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은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확연하게 시사해 준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가 함께 쓴 이 책은 포용적 정치·경제제도를 갖춘 나라만이 국민 전체가 번영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노갈레스’라는 도시와 남북한이 대표적인 실례로 꼽힌다. 원래 하나의 도시였던 노갈레스는 남북한처럼 미국 땅과 멕시코 땅으로 갈라졌다. 멕시코 영토였던 노갈레스는 1853년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현재의 애리조나 주와 뉴멕시코 남서부를 사들이면서 미국 땅과 멕시코 땅으로 나눠지고 말았다.
두 도시의 주민은 남북한처럼 조상과 문화가 같다. 하지만 두 도시는 지금 사뭇 달라졌다. 미국 쪽에 속한 애리조나 주 노갈레스 주민의 연평균 소득이 3만 달러에 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멕시코 소노라 주 노갈레스 주민은 연평균 소득이 미국 쪽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미국의 노갈레스 주민은 전기, 상수도, 도로망, 교육·의료시설 같은 사회간접자본과 복지제도가 잘 갖춰지고 법질서도 확립된 환경에서 살아간다. 반면에 멕시코의 노갈레스 주민은 생활형편이 곤궁한 것은 물론 도로, 보건 환경이 엉망이고 영아 사망률과 범죄율도 높은 상태다. 이곳 성인 대다수는 고교 졸업장이 없으며, 청소년의 상당수가 마약과 범죄에 찌들어 산다.
갈라진 두 도시가 이처럼 큰 격차를 드러낸 것은 온전히 제도적 차이 때문이다. 미국 쪽 노갈레스가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를 지닌 것과 달리 멕시코 쪽 노갈레스는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나라의 실패는 지리적 위치나 문화·종교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가로막는 정치·경제제도에 근본원인이 있다는 게 두 학자의 탁월한 연구 결과다. 두 도시의 경우를 남북한과 비교해도 꼭 같다.
여기까지라면 우리가 이 책에서 더 이상 교훈을 얻을 게 없다. 오랫동안 사실상 교착생태에 빠진 우리 사회의 발전 속도가 본궤도에 오르려면 지금보다 한결 포용적인 정치·경제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두 학자는 분명하게 제언한다.
한국이 북한보다 포용적 정치·경제 체제로 이행한 사례의 하나이긴 하지만, 아직 제대로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이들은 판단한다. 이들은 정경유착으로 정치적 부패가 엄존하고, 정치인들의 권모술수가 난무한다는 점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성숙한 선진국에 비해 포용적 제도가 뒤떨어져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 노갈레스와 멕시코 노갈레스를 가르는 국경지역>
권력 실세와 관료들의 끊이지 않는 부패 스캔들과 자기 혁신보다 권력 로비에 사활을 거는 듯한 기업인들의 행태는 여전히 수탈적 제도의 잔재가 득세하고 있다는 증좌다. 게다가 어렵사리 쟁취한 민주주의는 최근 두 보수정권 동안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들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비민주적 행태가 호기를 부리고 있다. 국민 대통합은커녕 철저히 편을 갈라 한쪽 진영만 독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풍토에서는 포용적 제도가 설 자리가 없다.
경제 민주화를 공약하고 당선된 대통령이 이를 내팽개치는 듯한 모습은 포용적 경제제도의 혁신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재벌 후손들이 내부 거래를 통해 땅짚고 헤엄치듯 부를 축적하고, 갑질횡포를 일삼은 현실은 수탈적 경제제도의 잔영을 그대로 보여준다. 선진국과 달리 창업으로 대기업을 만들기가 어렵고, 유망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힘든 풍토도 마찬가지다. 이는 법과 제도가 포용적 경제체제와 거리가 멀다는 방증이다. 포용적 경제는 단순한 자유시장경제를 넘어 누구에게나 공평한 제도의 시행과 경쟁 환경이 명실상부하게 보장돼야 실현할 수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뒷걸음질 친 나라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한층 진전된 포용적 정치·경제체제를 갖춰야 한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포용적 정치제도가 있어야 가능하다. 임기 절반을 지나고 있는 대통령과 집권여당 지도부가 4대 개혁 차원을 뛰어넘어 국가 장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지도자가 돼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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