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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케티 코티와 네덜란드, 그리고 일본

 해마다 6월말과 7월초면 네덜란드에서는 ‘케티 코티’(Keti Koti)라는 말이 어김없이 인터넷 인기검색어에 오른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7월1일이 네덜란드가 식민지로 지배했던 남미 수리남의 ‘케티 코티 국경일’이어서다. 이날이 되면 수리남은 물론 2009년부터 네덜란드 전역에서 ‘케티 코티 페스티벌’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날은 수리남인들의 노예해방일이다. ‘케티’는 ‘사슬’, ‘코티’는 ‘끊다’는 뜻이다. ‘케티 코티’라는 말이 상징하듯 여기에는 식민지 수리남의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악명 높은 네덜란드 농장주 부인에게 잔혹하게 희생된 흑인 노예여성 ‘알리다’의 일화는 치를 떨게 만든다.

 

  18세기 후반 대형 플랜테이션 경영주 스토커트 프레데릭의 부인이었던 수잔나 뒤플레시는 미모가 빼어난 미혼 노예 알리다가 남편의 눈길을 끄는 것이 못마땅했다. 알리다는 다른 여성노예들처럼 전통적으로 윗옷은 입지 않고 집안일을 했다. 어느 날 뒤플레시는 알리다의 한쪽 젖가슴을 도려낸 뒤 요리로 위장해 뚜껑이 있는 은빛 접시에 담아 남편의 식탁에 올려놨다. 많은 피를 흘린 알리다는 곧 죽음을 맞았다. 뒤플레시는 노예의 아이가 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익사시켜버릴 정도로 끔찍한 성격을 지녔다.

                                                                                           

                                                              <수리남의 케티 코티 국경일 축제>


 이 사건이 일어난 후 알리다는 흑인 노예여성들에게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미스 알리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 농장을 탈출하는 노예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수리남 사람들은 농장을 탈출해 정글 속으로 들어가 자유를 누리며 아프리카 전통방식으로 사는 노예들을 ‘마룬’이라고 불렀다. 마룬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수리남 전체인구의 15%나 차지했다. 수리남은 1991년부터 매년 케티 코티 바로 전날 ‘미스 알리다’를 뽑는 행사도 연다.


 당시 수리남에서는 ‘코토미시’라는 특이한 옷까지 나왔다. 코토미시는 최대한 ‘뚱뚱하고 추레하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게 공통심리임에도 오죽하면 못생겨 보이도록 옷을 입었을까.

 

   이 사실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많은 흑인 여성이 성적 노리개로 희생됐는지 가늠하고 남는다. 수리남의 여성 노예들은 17세기부터 노예제가 폐지될 때까지 200년 동안 코토미시를 입었다. 수리남에서는 그 때를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케티 코티 국경일’이 되면 많은 여성들이 코토미시를 입고 거리를 행진한다.

                                                                                          

                                                                           <코토미시 복장 여성들>


 네덜란드가 수리남의 케티 코티 국경일을 따라 자국에서도 페스티벌을 열기 시작한 것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 차원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도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다. 이제 다민족 사회가 된 네덜란드에서 상호 이해와 존중을 위한 마당으로도 활용된다. 가장 큰 규모로 페스티벌이 열리는 암스테르담 오스테르 공원에는 노예추념비가 세워져 있다. 2013년 암스테르담 트로펜박물관 추념물에는 1만1천명이 넘는 노예 희생자 이름이 새겨졌다.


 흔히 1,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만 과거사 반성의 모범사례로 알려져 있지만, 네덜란드도 식민지 시절의 과오를 반성하고 젊은 세대가 잊지 않도록 가르친다. 얼마 전 영국도 식민지 인도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 동상을 국회의사당 앞에 세워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코토미시 인형>


 이에 비하면 식민지배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을 겸한 일본은 종전과 식민지배 종식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반성회피전략으로 온갖 잔꾀를 들이대기에 바쁘다. 근대화의 상징인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유적 등 23개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강제노역을 인정하기로 명기해놓고도 그런 뜻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일본의 간계(奸計)가 네덜란드의 자세와는 너무나 동떨어진다.

 

  네덜란드는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난학(蘭學)이란 이름 아래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나라다. 아베 일본총리는 오는 8월15일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도 성노예 역할을 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반성문구를 포함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언론에 흘린다. 같은 선진국이면서도 나라의 품격이 이렇게 다르다. 일본이 거짓 홍보·외교전으로 곤경을 벗어나려고 약은 수법을 쓰고 있지만, 자신들의 잔악행위를 영원히 묻어버릴 수는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