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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브렉시트의 정치적 교훈

 영국 유권자들이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선택한 순간, 먼저 떠오른 것은 대니얼 앨트먼의 예견이 현실로 나타나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이익만 노린 정치 지도자들의 포퓰리즘이 불러오는 치명적인 패착이다.


 뉴욕대 교수인 앨트먼은 이미 5년여 전 유럽연합(EU)의 붕괴를 점쳤다. 앨트먼은 당시 ‘10년 후 미래’(원제: Outrageous Fortunes)라는 저서에서 EU 붕괴와 더불어 중국의 몰락, 미국의 부활을 예견했다. 이 책은 많은 전문가들의 미래예측과 상당부분 견해를 달리하는 것이어서 주목도가 높았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앨트먼이 영국 정부의 경제자문위원을 맡아 이민, 범죄 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정책 조언을 해왔다는 이력을 보면 그의 통찰력이 새삼스럽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여파를 낳고 있는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결과는 정치적 도박을 시도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부터 쪽박신세로 만들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 지구적 비난의 화살을 맞아 역사적 죄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럽연합 탈퇴 문제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었던 캐머런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승부수를 던졌다가 치명상을 입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연상하게 한다. 캐머런이 투표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오세훈 전 시장이 무모하게 주민투표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제발등을 찍고 중도 사임한 사례와 매우 흡사하다.


 198년 만에 43세 최연소 영국 총리로 당선된 캐머런은 45세 때 최연소 민선서울시장이 된 오세훈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 우선 국민(주민)투표로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 했던 점이 같았다. 당론이 일치하지 않음에도 민감한 현안을 무리하게 투표에 부치는 선택을 해 자신은 물론 소속 정당에도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오세훈은 자신의 사퇴에 그치지 않고 새누리당이 서울시장직을 지금까지 야당에 내주게 만들었다. 박원순 현 서울시장은 사실상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탄생시켰다지만, 오세훈의 작품이나 다름없다. 오세훈은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과잉복지를 지적하는 역사의 상징’이기를 바란다는 퇴임사를 남겼으나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오세훈은 자신과 당에 누를 끼치는 정도에 그쳤으나, 캐머런은 국가의 쇠퇴를 염려할 정도로 큰 충격을 불러왔다. EU에 남고 싶어 하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독립할 가능성을 높여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을 작은 ‘잉글랜드’로만 생존할 위기에 빠뜨렸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은 지중해 연안 전략 요충지인 지브롤터도 돌려줘야할 개연성이 짙어졌다. 


 캐머런 총리는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이 인기를 얻으면서 EU 탈퇴 요구가 커지자 2015년 선거판을 뒤집기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공약을 꺼내들었다. 승부수가 통했는지 작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해 캐머런은 총리 자리를 지켰다. 당시에는 캐머런 총리라면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당내에서 다수였고, 여론조사도 다소 우세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민자에 대한 불만과 반EU 정서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결과적으로 포퓰리즘 정치 폐해의 모범사례로 남게 됐다. 국민투표는 극단적인 국론분열을 부채질해 EU 잔류를 호소하던 야당 의원의 피살사태까지 낳았다. 캐머런은 총선 승리 이후라도 공약이 섣불렀음을 국민에게 솔직히 사과하고 과감하게 거둬들였어야 했다.

                                                                                    


 영남신공항 파동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나라를 두 동강낸 반면교사의 사례다.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처럼 철석같이 공약했다가 통제가 불가능해 보이자 외국 용역업체의 힘을 빌려 ‘중고상품’을 ‘신상품’이라고 미봉하고 말았다. 


 영국이나 한국 모두 미래를 보는 혜안이 없고 국민 통합의 능력과 의지가 부족한 정치 지도자가, 정치적 타산에만 눈이 어두워 논란의 여지가 큰 국가적 현안을 무리하게 다루는 바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흔을 깊게 새겨 놓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정치 지도자가 역사의 흐름을 통찰하는 예지와 국가적 쟁론 현안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단숨에 국력쇠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이 되고 남는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