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처럼 한 도시가 폐허되고 재탄생하는 과정을 아홉 차례나 거친 도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트로이 유적지는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그 뒤 어떤 역사학자도 수천 년 동안 신화와 전설로만 전해오던 트로이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
트로이 유적지의 비밀을 밝혀낸 것은 고대 도시의 존재를 확신했던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었다. 그는 20년 동안 엄청난 재산을 모은 뒤 집요한 추적 끝에 1873년 마침내 유적지를 발굴했다. ‘일리아스’를 길라잡이로 사용한 슐리만은 오늘날 터키 북서쪽에 있는 히사를리크 마을 아래서 트로이를 발견한 것이다.
슐리만이 호메로스에 심취해 트로이 발굴에 나선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여덟 살 때 그의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루트비히 예러가 쓴 ‘아이들을 위한 세계사’라는 책을 사줬다. 어린 슐리만은 불타는 트로이 삽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가 트로이의 몰락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슐리만은 믿지 않았다.
슐리만이 처음 호메로스의 시를 접한 것은 독일에서 말단직원으로 일할 때였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직원 하나가 호메로스의 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줄줄 암송했다. 난생 처음 그리스어를 들은 슐리만은 뜨거운 눈물까지 흘렸다. 이후 그는 그리스어를 비롯한 외국어 공부에 열중해 영어, 라틴어 등 무려 15개 언어에 능통했다.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실증주의적인 관점에 따라 신화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로 여겼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문학 차원을 넘어 서구 문화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한다. 호메로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시는 35편이나 되지만, 훼손 없이 온전히 전하는 것은 두 서사시뿐이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벌어지는 전사들의 무용담이나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오디세이아’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었던 모험, 사랑과 방랑 등 파란만장한 여행담이다. ‘일리아스’는 ‘일리온(트로이)의 노래’라는 뜻이고,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의미다.
<트로이 유적에 있는 트로이 목마 모형>
‘일리아스’의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다. 그리스군 용사 아킬레우스는 자신을 무시하는 총사령과 아가멤논에게 화가 잔뜩 나서 전투를 거부한 뒤, 여신인 자기 어머니에게 부탁해 자기편이 지도록 일을 꾸민다. 그리스군은 한동안 아킬레우스 없이도 잘 싸우지만 끝내 위기에 처한다. 이를 보다 못해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전투에 뛰어든다.
그는 잠깐 동안 큰 전공을 세우고 적을 격퇴하지만, 헥토르에게 죽고 만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친구를 죽인 헥토르에게 방향을 돌린다. 그는 신이 만든 새로운 무장을 하고 친구의 원수를 죽인다. 친구의 장례를 치르고도 화가 풀리지 않은 그는 날마다 헥토르의 시신을 학대하지만, 결국 신들의 중재로 시신을 돌려보낸다.
<오디세이아 이야기 그림>
‘오디세이아’의 줄거리는 이렇다. ‘증오 받는 자’라는 뜻을 지닌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항해에 나선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결정한 그의 운명은 이름처럼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차 있다. 이타카 왕인 오디세우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왕비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자들이 궁전에 몰려들어 그의 재산을 탕진하며 오만방자하게 군다.
오디세우스는 항해 도중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혔다가 불에 달군 말뚝으로 외눈을 찌르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요정 키르케의 마술에 걸려들어 일행이 모두 돼지로 변하는 위기도 겪고, ‘사이렌’이란 말의 어원이 된 세이렌 자매가 사는 바위 옆도 지난다. 폴리페모스를 시각장애인으로 만든 것에 분노한 포세이돈이 풍랑을 일으켜 그를 요정 칼립소의 섬으로 가게 한다. 귀향을 위해 저승까지 찾아갔던 오디세우스는 이후에도 몇 번의 난파와 표류 등 죽을 고비를 넘긴다. 파이아케스인들의 스케리아 섬에서 나우시카 공주에게 구조돼 천신만고 끝에 고향 이타카 섬으로 돌아간다.
두 서사시 구성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적절하게 평한 사람도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는 ‘시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했고, 그 밖에 많은 사건들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실제로 ‘일리아스’는 9년 동안 일어난 일을 단 50일 동안의 사건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한다. ‘오디세이아’ 역시 20년 동안에 있었던 일을 단 40일로 압축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일리아스’의 구성은 단순한 반면, ‘오디세이아’는 복잡하다고 분석한다.
<호메로스>
‘일리아스’에서는 모든 사건이 분노의 모티프(삽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오디세이아’는 여러 모티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두 서사시를 비교하면서 ‘일리아스’는 비극적이고, ‘오디세이아’는 낭만적이라고 흔히들 얘기한다. ‘일리아스’가 인간의 조건을 보여주는 데 비해, ‘오디세이아’는 인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제시한다는 견해도 있다. 어떤 이는 ‘일리아스’가 인간은 궁극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인 반면, ‘오디세이아’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에 괴로워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해석한다.
두 시의 대조적인 성격 등으로 인해 작가 호메로스와 작품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둘러싼 논쟁들이 끊이지 않는다. 기원전 8세기 전후의 인물로 알려진 호메로스가 실존인물이었는가? 단일 작가인가, 복수의 작가인가? 이 같은 논란은 글자로 옮겨지기 전 입으로만 전해진 구송시(口誦詩) 이론이 자리를 잡으면서 다소 수그러들었다. 누군가가 큰 틀을 잡아놓았지만, 그 재료는 예부터 전해온 것이었다는 주장이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내용의 중복이 없고, 신들이나 영웅들의 모습도 다르다. 가장 흔한 견해는 ‘일리아스’의 경우 호메로스가 젊었을 때 지은 것이고, ‘오디세이아’는 그의 만년 작품이라는 설이다.
문자로 전해지는 서양 최초의 문학작품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양의 문화를 언급할 때 언제나 첫 자리에 나온다. 호메로스는 셰익스피어, 단테, 괴테와 함께 서양문학의 4대 작가로 꼽히기도 한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 한 사람인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비극 작품들이 모두 호메로스의 ‘위대한 만찬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단테는 호메로스가 ‘이야기들의 기초를 세운 아버지’라고 규정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부바르와 폐퀴쉐’에 레몽 크노가 붙인 서문에는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디세이아’이다”라는 구절이 나올 정도다.
<하인리히 슐리만 기념 우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일리아스’를 “모든 군사적 덕성과 지식을 담고 있는 완벽한 보물”이라며 단검과 함께 베개 밑에 간직했다고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가 전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간직한 이 책을 편집한 사람은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게는 ‘변화하며 움직이는 거울’인 호메로스가 자신의 원초적인 모델이었다. 아일랜드 문호 제임스 조이스는 호메로스로부터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끌어와 소설 주인공으로 삼았다. 20세기 최고의 영어소설로 꼽히는 ‘율리시스’(Ulysses)는 그리스어 오디세우스(Odysseus)의 라틴어, 영어식 표기다.
두 작품은 지금도 모든 서양 학생들의 교육 자료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지식인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상상력의 보고다. 로마 문학을 대표하는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건국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종합하여 구상했다. 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에게도 호메로스는 피할 수 없는 참고자료였다. 호메로스와 그의 작품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331번이나 전거로 나타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우리가 죽음 뒤에 오는 삶에 가치를 두는 것은 호메로스 이후의 발전”이라고 평가한다.
<트로이와 고대 그리스 세계 지도>
두 서사시는 기원전 6세기부터 그리스 국민의 문학, 교육,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의 언어, 문학, 조형미술, 나아가 그리스인들의 자의식 형성 토대가 됐다. 로마 시대 이후엔 서사시의 규범이 됐다.
국가와 민족이 변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인간 지성은 호메로스가 이야기한 사건들의 순서를 바꾸고, 그가 만든 등장인물들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면서 그의 감성을 돌려 말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랍을 배경으로 변형된 호메로스의 몇몇 에피소드들은 더 큰 변형을 거치면서 에스파냐의 로맨스, 프로방스의 칸초네, 프랑스의 우화시, 독일의 민화가 됐다. 아이슬란드 무용담 ‘외팔이 에길’과 영국 민간우화인 ‘잭과 콩나무’도 이와 흡사하다.
이탈리아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두 서사시가 2차 세계대전 후 대중적 볼거리로 확장된다고 말한다. 오디세우스가 물속에 있는 나우시카를 엿보는 장면은 스트립쇼 ‘목욕하는 아름다운 여인들’로, 키클롭스는 영화 ‘킹콩’으로, 키르케는 빌헬름 파브스트의 영화 ‘아틀란티스의 여왕’에서 안티네아로 바뀐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경멸’은 ‘오디세이아’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영화 현장에 대한 이야기다. ‘일리아스’를 원작으로 해 할리우드 정상급 배우들을 등장시킨 영화 ‘트로이’는 2004년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탈리아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극화한 ‘일리아스’의 낭독을 듣기 위해 2005년 9월 무려 3,000여명이 로마 공회당의 가장 큰 극장을 가득 메웠다. 낭독 공연은 3일 밤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힘든 여행의 대명사로 ‘오디세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쓴다. 클래식 오디세이, 우주 오디세이, 과학 오디세이, 논술 오디세이, 미학 오디세이…심지어 한자 오디세이, 금융 오디세이까지. 가히 두 작품을 모르고선 유럽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4년 9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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