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자네 책일세! 방금 뉘른베르크에서 도착했어. 완성되었네!” 그러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아주 느리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의 손은 거의 느낄 수 없는 힘으로 책을 지그시 눌렀다. 그는 몹시 애쓰는 목소리로 말했다. “완성되었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열락(悅樂)의 빛이 창백하고 야윈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완-성-되었어!” 그는 들릴듯말듯한 소리로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했다. 얼마 후 그의 머리가 갑자기 홱 떨어졌다. “돌아가셨습니다.” 방안의 누군가가 조용히 말했다. “죽다니? 아니야, 코페르니쿠스 같은 사람이 죽을 수는 없어! 그는 이 책 속에서 살아 있어!”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실/데이바 소벨, 웅진지식하우스)

 

 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폴란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과학혁명의 서막을 연 역작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원제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가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로 막 출간되던 1543년 5월24일 세상을 하직한다.

 

   책의 탄생과 저자의 죽음이 공교롭게 교차한 것은 숙명인지도 모른다. 과학 암흑기인 중세에는 조그마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열심히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이 무엄하기 그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회전한다는 우아하고 장엄한 성경의 세계관에 비기면 지나치게 ‘혁명적’이었다.

                                                                         

                                          <폴란드 크라쿠프대학에 있는 코페르니쿠스 동상>

                  

  코페르니쿠스는 이 책이 나오기 30여 년 전 지동설을 처음 떠올리고 20여 년 뒤 원고를 완성했으나, 종교계의 저항과 탄압이 두려워 출판을 꺼렸다.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의 언급은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에 대한 개신교계의 애절한 저항 가운데 하나다. “어떤 신출내기 천문학자가 이 하늘, 해, 달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것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이 바보는 모든 천문학을 반대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신성한 성경에서 이르기를 여호수아는 지구가 아닌 태양에게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였다.”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출간 당시 분위기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내용 자체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으로 가득하다. 수리천문학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지독하게 난삽한 천문서였기 때문이다. 천문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오언 깅거리치 전 하버드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이 책은 태양 중심 우주론을 다룬 첫 5퍼센트 정도는 ‘지적으로 즐길 수 있게’ 씌어졌으나 나머지 95퍼센트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전문적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는 구형이다’ ‘지구도 역시 구형이다’ ‘땅과 물이 어떻게 하나의 구체를 형성하는가’ ‘지구의 세 가지 운동의 증명’ 등을 통해 지구가 둥글고 움직인다는 걸 논증했다. 지구의 세 가지 운동설은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하며, 태양 주위를 1년에 한번 공전하고, 지구 축이 회전한다는 내용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사실을 다른 행성과의 관계 속에서 수학적으로 증명한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장했던 지구 중심 체계와 ‘지구-달-금성-수성-태양-화성-목성-토성’이라는 천체 순서를 부인했다. 태양 중심 체계에 따라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의 순서를 주장했다. 완벽한 구 모양을 띤 모든 천체들이 일정한 중심을 지니고 등속 원운동을 한다는 이론도 들어 있다.

 

  지축의 선회운동에 의한 세차 운동을 포함한 지구의 운동, 춘분점의 이동에 대한 수학적인 설명도 담았다. 달의 운동과 행성들의 경도 방향 운동, 행성들의 위도 방향 운동에 대해서도 증명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는 현대에 밝혀진 오류들도 있지만, 훗날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의 타원운동을 체계화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의 단점을 보완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더욱 정밀한 관측으로 지동설을 뒷받침했다.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 의해 마침내 지동설은 정설로 굳어지게 됐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관측 사실과 전통적 학설의 불일치 때문이었다. 새로운 천체관을 찾던 그는 고대 문헌으로부터 지동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됐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태양계 위성 순서>

 

   이 책에는 천문학적 내용 외에 교황과 교회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글들이 많이 담겨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이 책을 출판하며, 교회가 곤란해 하던 역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애써 강조한다. 그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에서 교회와 논쟁거리가 될 만한 내용은 모두 뺐다.

 

   코페르니쿠스의 서문과 교황에 대한 헌정사를 읽으면 이 책 곳곳에서 이단으로 몰리지 않으려는 과학자의 눈물겨운 고뇌가 엿보인다. 교회의 위협을 우려한 인쇄업자는 서문을 ‘이것은 하나의 가설이다’라고 바꾸어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루터파 교인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결정적인 이유는 코페르니쿠스가 가톨릭 사제였기 때문이다.

 

 저명한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아서 케스틀러는 ‘몽유병자들’(1959년)이라는 책에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역사상 가장 판매가 신통치 않은 책’이라고 낙인찍는 것으로 부족해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지나치게 어려웠던 탓이다. 사실 코페르니쿠스 스스로도 책에 모순되는 부분이 많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적지 않아 자신의 대작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거나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책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 초상>

    이를 염려해온 그의 유일한 제자 레티쿠스는 스승에게 책의 출판을 설득하기 위해 3년 앞서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을 소개하는 소책자를 펴낸다. 이 소책자는 은밀하면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이듬해 재판이 발행된다. 레티쿠스는 출판을 망설이는 스승을 아랑곳하지 않고 당대 최고의 인쇄업자인 뉘른베르크의 페트레이우스에게 최종 원고를 가지고 간다. 세상을 바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세상으로 나온다.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은 기우에 그치지 않았다. 이 책은 초판 400부도 다 팔리지 않았다. “구입해서 읽고 활용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선전문구가 무색하게 당시의 독자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케플러, 갈릴레이, 튀코 브라헤 같은 천문학자와 출판업자 9명에 불과했다는 설도 있다.

 

  이런 평가에 대해 깅거리치 전 하버드대 교수는 여러 가지 증거를 대며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의 주장이 틀렸다고 반박한다. 케스틀러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한 별명을 제목으로 쓴 책에서 깅거리치는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정말 그런지 여러 나라 도서관을 돌며 검증을 시도한다. 깅거리치는 갈릴레이와 케플러, 미하엘 마에스틀린 같은 일급 천문학자들이 소유하고 메모가 적힌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소개하면서 천문학자들 사이의 격렬한 다툼과 더불어 새로운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교회가 벌인 검열의 흔적까지 있음을 알려준다.

 

   지구가 다른 행성들과 더불어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결론은 과학 역사뿐만아니라 인류의 삶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획기적인 사고방식의 변화를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알만하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처음 사용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용어는 이제 세계인의 화두가 될 정도다. 칸트는 인식이 대상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 구성에 근거한다는 자신의 인식론적 입장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서양이 신 중심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책이 바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다. 이 책은 우주에서 신을 제거하고 우주와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을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성서에 따라 우주를 해석하고 과학을 말하던 세계에 평범한 인간의 비범한 상상이 개입되면서 새로운 과학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지동설에 대한 독일 문호 괴테의 언급이 흥미롭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인간은 크나큰 위기에 봉착했다. 낙원으로의 복귀,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거룩함, 죄 없는 세상, 이런 것들이 모두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새로운 우주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사고의 자유과 감성의 위대함을 일깨워야 하는 일이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코페르니쿠스 동상>

 

  코페르니쿠스가 사용한 ‘회전’이란 용어 ‘Revolution’은 훗날 ‘혁명’이라는 정치사회적 단어로 변용된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회전, 순환, 주기, 반복 등의 뜻을 지녔으나 천체의 회전처럼 정치사회적 변화도 어떤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일로 보고 비유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Revolution’을 혁명이라는 정치적 용어로 사용한 게 17세기에 일어난 영국 명예혁명부터였다고 말한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당부한 코페르니쿠스의 친구 앤드류 오시안더 서문 때문인지 가톨릭 교계에서도 이 책이 나온 직후에는 위협이 있었을 뿐 금서조치는 없었다. 외려 루터파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의 위협이 더 컸다. 하지만 지동설을 입증하는 학설이 난무하자 교황청은 1616년 마침내 이 책을 금서목록으로 지정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지 70여 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교황청은 ‘움직일 수 없는 과학’으로 증명된 1835년에 들어서야 금서에서 해제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후 시대에도 허상 바로잡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잘못된 인식을 대중들까지 올바르게 고치는데 3세기나 지나야 했다. 올바른 과학을 규탄당한 코페르니쿠스가 복권되는데 5세기가 걸린다. 로마 가톨릭이 지동설과 관련된 오류를 인정한 것은 1992년의 일이다.

 

  1543년에 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초판본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이라는 진기록도 갖게 됐다. 2008년 6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221만500달러(약 22억6700만원)에 팔렸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4년 6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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