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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32)--<상호부조론>(만물은 서로 돕는다);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디지털 선지자’로 불리는 미래학자 돈 탭스코트는 2012년 6월 유명한 TED 강연에서 인터넷이 선도하는 미래를 흥미롭게 갈파했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개방성은 세상이 협동, 공유, 투명성, 권력 분산이라는 네 가지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게 요지다. 진보는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집단 지성의 마법을 역설한 이 강연은 끝부분의 철새 동영상과 이야기가 감동을 더해준다. 수천 마리가 무리지어 날아가는 찌르레기 떼는 상호협력적인 신호체계에 따라 움직인다. 이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적을 함께 물리치고 날아가는 방향도 협의를 거쳐 결정한다. 찌르레기 떼에 리더십은 있으나 지도자는 따로 없다.


  이 이야기는 110여 년 전 러시아 지리학자이자 아나키스트 혁명가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이 명저 ‘상호부조론’(원제: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한국어 번역서 ‘만물은 서로 돕는다’)에서 주장한 동물세계의 원리 그대로다. 크로포트킨은 다윈주의자들이 역설하는 생존경쟁보다 상호부조가 인류와 동물세계의 진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요인이라는 메시지를 이 책에 담아냈다. 크로포트킨은 협력과 연대에 기초한 상호부조가 인류의 문명과 동물의 세계를 이끌어온 힘이라는 점을 동물학, 역사학, 인류학의 해박한 지식으로 입증한다.


   크로포트킨은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지닌 영국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의 논문에 자극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됐다. 헉슬리가 다윈의 핵심적인 사상보다 용어 몇 개를 가져다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사상에 과학적인 외피를 입힌 사람이라고 크로포트킨은 믿었다. 헉슬리는 1888년 ‘19세기’라는 잡지에 논문 ‘인간사회에서의 생존경쟁’을 발표한다. 헉슬리는 이 논문에서 동물의 세계를 검투장에 비유했다. “그 싸움에서는 가장 강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교활한 자가 살아남아 또 다시 싸운다. 어차피 살려주는 것이 아니기에 관객은 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죽이라고 표시할 필요조차 없다.” 헉슬리는 이 논리를 인간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해 사회진화론적 해석을 시도했다. “삶은 자유경쟁의 연속이다. 한정적이고 일시적인 가족관계를 넘어서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이라는 토머스 홉스의 이론에 따른 투쟁이 존재의 일상상태다.”

                                                                                                


  크로포트킨은 1883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한 죄목으로 5년 금고형을 언도받고 프랑스 클레르보 감옥에 갇힌다. 그는 혁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동안 미뤄뒀던 ‘종의 기원’ 문제를 이 때 되짚어보게 된다. 당시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대 학장이던 칼 케슬러의 논문을 우연히 읽게 됐다. 캐슬러는 1880년 1월 러시아 박물학자 대회에서 발표한 ‘상호부조의 법칙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원고를 통해 종의 생존과 진화에서는 생존경쟁의 법칙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호부조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논파했다. 케슬러는 이 논문을 정교하게 가다듬지 못한 채 몇 달 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크로포트킨은 1888년 클레르보 감옥에서 석방된 지 한 달 뒤에 나온 헉슬리의 논문 ‘인간사회에서의 생존경쟁’을 읽고 나서 반박논문을 준비했다. 그는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1890~1896년 같은 잡지에 상호부조에 관한 논문들을 잇달아 실어 헉슬리를 논박했다. 이 논문들을 모아 1902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상호부조론’의 1차 목표는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주장한 생존경쟁 개념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다윈 추종자들은 생존경쟁이라는 개념을 가장 협소하게 제한해버렸다. 그들은 동물의 세계를 반쯤 굶어 서로 피에 주린 개체들이 벌이는 끝없는 투쟁의 세계로 여기게 되었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근대의 저작물들은 정복당한 자의 비애라는 슬로건을 마치 근대 생물학의 결정판인양 퍼뜨렸다. 이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무자비한 투쟁을 인간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생물학의 원리로까지 끌어올렸다.”


   크로포트킨은 ‘종의 기원’을 접한 뒤 시베리아와 만주 일대를 탐험하면서 생존경쟁에 관한 자료를 수집한 적이 있었다. 미지의 땅을 탐험하며 그가 경험한 것은 동물들의 치열하고 냉정한 생존경쟁이 아니라 서로 돕고 의지하는 상호부조였다. 그는 곤충과 조류,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들은 종의 경계까지 넘어선 상호부조를 통해 자연이 주는 혹독한 시련을 넘겨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개별적인 투쟁을 최소화하는 대신 상호부조를 최고조로 발전시킨 동물 종이야말로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며 가장 번성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관찰 결과다. “공동체의 어느 구성원이든 먹이를 달라고 요청하면 나눠주는 것이 개미에게는 의무이기도 하다.” “작은 티티원숭이들은 비가 오면 떨고 있는 동료의 목을 자신들의 꼬리로 감싸주면서 서로 보호한다. 몇몇 종들은 부상한 동료들을 끔찍하게 배려하고, 퇴각하는 동안에도 죽었거나 살려낼 희망이 없다고 확인될 때까지 부상한 동료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크로포트킨 초상화>


  크로포트킨은 인간사회에서 상호부조가 형성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붕괴되는 과정까지 꼼꼼히 추적했다. 그는 원시사회의 상호부조를 설명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포틀래치를 언급한다. 이들 아메리카 원주민은 공산제를 기반으로 했지만 유럽의 영향을 받은 몇몇 원주민들은 사적 소유를 인정했다. 이들은 지나친 부의 축적이 부족의 단합을 깨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부작용을 방지할 방안으로 포틀래치를 시행했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면 씨족 사람들을 성대한 잔치에 불러 모아 실컷 먹인 뒤 전 재산을 모두에게 나눠준다. 그 뒤 잔치 때 입었던 옷을 벗고 낡은 털옷으로 갈아입고는 누구보다 가난해졌지만 우정을 얻게 됐다.”


  크로포트킨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스페인, 동유럽 등 유럽 전역의 농촌에서 공유제가 존재한다는 점도 눈여겨봤다. 민회가 공유지를 관리하고 촌락공동체가 폭넓은 자치권을 소유하는 스위스를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한다. 당시 스위스에서는 관습적인 상호부조만이 아니라 협동조합을 통해서도 근대적인 다양한 요구들이 충족되고 있었다. 


  크로포트킨은 생존경쟁이 없다는 게 아니라 생존경쟁 외에도 상호부조라는 원리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모두에 맞선 각자의 전쟁은 자연의 유일한 법칙이 아니다. 상호투쟁만큼이나 상호부조 역시 자연의 법칙이다.” “진화의 한 요인인 상호부조는 어떤 개체가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종이 유지되고 더 발전하도록 보증해 주면서 그런 습성과 성격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어쩌면 상호투쟁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다.” 그는 상호부조와 개인의 자기주장을 진보의 두 요인으로 꼽는다.


   그는 “중앙집권국가의 파괴적인 권력도, 고상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과학의 속성으로 치장해 만들어낸 상호 증오와 무자비한 투쟁이라는 학설도 인간의 지성과 감성에 깊이 박혀 있는 연대의식을 제거할 수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크로포트킨은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한 과학자답게 사변적인 형이상학이나 관념론에 빠지지 않고 자연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했다.


  ‘상호부조론’은 운동의 형태로만 존재하던 아나키즘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해 준 최초의 연구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아나키즘은 ‘과학적 사회주의’로 불리는 마르크스주의에 맞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나키즘은 동양에서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고, 무질서한 혼란 상태나 극단적 테러리즘이 덧씌워졌다. ‘상호부조론’은 이러한 오해와 비난 속에서 아나키즘을 변호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무정부주의’란 말이 식민지해방운동에 가담한 아나키스트들을 이간질하는 데 쓰였다.

                                                                                                 


  19세기 이래 헉슬리와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강자의 약자 지배를 정당화해 제국주의 침략을 옹호하는 정치철학으로 이용된 반면,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은 피압박 개인과 민족의 해방을 위한 정치철학의 바탕이 됐다. ‘상호부조론’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려는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에게 응원서로 읽힌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동서 냉전이 격화하면서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졌던 아나키즘은 1960년대 들어 자본주의와 현실 사회주의가 모두 위기에 봉착하자 부활했다. 1968년의 세계적인 혁명 분위기는 ‘상호부조론’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념적 구분을 넘어서 기성체제에 저항하는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흘러넘쳐 1968년 전 세계의 거리를 장악했던 시위대는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과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동시에 내걸었다.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1980년대 말에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운동에서, 인간의 자연 지배를 비판하는 운동에 이르기까지 아나키즘의 상징인 검은 깃발이 펄럭였다.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이후 1% 자본주의를 비판하던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도 ‘상호부조론’과 맥이 닿는다.


 비슷한 시기에 ‘상호부조론’의 아나키즘은 생태주의, 대안공동체, 대안교육, 빈집점거운동, 반문화운동, 양심적 병역거부운동, 풀뿌리민주주의운동 등을 통해 소생했다. 크로포트킨의 사상은 지식의 공동소유까지 주장하는 아나코-코뮨주의로 이론화했다.


  그 사이 ‘상호부조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게 쏟아져 나왔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 유례없이 격렬해지자 이런 경향은 더욱 깊어져갔다. 많은 이들이 실질적으로는 상호부조에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국 인류학자 애쉴리 몬타구는 ‘상호부조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책 가운데 하나”라고 격찬한다.

                                                                         

  ‘상호부조론’ 못지않게 크로포트킨의 자서전도 세계적 명저로 꼽힌다. 그의 자서전 ‘한 혁명가의 회상’은 세계 5대 자서전 가운데 하나다. 5대 자서전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괴테의 ‘시와 진실’,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가 포함된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4년 7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