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는 야릇한 그림 한 폭이 관람객을 맞는다. 한 노인이 젊은 여성의 젖가슴을 빨고 있는 모습은 언뜻 외설적으로 보인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낯 뜨거운 장면에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이 그림의 진실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로마식 자비심’(Roman Charity·부제 Cimon and Pero)이란 제목의 이 그림에는 눈물겨운 효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 ‘페로’라는 효녀가 있었다. 늙은 아버지 ‘키몬’이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이다. 죄를 지은 키몬에게 청천벽력 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아무 것도 주지 말고 굶겨 죽이라는 잔혹한 형벌이었다. 딸은 서슬 퍼런 감옥의 간수 때문에 물 한 모금도 아버지에게 들여보낼 수 없었다. 페로는 나날이 쇠약해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고심 끝에 페로는 야릇한 꾀를 낸다.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자기 젖을 물리기로 작정한다. 때마침 페로는 아이를 낳아 젖이 나던 상태였다. 죽음의 문턱을 오가던 아버지는 면회 때마다 몰래 젖을 먹인 딸의 정성으로 살아났다. 딸의 효성을 보고 감동한 간수들과 이 소식을 전해들은 로마 법원은 아버지를 석방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펴낸 로마 야사 ‘고대 로마인들의 기념할 만한 행위와 격언들’(Nice Books of Memorable Acts and Sayings of the Ancient Romans)에 실린 일화다. 이 그림은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이 유명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화폭으로 옮긴 것이다. 서양화가로서는 최초로 ‘한국인’(한복 입은 남자·Korean Man)을 그렸다는 바로 그 루벤스다.
루벤스의 그림 ‘로마식 자비심’(키몬과 페로)
잇달아 무죄를 선고받은 간첩혐의 탈북자들도 편견을 벗어나 진실을 알면 다르게 보이는 사례의 하나다. 추석 연휴 바로 전날 이른바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홍 모 씨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가정보원의 증거조작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서울시 탈북자 공무원 간첩사건’의 유우성 씨에 이어 두 번째다. 법원은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자백은 적법하지 않은 증거’라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사법부가 국정원과 검찰의 편의적이고 위법적인 수사관행에 연이어 정면 제동을 건 것이다.
범죄 혐의자에게 진술 거부권과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간첩수사기관인 국정원과 검찰은 최근 들어 법원이 형식적 절차 위반을 문제 삼는 것은 대공수사를 무력화하는 일이라고 항변한다.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보수언론은 구속기소 당시와는 달리 비중을 턱없이 낮추거나 마뜩찮은 반응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국정원과 검찰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번번이 당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08년 합동신문센터 개소 이후 12명의 탈북자가 위장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례 때문인 듯하다.
<벨기에의 과거 교도소 '키몬과 페로' 조각상>
일만 터지면 ‘종북’ 논리를 들이대는 많은 노년층은 수상한 사법부가 간첩 척결에 훼방을 놓는다고 왜곡된 인식을 보이기도 한다. 본질과 편견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실 외면에 그치지 않고 사실을 조작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것은 부모 자식 간의 윤리에 어긋난다고 고지식하게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행위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보기관이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공수사를 벌인다는 의심을 더 이상 받아서는 곤란하다. 그렇잖아도 심각한 정치적 중립성 위반으로 국가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국정원과 검찰이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면 안 된다’는 법언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불행한 현대사에서 간첩사건이나 내란음모죄, 시국 사건이 조작으로 말미암아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던 사례를 너무나 자주 보아왔다. 국제적으로도 인권 퇴보국가라는 오명이 날이 갈수록 덧칠해지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 ‘로마식 자비심’(키몬과 페로) 그림은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외에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미술관을 비롯한 몇몇 미술관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루벤스의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프랑스 화가 장 밥티스트 그뤼즈는 루벤스의 그림을 바탕 삼아 다른 버전의 ‘키몬과 페로’를 그렸다. 회화 외에 조각 작품도 많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부다페스트 박물관 같은 곳은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루벤스의 조국인 벨기에 겐트시에 있는 과거 교도소 직원 숙소에도 커다란 ‘키몬과 페로’ 조각 작품이 있다. 1741년부터 1902년까지 교도소로 운영된 이 건물은 2002년부터 겐트시 옴부즈맨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키몬과 페로’의 다양한 버전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유럽을 휩쓸고 있을 당시 ‘여체’와 ‘성’을 예술로 표현하고 싶었던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16~18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했다. 당시에는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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