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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일본의 극우, 한국의 극우

  올해 노벨 평화상 발표를 보고 속으로 가장 기뻐한 사람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아닐까 싶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9조’가 탈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가 공표한 수상 예측 리스트에 ‘일본 헌법 9조’가 1위에 올라 아베 총리는 내심 걱정이 태산 같았을 게다.

 

   ‘일본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국민’이 평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면 아베 총리가 떨떠름한 마음으로 시상식에 참석해야 했을 것이다. 헌법 9조 개정을 공약으로 내건 아베가 집권하자 ‘헌법 9조 노벨평화상 수상 운동’을 처음 시작한 한 일본 전업주부가 그를 대표 수상자로 찍어서다.

                                                                                            


 ‘일본 헌법 9조’가 예상 후보 1위에 오른 데에는 이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한 아베의 극우 노선에 대한 세계인의 우려와 경고가 담겨 있었다. 아베가 헌법 9조 해석을 바꿔 ‘전쟁도 가능하다’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 발표한 날 저녁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열린 반대 시위에는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에 빗대 그의 얼굴에 콧수염을 붙인 사진이 등장했다.


 헌법 9조에는 평화를 지키려는 의지뿐만 아니라 일본이 지난날 저질렀던 잘못을 인정하고 자성하는 뜻이 들어 있다. 하지만 아베는 이달 초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이 국가적으로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근거 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외면했다.

                                                                                         


 아베 정권은 역사 왜곡과 침략전쟁 범죄 부정에 그치지 않고 극우세력의 혐한(嫌韓)과 반한(反韓)을 은근히 부추긴다.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라는 단체는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부당한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위협도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이를 표현의 자유라는 핑계로 방관하고 있다. 재특회의 만행은 미국 국무부까지 비판할 정도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이 같은 일본의 극우 행태를 비난하지만, 욕하면서 닮는 꼴이다. 최근 보수단체들의 일탈행위는 일본의 극우와 다를 바 없다. 극우단체인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는 마치 시계를 60여 년 전 이승만 정부 시절로 돌려놓은 듯하다.

 

  이들은 서울 광장에 있는 노란리본 철거를 시도한 것은 물론 “안두희 씨가 김일성의 꼭두각시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라는 망언까지 퍼부었다. 그것도 문제의 극우성향 온라인사이트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 올린 글에서다.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들이 1946년 서울에서 결성한 서북청년단은 공산주의자라고 추정되는 이들에게 막무가내로 무차별 공격을 가한 것으로 악명 높다.

                                                                                        

                                              <일본헌법 9조 노벨평화상 수상 운동을 벌이는 전업주부 다카스 나오미>


 일베 회원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는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태연스레 ‘폭식행사’를 벌였다. ‘망나니짓을 해도 금관자 서슬에 큰기침한다’는 속담 그대로다. 일본 재특회와 다를 게 없다. 더욱 딱한 건 이런 일베를 비호하는 글을 쓰는 교수와 그 글을 실어주는 주류 언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엄마부대 봉사단’이라는 단체가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며 “누가 배 타고 놀러 가라 했느냐” “죽은 아이들이 의사자냐”며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은 약과인지도 모른다. 이 엄마부대봉사단 대표도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 멤버라고 한다. 어버이연합 같은 단체들이 유가족 단식 농성장으로 들이닥쳐 난동을 부리는 일도 이와 유사한 행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정부나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조건 ‘종북’ 딱지를 붙이는 수상한 풍조도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극우단체들의 준동은 박근혜 정부 들어 한층 격렬하다. 아베 정부에서 유난히 그렇듯이 말이다. 정부의 각종 정책과 인물 기용이 극우 성향을 띠고 있는 점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군사정권시절의 공안세력이 정권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탓도 크다. 


 현 정부에선 국민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의 기관장에 극우 뉴라이트들을 유독 많이 기용했다. 일본의 ‘자학사관 극복’과 흡사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게 뉴라이트다. 우리 사회의 극우세력은 50대 이상의 고령층에 주로 분포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일부 젊은 층이 가세하는 현상이 두드러져 염려스럽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극우세력의 기도는 웃픈 비극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