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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30)--<이중나선> 제임스 왓슨

 

 

 “우리가 생명의 신비를 밝혀냈소! 드디어 해냈단 말이오.” 1953년 겨울 끝자락인 2월 21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 근처 이글 식당에 단골 청년이 들어서자마자 들뜬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뒤따라 들어온 다른 청년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두 사람이 함께 발견한 사실이 중대하기 이를 데 없어 함부로 떠들어대면 위험부담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흥분한 청년은 서른일곱 살의 영국 분자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이고, 멀뚱멀뚱했던 청년은 갓 스물다섯 살의 미국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이었다. 이들이 바로 20세기 최고의 과학적 발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디옥시리보핵산(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학자다. 이 발견은 물리학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버금가는 생물학의 쾌거다. 이들의 발견은 엄청난 폭발력을 분출했다. 인간 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짐에 따라 전 세계에 DNA 연구 열풍이 일어났고, 생명과학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거듭했다.

 

   이들의 발견은 같은 해 4월 25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900단어 남짓하고 1쪽에 불과한 논문으로 발표돼 세상을 뒤흔들었다. ‘DNA의 이중 나선 구조 발견’이라는 제목의 이 짧은 논문은 두 사람을 최고 과학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여기에 DNA의 구조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구조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 그 논문은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마치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단서가 됐던 ‘로제타스톤’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썼다. 이들은 9년 뒤인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을 받은 지 6년 후인 1968년 왓슨은 DNA 구조 발견의 전말을 소설처럼 쓴 책을 단독으로 펴냈다. ‘이중나선’(원제 The Double Helix: A Personal Account of the Discovery of the Structure of DNA)이란 제목의 이 책은 마치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DNA 구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그리 많지 않다. 책에는 위대한 발견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뒷담화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왓슨은 연구 업적을 앞 다퉈 이뤄내기 위해 과학자들끼리 펼치는 치열한 신경전과 암투, 갈등, 속임수, 실패와 좌절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지은이 특유의 직설과 유머가 포개져 과학에 대한 재미까지 돋운다.

 

   이 책에는 연구에 대한 왓슨의 몰입과 집착이 남다르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영화 관람을 무척 즐긴 왓슨은 마음에 쏙 드는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DNA 모형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난방장치가 고장 난 기차에서도 DNA에 몰두했다. “추위에 떨던 나는 신문지를 덮었고, 그 여백에 낙서를 시작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DNA가 두 가닥으로 엮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는 훗날 노벨상 공동 수상자가 된 모리스 윌킨스가 자신의 누이동생 엘리자베스 왓슨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미인계를 꿈꿨다. ‘두 사람이 사귀면 윌킨스와 더불어 DNA에 관한 X선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을까’하고 상상하는 장면은 상식 수준을 넘어선 성취에 대한 집념을 보여준다.

 

   그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즐길 줄 아는 성격을 지녀 난관을 무리 없이 돌파한 것 같다고 털어놓으면서 과학자로서의 미래를 낙관한다. “과학자의 생활이란 게 지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퍽 재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책은 과학자로 성공하는 비결의 하나에 사교성이 포함된다는 걸 은근히 드러낸다. 왓슨은 뛰어난 두뇌, 성실, 신중을 강조하지 않았다. 왓슨은 남들이 자신을 돕도록 했다고 썼다.

 

    실제로 고독하게 연구실에 틀어박혀 실험만 하고, 너무나 뛰어나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거나, 젊은이의 창의력과 의욕을 무시한 사람은 경쟁에서 졌다. 반면 왓슨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 만한 사람에게 물었다. 경쟁자든, 자신들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다가가 정보를 얻고 의견도 구했다. 책에 동료 과학자들을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것과는 상반된다.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과정에는 전설적인 성공담만 있는 건 아니다. ‘이중나선’은 왓슨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책이지만, 동시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 저작이기도 하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왓슨은 글의 들머리에서 대뜸 공동연구자였던 크릭이 겸손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촌평하며 시작한다.

 

   왓슨은 결정학 분야의 선구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성격이 괴팍하고 데이터 분석능력이 떨어지는 여성학자로 묘사해 유족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프랭클린은 당시 가장 해상도 높은 DNA의 X선 사진을 찍었던 과학자다. 왓슨은 프랭클린이 킹스 대학 여성 휴게실의 열악한 환경에 불만이 많았고, 그런 사소한 일을 못 견뎌했다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프랭클린의 불만은 더 나은 휴게실을 제공받고 싶다는 차원을 넘어서, 여성 과학자 차별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프랭클린이 안경을 벗고 머리를 조금만 우아하게 손질하면 어떤 모습일지를 연상하는 대목에서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편견까지 드러난다. 프랭클린은 1958년 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1962년 왓슨과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연구업적을 쌓은 그의 공로가 파묻혔다. 왓슨과 크릭이 사실상 참고한 결정적인 실험 데이터는 윌킨스가 사적으로 보여준 프랭클린의 사진이었음에도, 이들은 공식적으로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책이 당초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출간하기로 했다가 취소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같은 서술에 대한 세간의 거센 비판도 있었다. 왓슨은 프랭클린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후기를 덧붙였다.

                                                                  

                                                  <DNA 이중나선 구조 모형>

 

 왓슨은 한참 뒤 인종 차별 논란에도 휩싸인다. 그는 2007년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생명과학에서 배우는 삶의 교훈들’이라는 또 다른 회고록을 냈다. 그는 이 책을 홍보하던 도중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아프리카 대륙 흑인들이 유전적으로 열등하다는 추론이 가능한 언급이었다. 이 때문에 79세의 나이에 43년간 일했던 연구소를 떠나야 했다. 그렇다고 독자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솔직함이 왓슨을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왓슨은 대학생 때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어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읽은 뒤 유전학의 비전을 알게 되고, 이때 과감한 진로 결정을 내렸다고 회고한다. 슈뢰딩거는 “생명현상은 최종적으로는 물리학 또는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DNA 이중나선 구조 모델은 오늘날에도 별로 고칠 것이 없다. 왓슨은 “이중나선에서 시작된 생명과학의 새로운 지식은 인류의 삶을 한 단계 진전시킨 강력한 힘이 됐다”고 자부한다. 지름이 10억 분의 1m도 되지 않는 DNA가 인류와 과학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흥분시킬만했다. 호박만한 토마토가 탄생한 것도, 유전자를 분석해 범인을 잡게 된 것도 모두 DNA 구조가 밝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전 정보의 흐름을 제시하는 이론인 센트럴 도그마, 돌연변이설, 인간 유전체(게놈)지도 완성 같은 현대 생물학의 중요한 개념과 사건이 모두 DNA 구조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됐다. 최근에는 1g에 DVD 50만장의 정보를 수록할 수 있는 ‘정보저장 DNA’가 개발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인간과 동식물의 유전자 구조를 해독해냄으로 암, 심장병, 당뇨, 혈우병 같은 치명적 질환에 대한 유전자 치료법이 가능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물론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건 아니다. ‘인간 복제’라는 도덕적 딜레마를 불러오기도 했다.

                                                               

                                                       <DNA이중나선 구조>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저자와 세상을 동시에 바꿔 놓았다. 왓슨 자신이 대중적인 스타 과학자가 된 것은 물론, 과학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관심을 유도한 공로가 지대하다. 왓슨처럼 글쓰기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왓슨은 이 작은 책으로 유전자 과학의 흥미진진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엄청나게 유명해졌고, 그 덕에 대중은 훨씬 더 과학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중나선’의 이중효과다. 이 같은 개인적인 유명세와 대중의 이해가 훗날 그가 인간유전체(게놈) 연구에 엄청난 예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 왓슨보다 12살 많은 공동 연구자 크릭이 더 비상한 통찰력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DNA구조 발견 이야기를 할 때 크릭보다 왓슨이 먼저 떠오르는 건 순전히 이 책 덕분이다. 보통 사람들은 왓슨만 기억한다. 그가 1990년대 게놈프로젝트의 기수로 미국 생물학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학자가 된 것은 연구업적뿐 아니라 이 책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왓슨이 더 각광받은 것은 이 책이 그를 인간미 넘치는 과학자로 인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란 견해도 있다.

 

  수많은 젊은 지성들이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몰려든 것은 오로지 이 책 때문이었다. 어린 독자들에게는 과학자를 꿈꾸게 만들었다. 과학계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오래도록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중나선’이 스테디셀러가 된 까닭은 장차 과학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과학자와 연구의 본질, 과학자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덕택이다.

 

  왓슨은 2007년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454라이프사이언시스가 인류 최초로 한 사람의 전체 유전코드를 읽어냈다. 그 유전코드의 주인공이 왓슨이었다. 크릭은 2004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분자생물학계의 성난 황소’라는 별명까지 얻은 왓슨은 여전히 건재해 이따금 언론에 오르내린다.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연구하면서 논문을 발표하고 있어서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4년 5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