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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8)--<한비자> 한비

 

 10여 년 전 화제를 모았던 KBS 역사드라마 ‘제국의 아침’에는 고려 광종이 즉위 직후 신료 유신성으로부터 중국 고전 ‘한비자’(韓非子)를 전해 받는 장면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개혁군주인 광종은 ‘제왕학의 성전’으로 불리는 ‘한비자’를 읽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글이야.” 그는 고려 건국 초기 중앙집권체제와 왕권 강화를 위해 과단성 있는 개혁정책을 펼친다.


  ‘제국의 아침’이 방영될 무렵 때마침 16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당선자는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으로부터 ‘한비자’의 한 대목을 유념하라는 충언을 듣는다. “한비자에는 군주가 인사권을 남에게 이양하면 안 되며, 끝까지 인사비밀을 지켜야 신하들이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노 대통령 취임 직후에는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가 ‘한비자’에 나오는 신하들의 여덟 가지 간사한 행동(팔간·八姦)을 경계하라는 칼럼을 한 일간지에 써 눈길을 끌었다.


  ‘한비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더불어 통치술의 명저로 꼽힌다. 제대로 된 군주라면 법(法)·술(術)·세(勢)라는 세 가지 통치도구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한비는 주문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규칙이며, ‘술’은 소통 능력, ‘세’는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일컫는다.

                                                                    

 

   제자백가의 한 유파인 법가(法家)에는 한비가 나오기 전 세 갈래의 큰 학파가 있었다. 법을 강조한 상앙, 술을 역설한 신불해, 세를 강조한 신도가 그들이다. 상앙이 주창한 ‘법’은 백성들의 사익 추구를 막고 나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원칙을 뜻한다. 신불해의 ‘술’은 신하들을 잘 조종해 군주의 자리를 굳게 다지는 인사정책이다. 신도의 ‘세’는 군주만이 갖는 배타적이고 유일한 권세를 의미한다.


 ‘한비자’는 군주의 권력 유지를 위한 법치 리더십의 원조 격이다. 군주가 공포한 법은 지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행위준칙이다. “법은 어떤 귀함도 없고, 먹줄은 나무가 굽었다고 해서 구부려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서 법은 만인에게 두루 적용되지만 군주는 예외다. ‘예는 일반 백성에게 미치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유가(儒家)의 입장보다 한 걸음 더 나간다.


   이 책은 법을 이렇게 정의한다. “거울은 맑음을 지키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아야 아름다움과 추함을 있는 그대로 비교할 수 있고, 저울은 균형을 지키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아야 가벼움과 무거움을 있는 그대로 달 수 있다. 만약 거울이 움직인다면 대상을 밝게 비출 수 없고, 저울이 움직인다면 대상을 바르게 달 수 없는 것이다. 법이 바로 이런 것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초상>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신상필벌’(信賞必罰)로 요약할 수 있다. ‘한비자’는 상과 벌을 두 개의 칼자루에 비유하며, 상벌 권한을 함께 구사해야 명실상부한 군주로 군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작은 신의가 성취되면 큰 신의가 확립된다. 그러므로 밝은 군주는 신의를 지키어 쌓는다. 상벌을 행함에 신의가 없으면 금지나 명령이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한비자’는 힘에 의존하는 것을 마다하고 덕을 베풀어 백성을 감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의 환상이며, 오로지 빈틈없이 권력체계를 정비하는 길이 통치의 요체라고 일깨운다.


 이 책은 국가의 흥망에 관해 이렇게 주장한다. “항상 강한 나라도 항상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받드는 자가 강하면 나라가 강하게 되고 법을 받드는 자가 약하면 나라도 약해진다.”


   ‘한비자’는 신하를 다루는 세 가지 책략을 제시했다. 독단독람(獨斷獨攬)은 왕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신하에게는 단지 간언만 허락할 뿐 어떠한 권한도 나누어주지 않은 것을 뜻한다. 심장불노(心藏不露)는 왕이 자기의 견해나 희로애락의 감정을 감춰서 남들로 하여금 도무지 자기의 생각을 알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참험고찰(參驗考察)은 신하들의 과거와 현재, 성격의 특징과 심리상태를 조사·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조국 교수가 경계하라고 건의했다는 ‘팔간’은 나쁜 신하가 될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다. 잠자리를 함께 하는 부인과 후궁 같은 동상(同床), 군주를 가까이 모시는 측근인 재방(在傍), 뇌물 청탁의 대상이 되는 친인척인 부형(父兄),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과중한 세금을 걷어 군주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자신의 사익을 취하는 양앙(養殃), 국가 재산을 함부로 사용해 백성을 일시적으로 즐겁게 하고 군주가 아닌 자신을 칭송하게 만드는 민맹(民萌), 교묘한 언설로 군주의 판단을 흐리는 유행(流行), 위세를 빌려 권력을 휘두르는 위강(威强), 주변국 외세를 빌리려는 사방(四方)이 그것이다.


   군주가 저지를 수 있는 열 가지 과오((十過)도 열거했다. 작은 충성, 작은 이익, 편협한 행실, 음악에 빠지는 것, 탐욕스럽고 괴팍한 것, 여색을 탐하는 것, 궁궐을 떠나 멀리 유람하는 것, 충신의 간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는 것, 작고 힘없는 나라가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 등이다.

  ‘한비자’는 “시대가 다르면 일도 다르다”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방책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파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즐겨 인용하는 ‘증자(曾子)의 돼지’고사도 ‘한비자’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아내가 장을 보러 가려고하자 아이가 울면서 따라가겠다고 보챘다. 아내가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줄 테니 집에 있으라’고 달래자 아이는 말을 들었다.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오자 증자는 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아내가 깜짝 놀라 ‘아이를 달래려 한 말인데 정말 잡으면 어떡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증자는 ‘아이에게 속임수를 가르치려고 하느냐. 어미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어미를 믿지 않게 된다’며 돼지를 잡았다는 일화다. 위나라 문후가 산지기와 사냥을 가겠다고 약속한 뒤 폭풍우가 몰아쳐 신하들이 만류했음에도 친히 사냥터까지 나가 애초의 약속을 지켰다는 예화도 마찬가지다.


   ‘한비자’는 원래 ‘한자(韓子)’라고 불렸다. 송나라 이후 당나라 때 학자 한유(韓愈)를 ‘한자(韓子)’라 부르게 되자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한비자’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약소국이었던 한나라 출신인 한비는 자신을 몰라주는 군왕과 세상에 대한 울분을 ‘한비자’에 담았다. 한비는 조국을 부강하게 하기 위해 여러 차례 왕에게 글로 간언했지만 발탁되지 못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작은 나라 피렌체 출신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것과 흡사하다. 한비는 말재주가 없었지만 문장력만은 뛰어나 설화, 우화 같은 것을 두루 인용해 감동을 이끌어내는 책을 완성했다.


   ‘한비자’가 세상에 처음 나오자 가장 감명을 받은 이는 한나라 왕이 아니라 진나라 시황제였다. 막강한 왕권을 꿈꾼 진시황은 유가 사상을 비난하며 법치를 중시한 이 책을 읽고 무릎을 쳤다. “아아! 과인이 이 사람과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중국 천하를 처음으로 통일하기 전 진시황은 ‘한비자’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한(漢)나라 때 철학자인 왕충(王充)은 ‘논형’(論衡)이라는 책에서 한비의 조국 한(韓)나라가 망하고 적국인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된 것은 한비 주장의 수용 여부에서 비롯된 차이라고 분석했다.


  한비는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동문수학했던 친구 이사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독살됐다. 불운하게 삶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책은 역사를 바꾸어 놓는다. ‘한비자’는 중국 최초의 중앙집권제 통일국가인 진나라의 탄생에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그 뒤를 이은 역대 중국 왕조의 현실정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비자’는 삼국시대 당시 재사 제갈공명이 죽으면서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올린 글에서 반드시 숙독할 것을 권한 책이기도 하다. ‘난세에는 형벌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천명한 조조, ‘안정된 국가는 예로 통치하고, 혼란한 국가는 법으로 통치한다’고 말한 전진 시대의 왕맹(王猛), ‘죄를 지은 자는 마땅히 벌한다’는 철학으로 통치한 북송의 포증(包拯)도 ‘한비자’를 따랐다. 청나라 건륭황제는 이 책을 탐독한 대표적인 군주다.

                                                                                            

                                                                <이병철 이건희 회장 부자 자료 사진>


   ‘한비자’는 현대에 와서도 중국 지도자의 서가에서 빠지지 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인 마오쩌둥이 열독했고, 시진핑 국가 주석은 ‘한비자’를 거푸 인용하며 법치주의 국정운영방침을 내걸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보다 1800년이나 앞선 ‘한비자’가 표방한 법치주의는 유교의 덕치주의와 더불어 동북아시아를 움직여온 양대 정치사상이다.


   ‘한비자’는 군주의 통치를 위한 것이지 일반 백성을 위해 쓴 게 아니다. ‘한비자’의 법치사상과 근대 서양의 법치주의는 엄청난 거리감이 존재한다. 한비의 사상은 ‘법에 의한 통치’라기보다 ‘법에 의한 통제’에 가깝다. 법으로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사상이 아니다. 서양의 법치사상은 왕권에 대항해 왕권을 약화하는 기능을 했다.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본질을 분석하고, 군주의 권력유지 방도를 제시해 제왕들의 대환영을 받은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고대 중국에선 한동안 ‘한비자’를 악의 책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한비자’는 오늘날 조직 관리의 리더십으로 확장된다. 경영학의 비조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도 현대 기업 관리에 ‘한비자’ 사상의 유용성을 높이 평가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도 ‘한비자’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병철 경영철학의 핵심인 사업보국과 인재제일주의는 ‘한비자’의 부국강병과 용인술과 맞닿는다. 이건희 회장이 임원 필독서로 ‘한비자’를 권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비는 삼류 지도자는 자기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지도자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 지도자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고 가르친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4년 3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