Well-Knit Unification Plan

 

 Rev. Pang In-sung tries to advance unification through humanitarian assistance, defying ups and downs in inter-Korean relations. He urges South Korean churches to take an interest in giving North Koreans substantial help to improve their livelihood before regarding them as evangelization targets.

 

 Every winter Rev. Pang In-sung leaves for the frigid northernmost edge of North Korea. Sub-zero temperatures are the norm in the border region, where they say “winds are powerful enough to lift cows.”


 The philanthropic pastor’s destination is the Rason Special Economic Zone, a slice of North Hamgyong Province, which is wedged between China, Russia and the East Sea. The purpose of his annual visit is to deliver humanitarian aid, a product of his roles as senior pastor of the Open Together Church in Seoul and president of Hananuri, an aid organization affiliated with his church. The recipients are those who are most vulnerable to the threat of frostbite from a brutal winter.

 

Mufflers and Microfinance

 

 “In the biting winds, we make a round of kindergartens, daycare centers and orphanages, delivering a truckload of about 3,000 mufflers. The children’s faces brighten up when they receive the mufflers,” Pang says. “North Korean children are exposed to winter chill with little warm clothing to protect them, when heating fuel is in very short supply. Mufflers are the best gifts for them in winter. I think those 1-meter-long mufflers connect people in the two Koreas.”

 

 Hananuri (literally, “one world”) also provides financial support in Ryongpyong, a farming village in the Rason area. It runs a communal fund to help the villagers buy farm equipment and supplies to promote self-reliance. It is modeled after the microcredit program of the Grameen Bank founded by Muhammad Yunus, a Bangladeshi social entrepreneur, economist and civil society leader, who received the Nobel Peace Prize in 2006.


 Hananuri was launched in 2007 with the goal of making preparations for national reunification based on three aspects of support programs: practical activities, research and education for building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Its newly opened think tank, the Northeast Asia Research Institute, is tasked with creating a win-win development model for Northeast Asia. Currently, it is studying Ryongpyong as a possible prototype.


  Through Hananuri as well as his Open Together Church, a small church with only some 100 members, Rev. Pang hopes to convince South Korea’s megachurches to reconsider their post-unification plans. “South Korean churches are mostly thinking of opening churches in the North, once the nation becomes reunified. But they should pay attention first to how to provide real help to North Koreans.”

 

Volunteer Knitters

 

 In 2011, a Hananuri staffer suggested giving mufflers as gifts to North Koreans. Inter-Korean relations were deadlocked at the time, with exchange programs almost completely stalled. Pang felt that private sector exchanges should be maintained, regardless of the state of relations between the governments. The idea of knitting mufflers struck him as fresh and original. “It was a great idea. Even North Korean officials marveled at how we conceived of such an idea,” Pang says.


  Most of the mufflers distributed through his “Mufflers Connect Both Koreas” campaign are knitted by South Korean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By participating in the campaign, the students earn school credits for volunteer community service. On the fourth Saturday of every month, they gather at the Hananuri office in Seoul’s Jung District to knit together. Those who cannot come receive knitting materials at their homes and send the finished mufflers to the office. The knitting materials are funded by donations.


  Children and teachers at North Korean kindergartens and daycare centers are particularly touched when they hear that the mufflers were knitted by South Korean students, probably because they feel they have received truly warm gifts. This is why Pang adheres to having mufflers voluntarily hand-knitted one by one, although he knows it would be far simpler to buy and send them to the North.


  Employees of Samsung Display and other Korean companies have also become involved in the campaign, and proposals to participate come from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among other countries. “Some 2,000 to 3,000 people at home and abroad participate every year,” Pang says.

 

Communal Fund for Self-Reliance

 

  Hananuri’s activity in Ryongpyong began in 2009, when it provided assistance to daycare centers in Chongjin, also in North Hamgyong Province, and orphanages in nearby Ryanggang Province.


  In 2017, Hananuri began a 10-year project to help Ryongpyong become more self-sufficient in food supply, childcare, housing, education, medical service, energy and self-administration. The village fund, part of the project, extended a loan equivalent to some 33 million South Korean won (approximately US$30,000) to the village’s 48 households. With the money they purchased seeds, fertilizer and farm equipment for the 615,000 square meters (152 acres) of land that they tend.

 

  The success or failure of such self-reliance projects depends on whether the villagers can repay their loan. The village’s 2017 performance report helped mollify any concerns. Rice and corn output increased by about 60 tons each, compared to 2016, and each household’s consumption of rice and noodles increased by about 10 kilograms year-on-year. The first repayment was made on July 17, 2018.


  “Ryongpyong is a diffusion model that can be applied to any other place in the North,” Pang says. He plans to reinvest the repayment in another village in Rason.


 “North Korean children are exposed to winter chill with little warm clothing to protect them, when heating fuel is in very short supply. Mufflers are the best gifts for them in winter. I think those 1-meter-long mufflers connect people in the two Koreas.”

 

Preparing for Post-Unification Era


  Hananuri intends to open a representative office in Rason for on-site management of its aid projects. The office will also reinvest profits and serve as a communication channel for South Korean corporations. Over the mid- and long-term, the office will conduct research on tourism, foreign language education, transportation, fish farming, underground resources development and smart city programs as well as urban planning and land development.
While undertaking the Ryongpyong project, Rev. Pang learned that most villagers had heavy debt loads. He also came to know that loans with an interest rate of 10 to 30 percent are commonplace in the North. Many North Koreans do not trust banks, because they suffered substantial losses in the 2009 currency reform, which forced everyone to obtain new banknotes while limiting the swappable amount of the suddenly obsolete old currency.


 Loan sharks have filled the void created by the distrust of banks and the amount of household loans is raising alarm. To help relieve the pressure, Pang is preparing to let the communal fund offer an interest-free loan of up to an equivalent of 85,000 South Korean won to individual households. The average monthly cost of living per household amounts to some 50,000 South Korean won.


  Hananuri has another think tank devoted to the study of land use, namely the Institute of Land and Liberty. Research at the institute is focused on a jubilee cycle of economy, referring to an early biblical tradition in which land, property and slaves would be returned to their owners in the 50th year. The research concerns how land and property should be handled in the North after unification and what alternative economy could apply to both Koreas.


  “I believe that we need a new alternative economic structure for the unified peninsula, transcending the current systems of both Koreas,” Pang says. “The new alternative structure will have to envision genuine peace, following the biblical tradition of the Jubilee.”


 During the liberal administration of President Roh Moo-hyun (2003-2008), Hananuri sponsored joint exhibitions of South and North Korean artists and provided youths from both Koreas with an opportunity to plant trees together. In 2007, it envisioned 500 youths from both sides crossing the Demilitarized Zone on bicycles. But after the conservative Lee Myung-bak administration took over the following year, the cross-border bike ride had to be abruptly cancelled.


 “The Unification Ministry and potential sponsors, as well as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took a great interest in the event,” Pang says. “But we couldn’t go ahead because inter-Korean relations chilled. We had already reached an agreement with the North’s National Economic Cooperation Federation and we were just about to start it. I want to push for the event again if another chance comes sometime in the future.”


 The hostile political environment is not the only obstacle to Pang’s aid projects. Hananuri’s activities are not properly understood even by South Korean churches. Some compare his projects to “shoveling sand against the tide.” But Pang’s stress on grassroots support is unwavering.


  “More chaos will result in the North if South Korea’s megachurches and various Christian denominations and organizations compete only to open churches and expand their influence there,” he says. “I hope South Korean churches won’t regard North Koreans merely as targets of evangelization, but will love them first and then think seriously of ways for people of both Koreas to live together peacefully.”


  Rev. Pang In-sung is shaping a win-win development model for post-unification Korea in addition to providing substantial assistance to North Koreans through Hananuri, a nongovernmental aid organization founded in 2007.

 

Efforts for Church Reform

 

  Pang is a third-generation pastor in his family. His grandfather, Rev. Pang Gye-sung, aroused his interest in North Korea and the unification of the divided peninsula. “I was more and more interested in unification and peace, as I believed that loving North Koreans is the essence of the gospel, transcending the tragedy of my own family,” he says.


  Rev. Pang Gye-sung was a pastor from Cholsan, North Pyongan Province. He was imprisoned for refusing to pay respects at Shinto shrine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After the national liberation in 1945, communists killed him for refusing to put up a North Korean national flag at his church and join the North’s Christian federation.


  Pang In-sung studied theology at King’s College London and the University of Oxford’s Faculty of Theology. He was ordained as a minister at the International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Kingdom and worked as a curate at a Korean church in Kings Cross, London, and as senior pastor at another Korean church in Oxford.

 
  After returning to South Korea in 1996, he took charge of the Seongteo Church, which was built in Seoul by Protestants who were incarcerated for refusing to pay respects at Shinto shrines during the colonial period. He has only one kidney because he donated the other to a sick member of the church. It was a decision based on his conviction of “practicing what you preach.” In 2014, Pang staged a 40-day hunger protest at Gwanghwamun Square in downtown Seoul, seeking justice for the victims of the Sewol Ferry disaster that year, most of them high school students.


 Pang also is known for his advocacy for small church. In cooperation with the Solidarity for Church Reform in Korea, he is conducting a Protestant reform movement that seeks an end to hereditary succession of church administration and leader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