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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블랙 호크 다운’과 세월호 특별법 개정

 1993년 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미군 블랙 호크 61 헬기가 적진 한가운데서 격추된다. 군벌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반정부 무장세력의 로켓포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디드 군벌이 굶주림에 시달리던 소말리아 국민을 위한 유엔의 구호품마저 가로채는 등 만행의 도를 넘자, 미군은 유엔 다국적군과 함께 토벌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구출작전 도중 또 다른 블랙 호크 64 헬기가 민병대의 공격을 받고 추락한다. 미 육군의 특수부대 델타포스 저격수 2명이 헬기 추락지로 접근하다 민병대에 사살되고, 헬기 조종사 마이클 듀란트는 생포된다. 그러자 미국은 생포 병사를 구조하고, 전사자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더 많은 희생자를 낼 각오를 하고 특수부대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이 작전으로 애당초 헬기 추락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19명의 병사가 희생된다. 전사자 19명은 베트남전 이후 미군이 수행한 단일 전투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였다. 엄청난 대가를 치른 이 사건은 미국의 대외 개입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다.

                                                                           

                                                         <영화 블랙호크다운의 한 장면>


 이 사건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킨다. 적진에 고립된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 다수가 죽더라도 구조대를 보내야한다는 결정은 비합리적인 생각인가를 묻는다. 실제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이 사건이 발생한지 5년 뒤인 1998년에 탄생했다. 이 영화가 닐랜드 형제의 실화에 근거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오마하 해변 전투 장면에서 상상력을 발휘한 산물이라지만 말이다.


 픽션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4형제 중 3형제가 전사하자 4형제 모두 죽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미국 대통령의 명령 아래 이 집안의 막내인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나선다는 이야기다. 작전 참여병사 일부가 한명을 구하기 위해 여러 목숨을 거는 일을 탐탁지 않게 여겼듯이 합리적으로만 생각하면 무모한 작전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부대원 8명 역시 한 가정의 귀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사건도 2001년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이라는 영화를 낳는다.

 ‘블랙 호크 다운’ 사건과 ‘라이언 일병구하기’는 세월호 참사에 투영돼야할 교훈적 사례다. 침몰 당시 구조 활동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에도 여전히 교과서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박근혜 대통령이 예산 핑계를 대면서 특조위 기간 연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자, 특조위 활동을 사실상 오는 6월말로 강제 종료시키기 위한 정부 관련부처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관가와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 도둑’으로 모는 인물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됐으니 기대난망이 더욱 우려된다. 특조위 활동 기간 연장 특별법 개정에 반대하는 정부와 새누리당은 민생과 경제살리기를 이유로 들지만, 박 대통령의 심기관리가 먼저일 뿐인 듯하다. 휴머니즘과 당위성은 뒷전이다.


 정부는 그동안 세월호 참사조사 예산을 삭감해왔던 것은 물론, 관련 자료 제출도 소극적이거나, 때로는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정부와 여당이 고의로 방해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왔다. 일부 관변단체나 인사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를 침몰시키라고 지시를 한 적이 있느냐’는 몰상식적인 주장까지 하는 걸 보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9·11 테러조사위원회 예산이 160억 원이었다면서 세월호 특조위 예산 369억 원이 말이 되느냐는 논리도 등장한다. 그렇다면 세월호 특조위도 ‘9·11 테러조사위’가 그랬듯이 대통령까지 당연히 조사해야 한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아야 한다. 당시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은 눈에 띌만한 잘못이 없었지만, 박 대통령은 ‘의문의 7시간’이라는 원죄까지 안고 있다.

 

  정부·여당의 방해로 늑장 구성된 조사위의 기간 연장이 당연함에도 이를 정략으로 몰아가는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의 하나다. 일부에서 ‘조사할 만큼 했는데 뭘 더 한단 말이냐’며 여론을 호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는 것은 예산타령과 바꿀 수 없는 의미를 함축한다. ‘블랙 호크 다운’이 소중한 병사들의 목숨을 담보했듯이 결코 무의미한 예산 낭비가 아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