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세계적인 사회학자이자 네크워크과학 전문가인 던컨 J. 와츠의 명저 ‘상식의 배반’(생각연구소)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상식’을 배반하며 살아온 것 같다. 의사에서 프로그래머로, 프로그래머에서 경영자로, 그리고 다시 교수로…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삶이지만,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왔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진리인 ‘상식’을 왜 비판적 시각으로 음미해야 하는지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경제, 문화, 정치, 심리, 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흥미로운 사례를 읽다 보면 ‘의외로 해답은 상식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언뜻 보면 자신이 보수도, 진보도 아닌 ‘상식파’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온 안철수 교수의 철학과는 모순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안철수는 지난 7월 하순 방송된 SBS-TV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상식파’라고 강조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이는 그의 평소 지론에 불과하다.
<힐링 캠프에 출연한 안철수 교수>
안철수는 이념성향을 묻는 사람들에게 늘 상식파라고 대답했다. 지난해 초반부터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연합클리닉원장과 함께 전국 대학을 돌며 진행해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청춘콘서트’에서도 똑같은 답변을 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도 상식파와 비상식파의 대결에서 상식파가 이긴 것이라고 규정했다.
안철수 현상은 갈등적인 이념보다 건전한 상식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식은 미국 독립운동과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주요 국가에서 정치적 믿음의 도구로 기능했다. 상식은 좌파와 우파, 부자와 빈자, 진보와 전통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오작교 역할로 제격이다. 상식이 때로는 그리스 신화에서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푸는 열쇠인 ‘아리아드네의 실’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선지 탁월한 여성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상식이 민주주의의 생명’이라고 할 정도로 추켜세웠다.
하지만 안철수는 자신이 추천사를 쓴 ‘상식의 배반’이 매우 다양한 사례로 보여주듯 ‘상식적 판단의 함정’이 곳곳에 지뢰밭처럼 숨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상식의 배반’은 상식에 의존하지 말고 모든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뒤집어보고 결별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사회학자 폴 라자스펠드는 미 육군의 연구분과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60만 명 이상의 군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내용을 담아 펴낸 <미군>(The American Soldier)을 바탕으로 시사하는 바가 큰 사실을 지적했다. 라자스펠드는 여섯 가지 조사 항목 가운데 “대체로 시골 출신자가 도시 출신자보다 군에서 훨씬 더 유쾌하게 생활한다”는 대목을 예로 들면서 이 내용을 읽은 독자라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일 거라고 짐작했다.
“ 아,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1940년대의 시골 남자는 도시 남자에 비해 혹독한 생활조건과 힘든 육체노동에 더 익숙했을 테니 말이야. 그건 그냥 생각만 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인데, 그런 걸 말해주려고 큰돈을 쏟아 부어 대규모 조사를 했단 말이야? 왜 그런 걸 해야 하는데?”
그러게, 정말 왜 그래야 했을까? 곧이어 라자스펠드는 자신이 열거한 여섯 가지 항목은 모두 실제 조사결과를 정반대로 말한 것이라고 밝힌다. 사실 군 생활을 훨씬 더 유쾌하게 보낸 사람은 시골 출신자가 아니라 도시 출신자였다.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진짜 결과를 알려주었다면 그들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실과 진짜 조사결과를 쉽게 양립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복잡한 환경에다 명령계통과 엄격한 복장기준을 지키고 사회적 예의범절을 갖춰야하는 집단에서 생활하는 것은 시골 출신자보다 도시 출신자에게 훨씬 익숙하니까 그거야 뻔 한 결과지”라고 말했을 터다. 바로 그 점이 라자스펠드가 주장하고자 한 바였다.
이렇듯 도시빈곤문제의 해법을 고심 중인 정치가들도 대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를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나 기업계획이 실패하는 원인은 거의 이와 같다고 던컨 와츠는 따끔하게 말한다. 모든 경우 회의실에 모여 앉은 소수가 자신의 상식적 직관에 의지해 자기들과 동기도 상황도 상당히 다른 수천, 수백만 명의 다양한 행동을 예측·관리·조작하기 때문이라고.
역설적인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정치가나 정책입안자이 하는 실수를 지켜보면서도 상식을 비판하기는커녕 상식을 더 많이 요구한다는 점을 와츠는 꿰뚫고 있다.
세계경제위기가 더없이 암울하게 바닥을 치고 있던 2009년 초,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몹시 분개한 사람이 좌중을 향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식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라고 소리쳤다. 호소력이 강한 이 말은 당시 커다란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2년 전인 2007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거의 비슷한 사업가와 정치가, 경제학자들이 모여 재정부문에서 놀라운 수준의 부와 전례 없는 안정을 창출해냈다고 서로 축하했다. 그 사이에 어떤 상식을 팽개쳐버렸다고 의심했던 것일까 하고 와츠는 되묻는다.
역사학자 소피아 로젠펠드가 ‘상식의 역사’(부글북스)에서 지혜롭게 경고했듯이 정치와 상식의 잘못된 결합은 치명적인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정치영역에서 상식의 적은 ‘당파성’과 ‘이해관계’다. 반대로 정치의 속성은 당파성과 이해관계의 조정이다.
안철수가 또 명심하고 경계해야할 것은 ‘상식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보수 진영을 가릴 것 없이 포퓰리즘으로 흐른 경향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 공화당의 사라 페일린 전 부통령 후보, 2012년 대선 주자였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대표적인 보수 논객 글렌 벡을 중심으로 한 극우성향의 정치운동단체 ‘티파티’ 지지자들이 내건 ‘상식적 보수주의’가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프랑스의 극우 정치지도자 장 마리 르펭이 외국인 혐오증을 보여주면서 진짜 프랑스 사람의 ‘상식’을 들먹인 것이나, 캐나다 온타리오 주 총리가 세금 인상과 큰 정부에 반대하며 외친 ‘상식혁명’도 그랬다. 포퓰리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집단상식’에 호소하고 의존한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안철수의 이미지는 변화가 강하다. 상식은 안정 이미지다. 안철수는 지난해 9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한 것부터 상식을 파괴했다. 출마하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었던 자리를 자신의 지지율에 견주면 10분의 1에 불과한 박 시장에게 선뜻 내놓은 건 누가 봐도 상식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그 후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고단수의 정치 시나리오는 한결같이 상식을 깨는 정치행위다.
어쩌면 안철수는 “세상은 상식을 깨는 사람들에 의해 진화한다”고 일갈한 스티브 잡스형이 더 어울린다. 고정관념과 상식을 파괴해 나갈 때 한층 의식 세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분량을 늘려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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