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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정상의 비정상화’다

 세계 민주주의의 전범(典範)이 되고 있는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국민 교육의 전부나 대부분을 국가가 장악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교육의 다양성을 주창했다. “전체적 국가 교육은 오직 국민을 틀에 집어넣어 서로 너무나 흡사하게 만들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국가가 국민을 정형화하는 틀은, 결국 국가권력을 장악한 우월한 세력-군주건, 승려 계급이건, 귀족 계급이건, 현재 대중의 다수파이건-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교육이 효과와 성공을 거두면 거둘수록 국민의 정신에 대한 압제가 확립되며, 그 압제는 자연의 추세로서 국민의 육체에 대한 압제를 유발한다.”


 밀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자유론’을 출간한 게 1859년이니, 조선 철종 때 통치이념인 성리학과 유교 윤리를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교재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목판본을 편찬·간행하던 시절이다.


 밀의 ‘자유론’은 대한민국 헌법의 바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헌법에 담긴 수많은 자유 개념이 사실상 ‘자유론’에서 출발했다. 교육관련 조항인 헌법 31조 4항에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됐다.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자유론’의 정신에만 비춰 보면 어렵잖게 결론이 난다. 황우여 교육부장관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제기한 이후 역사학계와 진보·보수 언론이 한결같이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있음에도 새누리당은 끊임없이 불을 지피고 있다. 일요일인 13일에는 이장우 대변인까지 나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거듭 요구했다.


 역사교과서는 이승만 정부수립 이후 지금보다 좌우대립이 더 심각하던 시절에도 검정 체제이던 것을 박정희 군사정권이, 그것도 유신체제 들어 1974년 체제 정당성 강화와 획일화된 교육을 위해 국정화한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 유신시대 국사 교과서는 ‘5·16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자 ‘4·19 의거의 계승·발전’이라고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10월 유신’이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라고 꾸며댔다. 게다가 전두환 군사정권 시대에는 ‘정의로운 사회 구현과 민주복지 국가로의 발전을 목표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고 미화했다.

                                                                                                    


 2007년부터 검정 체제로 돌아간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늘 강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1992년 국정 교과서가 위헌은 아닐지라도 국정이나 검인정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오히려 헌법정신에 맞다면서 헌법 31조 4항을 근거로 들었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일부 보수진영의 논리도 설득력이 없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국력을 모을 수 있다는 논리는 군사정권이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펴던 논거와 똑같다. 검정 교과서로 다양한 역사관을 가르쳤던 서독이 국정 교과서를 가졌던 동독을 끝내 이긴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역사 교과서가 국정으로 전환되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역사 서술이 달라질 우려가 크다.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면 무조건 ‘친북’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풍토에서는 순전히 정치적 이득을 위한 국정화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념 편향성 논란은 검정체제에서도 권위 있는 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토론을 통해 수렴할 수 있는 문제다.  

                                                                                                       


 소수의 나라만이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만 봐도 국정화는 교과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제적 흐름에서 퇴행하는 일이다. 한국이 국정 교과서로 돌아가면 우리와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검정 ‘극우 교과서’를 비판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중국 인민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역사는 유구히 흘러 영원히 남는 것이어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일본을 비판했지 않은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부터 ‘러시아사 국정화’를 추진해 ‘국민을 세뇌한다’는 국제적 비난에 직면했던 일도 떠올려 보라. 만약 박근혜 정부가 무리하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더라도 정권이 끝난 뒤 원위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