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부는 부패했지만 유능하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신화처럼 뿌리내려왔다. 그러는 동안 진보 정부는 상대적으로 깨끗하지만 무능하다는 틀짓기(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보수 정권과 보수 언론의 끊임없는 낙인효과였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를 싸잡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명명한 보수진영의 주장에는 국가운영 능력만큼은 보수가 한 수 위라는 어설픈 자신감이 서려있었다. 굳건하던 신화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구속에 이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몰락으로 풍비박산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러시아 방문에 앞서 청와대 간부들과 직원들에게 ‘유능해지고, 도덕성을 갖추고, 겸손해져야 한다’는 세 가지 주문을 각별하게 한 데는 진보 정권의 트라우마가 깔려 있는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지방의회의원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당 간부들에게 한 것에서도 어렵잖게 예상되는 우려가 묻어나온다.
지방선거의 압승에 따르는 자만과 기강 해이를 염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지만, 난제임에 틀림없다. 역사적으로나 개별 인물로 살펴봐도 유능과 도덕성을 동시에 갖추기는 지난한 일이다. 여기에다 겸손까지 더하라는 건 사실상 이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보수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나마 유능과 도덕성이 우위에 있다는 결과물을 보여줘야만 할 까닭은 대국민 약속에 있다. 진보 진영의 강점으로 인식된 도덕성은 적폐청산과도 직결된다. 도덕적 우위는 문 대통령이 진보진영의 유전자(DNA)라고 했을 만큼 소중한 자산이다.
출범 1년여 동안 진보 정부 인사의 도덕성 문제는 보수 정부 못지않게 논란거리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조어가 정치권에 상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머지않아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각료와 청와대 고위직 개편 인사에서 지금까지 비판의 대상이 됐던 도덕성 문제가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게 분명하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병역면탈·부동산투기·세금탈루·위장전입·논문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의 고위공직 배제 공약을 지키지 않아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많아 보수 정권과의 차별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불과 2개월 여전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낙마 사태에서 ‘부도덕성의 극치’라는 따가운 평가까지 나왔던 점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사전 검증 과정에서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후원금 사용의 위법성 같은 문제를 걸러내지 못한 사실 자체보다 어처구니없는 감싸기가 더 치명적인 논란거리였다. 도덕적 잣대로 재야할 사안을 ‘국민 눈높이엔 맞지 않지만 법적으로 문제없다’며 위법 여부의 잣대를 들이댄 것은 생채기로 남아 있다.
무리하게 밀어붙인 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장관에게는 ‘내로남불 결정판’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부의 대물림’을 강하게 비판하며 ‘상속에는 세금을 더 매겨야 한다’는 법안까지 발의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장모로부터 건물을 물려받을 때 세금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증여를 분할해 받은 이중성이 탄로 났다. 특목고 폐지를 주장했던 그가 딸을 국제중학교에 진학시킨 ‘내로남불’은 애교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2월 문 대통령이 청와대 각 비서관실에 선물한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는 앞으로 도덕성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하라’는 뜻을 담은 ‘채근담’ 경구는 ‘내로남불’이 나타날 때마다 호출될 개연성이 크다.
유능함에 의문부호가 붙는 고위공직자들은 청와대 보좌진과 내각의 곳곳에 보인다. 내각 개편은 무능 판정을 받은 각료를 과감하게 퇴출하고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는지를 측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70% 안팎을 넘나드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장관과 정책의 지지도는 국무총리실의 업무평가와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위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부처에는 인재 풀을 대폭 넓혀 모두가 인정하는 유능한 인사를 발탁해야 한다. 혼란스럽고 모순이 드러난 일부 경제정책은 종합적이고도 정교한 수술이 필요한 부위다. 외교·안보와 남북관계 외에는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분야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약간 더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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