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에서

‘석유 종말’ 왜 대비하지 않나

입력 : 2008-07-11 17:59:14수정 : 2008-07-11 17:59:31

“열역학 지식을 습득해서 생활에 활용하도록 해라. 에마야, 네가 은퇴할 나이가 될 때쯤에는 세계의 석유 생산량은 지금의 5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케니지 S 데페이에스 프린스턴대 석유지질학 명예교수는 2002년 출간된 ‘파국적인 석유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라는 저서에서 두 살 난 손녀에게 남기는 충고로 마무리했다. 저명한 석유전문가인 데페이에스 교수는 미증유의 석유위기가 도래하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보다 에너지절약 기술개발이 더욱 시급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세계의 석유생산량이 2008년쯤 정점에 달한 뒤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은 물론 다시는 증가세로 돌아서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하고 있다.

이에 앞서 휴스턴 셸 석유연구소의 석유지질학자 M 킹 허버트는 미국의 석유 생산이 1970년대 초 최고조에 이른 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벌써 1956년의 일이다. 그 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허버트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비웃기까지 했다. 1971년 미국 석유 생산이 실제로 감소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허버트의 전망을 마지못해 수긍했다. 석유 전문가들이 허버트 분석 방법을 세계 석유 생산 예측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1995년 경부터였다.

석유 종말론이나 위기설은 이처럼 언제나 늑대의 출몰을 알리는 양치기 소년쯤으로 취급받았던 게 현실이었다. 석유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뉴스가 언론을 도배할 때마다 형식적인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이다 어느새 흐지부지되고 마는 것도 주기적인 행사였다.

데페이에스의 책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될 무렵 나온, 에너지대안 전문가인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의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녹색평론)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생태 환경론적으로 접근하는 그의 방법론이 지나치게 이상주의라고 폄훼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이 교수는 허버트 모델과 더불어 콜린 캠벨의 산유량 곡선 등을 인용하면서 나름의 석유종말론과 더불어 에너지 대안체제 구축의 화급성을 외친다.

전문가들은 지구상의 원유 매장량을 통상 약 1800기가배럴로 추산하고, 심해와 극지방의 석유, 타르 석유 등을 모두 합하더라도 최대 2100기가배럴로 잡는다. 지은이는 석유 사용연한이 매장량을 소비량으로 나누는 산술적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상기시킨다. 흔히 40~50년 간 쓸 수 있는 양이 남아 있다고 표현하지만 이는 인류가 현재와 똑같은 수준으로 풍족하게 석유를 소비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은연 중에 시사한다. 게다가 당시엔 중국과 인도의 석유소비량을 예상하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석유시대의 필연적인 종말을 믿지 않으려 하는 게 문제라고 저자는 우려한다. 석유 시대의 종말로 말미암아 초래될 인류 문명의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재생가능 에너지’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는 ‘대체에너지’라는 말 대신 ‘재생가능 에너지’란 용어를 선택했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태양열, 수력, 풍력, 바이오매스 등이다.

현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원자력으로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려 하지만 완벽하게 안전해지더라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현재 우라늄 매장량이 430기의 원자로에서 5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력이 위기 해결사라는 희망을 품고 원자력을 확대하는 것 자체가 도리어 해결책을 지연시켜 위기를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재생가능 에너지’의 효용성에 대해 막연하게 회의적인 생각을 지니고 산다. 하지만 덴마크 같은 나라들이 2030년 전력수요의 50%를 풍력만으로 충당하는 계획을 세운 걸 보면 지레 의문만 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을 찾는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서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日 우경화의 뿌리 캐기  (0) 2008.07.25
독도를 읽다, 깨닫다  (1) 2008.07.18
우리가 숲을 버리면 숲도 우리를 버렸다  (0) 2008.07.04
‘협상 노하우’ 키우기  (0) 2008.06.27
좋은 리더십, 나쁜 리더십  (0) 2008.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